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고! 육목단 열끗
상태바
[기고] 원고! 육목단 열끗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6.09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신병훈련소에 기초훈련을 받고 산속 깊은 곳에 있는 포대로 배치를 받았다. 행정반에서 신상기록카드를 작성하는데 행정병인 이 상병이 전화로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병 여덟 명 중 본포(本砲)에 두 명, 챠리 두 명, 브라보 삼 명, 우리 알파에 흑싸리 쭉정이 같은 놈 한 명!”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흑싸리 쭉정이라? 그것은 곧 나를 일컫는 소리였다. 제대를 하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군대를 갈 때 어머님의 표정이 평시와 변함이 없으셨다 내 위로 형님 네 분이 군대를 갔다 왔으니만치 어머님의 감정이 많이 무디어졌으리라 생각했다. 훈련소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내가 입던 옷을 집으로 부쳤을 때, 그 보따리를 보고는 그제야 가슴을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군인 뽑는 사람이 눈이 잘못됐지, 분명 걔는 자격 미달로 되돌아올 줄 알았다고 생각했단다.

곡식은 남의 것이 더 커 보이고 자식은 내 자식이 더 커 보인다는 말대로, 내 자식이라고 프리미엄을 얹고 보는 어머님 눈에도 말라 비틀어 가는 흑싸리 쭉정이로 보였었나 보다. 그 아들이 제대를 하고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는데 신부 될 사람도 나를 흑싸리 쭉정이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별 볼일 없는 모양새를 표현하기를 곧잘 화투판의 흑싸리 쭉정이로 표현하는데, 나의 아내는 나를 흑싸리 쭉정이라고 말은 하지를 않았어도 얼굴에 속마음이 여실히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월주의에 빠져서 자기 정도는 고스톱 판의 광(光)이나 새(鳥)까지는 생각 않더라도 김지미(화투장에서 육목단 열끗을 일컫는 은어) 정도로 자화자찬을 하고는 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 나를 어떻게 만져 봤던 사람들이 육목단 열끗을 지칭하는 말인데, 육목단 열끗 하니 웃음도 나지만 황당한 생각도 들렀다.

육목단 열끗과 흑싸리 쭉정이가 만났으니 어느 모로 보아 점수가 빨리 나는 데에는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 화투 패다. 결혼 생활로 본다면 억수로 안 맞는 궁합이기도 했다. 나의 아내는 모양새만 보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화투장에서 제일 별 볼일 없는 것이 오 난초와 풍열과 육목단과 칠 홍싸리 열끗 자리들이다. 칠 홍싸리 열끗은 가끔 돼지라도 바라는 사람들이 요긴하게 쓸 적도 있는지라, 오 난초 열끗과 풍열과 육목단 열끗이 화투 마흔여덟 장중에 제일 하찮게 취급을 받는데, 풍 열끗은 초상집 섯다 판에서 장사 패라도 쥐어 보려는 사람이 바라는 화투장이다.

아내가 우습게 여기는 흑싸리 껍질로 띠를 먹으면 구사가 날 확률이 있고, 열끗 자리를 먹으면 새가 날 확률도 많으며, 껍질만 먹어대도 피 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흑싸리 껍질끼리 모이고 해서 피로 삼 점이 났을 때 피박이라는 가공할 힘도 발휘한다. 흑싸리 껍질 두 장이 보태져서 하찮게 취급하는 피 열 장이 모여 다른 조건으로 점수가 난 곳에 보태어지는 캐스팅 보드 역할도 하는 다재다능한 것이 바로 피라는 것이다.

노련한 노름꾼이라면 흑싸리 껍질의 힘과 위력을 이미 알고 있는지라 함부로 대하지를 않고, 정 먹을 패가 없을 때에는 육목단 열끗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고스톱 판의 육목단 열끗 같은 내 아내는 흑싸리 축정이 같은 남편보다, 자기가 점수 나는 데 큰 보탬이 되는 줄 착각을 하고 있다.

고스톱 판 같은 인생살이에서 앞으로도 얼마를 더 피박을 써 가면서 돈을 잃어 봐야 육목단 열끗이 하찮고, 흑싸리 껍질이 중요하다는 것은 돈 잃어 가면서 본인 스스로가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곧 화투판에서 육목단 열끗을 지칭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 소리를 아내한테 해 봐라. 화투판(살림) 엎어 버려 파토가 날지도 모를 일이다.

어이 육목단 열끗! 청단 나는 것이 아닐 바에는 육목단 열끗으로 굳이 청 띠를 먹으려 하지 말고, 바닥에 흑싸리 쭉정이라도 깔려 있을 때 얼른 먹고 피박이라도 빠져나갈 생각이나 해라. 육목단 열끗 소중히 생각해 봤자, 그것은 곧 돈 잃는 지름길일 뿐이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