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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인격적 ‘갑질문화’ 근절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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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인격적 ‘갑질문화’ 근절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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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1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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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지난 6월 26일 서울대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던 여성 노동자 59세 이모씨가 관악학생생활관(서울대 925동, 기숙사)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진 채 발견된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숨진 이모 청소노동자에서 극단적 선택이나 타살 혐의점은 보이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고, 평소 지병이 없었으며 건강한 편이었다는 게 유족과 동료 노동자들의 전언이다.

그런데 유족과 동료들은 이모 청소노동자의 숨진 원인을 과도한 노동 강도의 힘든 업무와 군대식 업무지시와 갑질 등 직장 내의 괴롭힘 때문이라며 ‘갑질 사망’을 주장하고 나선 가운데 서울대 측은 ‘마녀사냥’이라고 반박함으로써 논란이 일고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고인의 사인(死因)이 과로나 괴롭힘 때문이었는지는 현재 서울대 인권센터에서 직장 내 갑질 여부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고 있어 정확한 것은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숨진 이모 청소노동자가 홀로 담당했던 관악학생생활관은 196명의 학생이 거주하는 비교적 규모가 큰 기숙사로 화장실 8개와 샤워실 4개가 있는 기숙사 전 층 모두를 혼자서 청소를 해왔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학생들의 배달 음식 주문이 급증하면서 쓰레기양이 급격히 늘어나 1년 6개월간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건물에서 꽉 찬 100 리터 들이 쓰레기봉투 6~7개씩과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 등을 매일 혼자 들고 나르는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여러 차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과 동료들에 따르면, 이곳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은 학생들처럼 어처구니없는 필기시험을 치러야 했다고 한다. 시험의 내용은 더욱 황당하다. 건물의 명칭을 영어와 한자로 쓰라는 문항이 있는가 하면, 건물의 준공연도는 언제 인지를 묻는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건물을 깨끗하고 청결하게 유지하고 편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는 청소 업무에 이런 지식이 왜 필요한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단순히 시험을 치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시험 성적을 공개해 망신까지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기이한 시험과 성적 공개는 그동안 정기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고 모욕감과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와 같은 ‘갑질 피해’ 의혹에 대해 서울대 일부 관계자들은 실제 청소 결과 100 리터 들이 쓰레기봉투는 2개 이내라거나 필기시험은 유학생이 많아 현장 근로자들이 외국인을 응대하는 경우가 많아 직무교육 차원에서 시행했다거나 드레스 코드는 업무회의 후 바로 퇴근하라고 사복으로 갈아입고 오시라는 취지였다고 반박하고 나섰지만, 일부 보직교수들이 자기 책임을 덮으려고 오히려 온갖 궤변과 망언을 쏟아 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면서 국민의 공분만 더해지고 있다.

심지어 건물 청소를 일찍 끝내고 휴게실에 간 한 노동자에게 근무지 이탈이라면서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고인이 사망한 뒤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갑질에 더 큰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성의 전당이자 양심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대학에서 그것도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인 서울대에서 비인격적 행태가 자행된 것에 대해 싸늘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존중하지 않는 서울대의 이러한 부끄러운 민낯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이라는 간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라는 표현을 담은 반박 글로 논란의 중심이 됐던 학생처장의 보직 사퇴는 결국 수리되었다.

서울대가 학교 안에서 발생한 청소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해 개인 질병인지 아니면 업무로 인한 질병인지를 먼저 판단해야만 할 사안이지만 고용노동부에 즉시 신고하지 않고, 교내 인권센터에서 조사하는 등 자체적으로 산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의혹이 일고 있고,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을 수도 있는 사업주가 스스로 사건을 셀프 조사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이런 가운데 급기야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7월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하여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일부 통상적인 업무를 벗어난 부분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보고 있고, 조사를 토대로 개선조치를 마련토록 하겠다”라고 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은 ‘공정’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리는 기울어진 사회구조 이면에 도사린 ‘능력주의의 덫’에 걸려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가 속고 사는지도 모른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워주는 능력주의(Meritocracy)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존 롤스(John Rawls)는 “능력주의가 민주적일지는 몰라도 공정성에 위배 된다”라며 배격했다. 마틴 루서 킹(Martin Luther King, Jr.)은 “도덕 세계의 궤적은 길다. 그러나 반드시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라고 말했지만, 능력주의는 불평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을 의무화하고 가해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을 통하여 인식변화와 조직문화가 바꿔나가야 한다. 법 적용에서 제외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대책도 강구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갑질이 용납되지 않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우리 주변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고된 일을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격권과 쾌적한 노동환경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강제적인 제재 수단이 조속히 만들어져 서둘러 시행해야만 한다.

[전국매일신문 전문가 칼럼]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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