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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세한도(歲寒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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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논단] 세한도(歲寒圖)
  • 김연식 논설실장
  • 승인 2021.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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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식 논설실장

조선 정조 10년인 1786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추사 김정희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서화가이다. 그는 1840년부터 1848년까지 제주도에 유배생활을 하며 세한도(歲寒圖)라는 그림을 그려 제자에게 선물했다. 그는 생애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유독 세한도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의리와 지조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정희는 당시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관직을 박탈당하고 9년 동안 제주도에서 쓸쓸하게 생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도 그의 존재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제자 이상적은 중국의 고서적을 구입해 김정희에게 전달하는 등 스승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았다. 김정희는 본인이 가장 어려울 때 의리를 잊지 않고 관심을 가져준 제자에게 답례로 세한도라는 그림을 그려 전달한 것이다. 세한도는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가장 늦게 낙엽이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비유해 제자의 의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중국의 논어 자한편에는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는 글이 있다. 직역하면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 내용이다. 잎이 무성한 여름이면 모두가 푸르게 보여 진실과 거짓 등 옥석을 가리기 어렵다. 하지만 가을이 되어 낙엽이 모두 떨어지면 푸른빛을 가지고 있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진 모습이 보인다. 결국 인간의 진정한 의리는 권력을 누릴 때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좌에 내려 왔을 때 변함없이 함께하는 것을 말한다.

선비의 진면목도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처럼 그가 권력에서 물러난 후에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권좌에 있으면 권력을 공유하려는 주변인으로부터 좋은 소리만 들을 것이고, 반대로 권력을 빼앗으려는 자들의 음해와 비난에 시달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진정한 평가는 임기가 끝난 후 내려지는 것이 더 진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처럼.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의 뒷말이 때아니게 논쟁이 되고 있다. 두 사람은 재임 중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남북대화를 비롯한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두 사람은 서로를 치켜세우며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내면의 세계야 알 수 없지만 언론에 보여준 두 사람의 말과 행동은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그에 대한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다. 물론 미국 현지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론과 학계에서 많은 평가를 하고 있지만 남북문제만큼은 우리나라 대통령의 평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변죽만 올렸을 뿐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북문제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싱가포르 합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고 “트럼프 정부가 거둔 성과의 토대 위에서 더욱 진전시켜 나간다면 그 결실을 바이든 정부가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변죽은 북핵문제의 실질적 해법은 비켜가고 주변에서만 맴돌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얼핏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트럼프가 대북문제의 물꼬를 터놓았다면 바이든 정부가 좀 더 노력해 북핵문제 해결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생각은 달랐다. 문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이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들렸던 것이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의 인터뷰 직후에 별도의 성명을 내고 “북한의 김정은은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알게 되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존중한 적이 없다”고 비하했다. 그는 또 “문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장기간 지속된 군사적 바가지 씌우기와 관련한 것을 제외하면 지도자로서 또 협상가로서 약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이 같은 반응은 문 대통령이 변죽만 올렸다고 평가한데 대한 화풀이로 보여 진다.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는 전직 대통령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현직에 있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고 해도 전직인 점을 감안하면 발언의 무게가 가벼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 트럼프의 돌발적 언행과 자기중심적 사고로 볼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다.

역사는 쉼 없이 움직이고 권력자들에 의해 항상 재평가 된다. 똑 같은 말과 행동이라도 보는 방향에 따라 이해관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게 현실이다. 권력자는 권력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업적과 행위를 더 소중하게 평가할 것이고, 권력을 뺏으려고 하는 자는 권력자의 흠집만 찾으려고 하는 것이 권력의 게임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권력을 움직이는 사람이 유권자인 만큼 권력자들은 소나무와 잣나무처럼 변함없이 진솔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전국매일신문] 김연식 논설실장
ys_kim@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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