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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볏짚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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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볏짚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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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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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TV를 시청하다 볏짚 삼겹살을 처음 봤다. 전남 무안의 한 음식점인데 삼겹살을 석쇠에 올려놓고 볏짚으로 굽고 있었다. 볏짚의 화력으로 고기를 익히기 때문에 불 맛이 나는 모양인데 맛이 궁금해졌다. 넋을 놓고 보고 있자니 볏짚을 참 오랜만에 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쌀을 생산하고 남는 볏짚은 농촌에 없어서는 안 될 부산물이었다. 1960년대 이전에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짚으로 이엉을 엮어 농촌의 초가지붕을 단장했다. 초가지붕은 겨울에는 보온성이 높아 집안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여름에는 단열성이 뛰어나 뜨거운 열기를 막아주었다.

양질의 짚은 가려 두었다가 겨울철 농한기에 가마니, 새끼, 멍석, 바구니 등 각종 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또 김장독을 짚으로 동여매 주어 겨울에 어는 것을 방지해 주었다. 이밖에 소먹이, 땔감, 거름 등으로 짚이 쓰이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정부에서는 양곡을 담고 재난이나 유사시 사용될 가마니와 새끼를 대량으로 수매까지 했는데 겨울철 농한기 농가의 유일한 소득 수단이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스레트와 기와로 지붕개량이 이뤄지면서 볏짚이 많이 남아돌았다. 남는 볏짚을 활용하기 위해 겨울에 가마니, 새끼 등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파는 부업을 했다.

‘가마니’는 수확한 벼를 담아 운반하거나 보관하는 용품이지만 장마철 홍수 피해가 발생하면 무너진 제방과 논둑을 막는데도 쓰였다. 가마니 한 개를 짜서 만드는데 1시간 정도가 걸렸는데 하루에 10여 개 정도를 만들었다. 마을공터에선 가마니틀을 갖다 놓고 가마니 짜기 대회도 열렸다. 누가 얼마나 촘촘하게 빨리 가마니를 짜느냐를 겨루었다. 1등을 하면 리어카 1대가 주어졌고, 시집안간 여자가 1등하면 최고의 며느릿감으로 이름을 날렸다. 일정한 규격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쌀 한 가마니(80kg)의 도량 기준이 되기도 했다.

‘새끼’는 볏짚을 꼬아 만든 줄이다. 곡물가마니 또는 물건 등을 묶을 때나 인삼재배에서 햇볕 가림막을 덮고 고정하는데 쓰였다. 옛날 어른들은 사랑방에 모여 손으로 새끼를 꼬았다. 1960년대는 새끼를 꼬는 제승기(製繩機)라는 기계가 보급됐다. 발로 돌리면서 손으로 볏짚을 나란히 넣어 주면 꼬아지는 방식인데 나중에는 모터를 달아 능률을 높였다. 기계가 돌아가면서 동그랗게 말리는데 이것을 ‘둘레’또는 ‘테’라고 하였다. 대부분 벼농사를 많이 짓는 집은 제승기 1대씩 가지고 겨울철에 부업을 했다. 새끼 제작 시간은 족답(足踏;발로 밟아 돌리는) 방식으로 1둘레를 만드는데 1시간 이상 걸렸고, 모터가 달린 제승기는 20분 정도 걸렸다.

1980년대부터 마대, 나이론 자루와 끈이 나오면서 가마니와 새끼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남는 볏짚은 추수가 끝난 논에 다시 썰어 돌려주고, 쟁기로 깊게 갈아 지력을 증진시켰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화학비료를 적게 사용하게 됐고, 토양의 유기물함량도 높아져 쌀의 생산능력과 맛도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2000년대부터는 가을에 추수하고 난 뒤 남은 볏짚을 둥그렇게 포장 제조하여 소의 겨울철 사료로 이용하고 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빈 논바닥 위에 하얀 원기둥 모양의 물체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볏짚원형곤포사일리지’이다.

겨울에는 볏짚을 나무에 둘러 묶어준다. 해충이 겨울을 나기위해 따뜻한 볏짚으로 모이는데 일종의 해충 채집 기능을 하게 된다. 봄에 볏짚을 거두어 태우면 해충도 없앨 수 있었고 추운겨울 나무의 동사(凍死)도 방지하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볏짚은 시대에 적응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버려지는 것 없이 요긴하게 쓰였다. 옛날 우리의 민초(民草)들은 짚 위에서 나서 짚 속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산모가 진통을 시작하면 싱싱하고 정갈한 볏짚을 골라 산모에게 깔아주고 그 위에서 아기를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필자의 유년시절에는 동네사람들이 남녀노소 사랑방에 모여 짚으로 가마니, 새끼 등을 만들면서 정을 나누고 살았다. 뭔가 쓰기만 하면 쓰레기로 남는 세상. 남김없이 생을 마감하는 볏짚을 보면서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볏짚이야 말로 요즘 말하는 친환경이구나 생각했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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