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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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손금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7.14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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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지나간 것은 항시 아쉬움을 남긴다고들 했다. 지나간 한해의 아쉬움을 지워내기도 전에 다가오는 한해를 계획도 없이 맞이했다. 올해의 결심은 다가올 미래에 자신을 맡기고 세상 순리에 휩싸여 살겠노라고 초연한 자세로 말해보지만, 생각하면 자신감의 상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미래의 계획이 세워져 있고 자신감이 가득 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당치 않는 일이겠으나,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불안감으로 점을 쳐 보기도 하고, 토정비결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엿보기도 하는 것이다.

사업 운이나 취직 운이 따를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언에 기대를 걸고 조심도 해가며 한해 중에 어느 쯤에서 나를 기다릴 행운을 생각하면서 마음도 설레 봤을 것이다. 현실이 좋게 나온 점괘대로 된다면야 말할 나위가 없으련만 일 년을 거의 다 보내도록 따른다는 취직 운은 어느 곳으로 증발했는지 이력서는 주머니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 나타난다는 귀인은 얼마나 걸음이 더딘지 그 해가 다 가도록 올 줄을 몰랐다. 또 한 번 속았다고 생각하면서 푸시킨의 ‘삶’이라는 시구를 명약으로 마음속에 아로새기고 새해를 맞았다. 그리고는 새로운 운세에 다시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다.

이천 년이 시작된다며 새천년맞이로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들떠있을 때 지나가는 나를 잡고서 생면부지 관계인 나의 직업을 정확하게 맞추어 나를 놀라게 했던 점쟁이가 있었다. 그는 아울러서 올해는 오곡백과가 풍작을 이루어서 새롭게 땅도 장만한다며 부까지 미리 점쳐주었다. 길복을 미리 알려주면서 봉사 차원으로 하는 일이라서 복채도 필요 없다는 것을 억지로 돈까지 집어주었다. 그리고 예언자의 부적처럼 그 말을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열심히 일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서 내가 힘들게 장만했던 논을 힘 안들이고 쉽게 팔아야 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어린 시절에 이웃집에서 만신을 불러다 신년 맞이 굿이나 푸닥거리를 할 때 상투적으로 들었던 말 중에 육칠 월에 아이들 물조심하고 겨울에 아궁이 불조심하라는 말을 꼭 들었다. 만신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 일은 누구나 조심하는 일인데 만신의 말이라 새겨듣고는 했다. 살아가며 그 예언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느끼면서도 반 호기심 반 장난으로 귀를 기울이고는 했었다.

한번은 용한 손금쟁이가 왔다며 큰어머님이 손금를 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내 조카인데 내 손금 본 개평 값으로 조카의 손금 좀 봐주라면서 나를 잡아끌었다.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서 사람들 미래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치는 메이커 급이 아닌 이동성 비 메이커 급의 손금쟁이 할머니에게 내 미래를 알아보는 것이 꺼림칙했으나 큰어머님의 성화에 손을 내밀었다.

손금보다도 검은 얼굴과 갈퀴발 같은 손가락을 보고서는 고생깨나 했다는 말은 당연지사 나올 수 있는 소리였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을 듣고 점으로 미래를 알 수 없다고 점을 불신하던 내가 맹신 쪽으로 급선회를 한 것이다. 내가 늦게 결혼한 것 까지 맞추더니 마누라가 싸라기밥을 처먹었는지 서방한테 왜 그리 틱, 틱, 거리냐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금쟁이 할머니의 손을 덥석 잡았다. 기가 막히게 잘 맞혔다. 탄복을 하면서 말이다. 할머니의 손금 보는 실력을 완전히 믿기로 했다. 손금쟁이 할머니말로는 젊어서 고생은 하겠지만 사십대 후반에는 살림이 펴져서 마누라가 손에 물도 안 묻힐 것이라고 했다. 당시의 내 나이가 삼십대 후반이어서 까마득한 미래에 닥칠 믿거나 말거나 한 예언이었지만 무조건 믿기로 했다.

2002년 드디어 사십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손금쟁이 할머니 말대로 지금 내 아내는 손에 물도 안 묻히느냐구요?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내 아내는 수영장에서 머리끝서부터 발끝까지 아예 물에 담그고 있다. 그것도 부족해서 물속으로 잠수까지 하는데 손가락으로 물을 튀기는 것이 아니라 발가락으로 물을 튀기고 있다. 손금쟁이 할머니가 말하기를 내 아내는 손가락으로 물을 튀긴다고 했는데 발가락으로까지 물을 튀기니 그 손금쟁이 할머니가 혹 못 맞춘 것 아닌지 모르겠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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