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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알면 다쳐!’ 세상에서 시민 지키는 금과옥조, 버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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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알면 다쳐!’ 세상에서 시민 지키는 금과옥조, 버릴까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7.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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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논설위원은 신문사 고참 기자다. 말 대접 좀 하자면 ‘중견 언론인‘이다.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얼마 전까지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하다 관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 캠프의 대변인을 했던 이동훈 씨가 SBS 기자에게 ‘취재원이 누구냐?’고 물었다고 한다. 기사 일부를 보자.

...이 전 대변인이 지난 13일 밤 10시30분경 한 기자에 전화를 걸어와 “어떤 취재원으로 하신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봤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고참 기자가 (후배) 기자에게 던진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다. 풀어보니, 누구에게 들었느냐 말하라 하니 말 못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경찰서 형사계에서 들린 얘기가 아니다. 기자들끼리의 (전화) 대화라니 문제가 된다. 비리의 내용보다 이 대목이 중요할 수 있다.

누구건, 경찰도 검찰도 기자에게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하고 묻는 것은 금물(禁物)이다. 이말 저말 옮기고 다니는 사람은 대개 몹쓸 사람이다. 세상사도 그러하나, 이 일은 언론동네의 논리와 윤리로만 설명해보자.

‘알면 다쳐!’ 코미디 대사 같지만, 무서운 말이다. 세상 여러 조직의 ‘선의의’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또는 자신이 관계된 비리(非理)를 세상에 알리지 못하는 정황을 짐작케 한다. ‘착한 뜻’이라는 말 선의(善意)는 법률의 언어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제 의도는 아니지만 ‘조직 논리’상 비리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안타깝게 숨져간 공군 이 중사 사건의 줄거리를 훑어보면서도 ‘선의의 살인자’들이 여럿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언론은, 제보(提報)가 밥이다. ‘특식(特食)’도 있겠으되 미끼 달리지 않은 것 없고, ‘자기 횃불 들어 달라.’는 은근한 부탁도 많다. 그러나 독자 시청자로 불리는 시민 일반의 제보가 거의 모든 (쓸 만한) 기사의 출발점이다.

내부자나 선의의 참여자의 용기 있는 발설(發說)도 중요한 제보다. 그 제보 제공자의 신원(身元)을 지키는 일은 언론의 신성한 의무이고 권리다. 언론인 직분의 바탕 윤리다. 시민의 삶을 지키는 방패이자, 적폐(積弊)를 무찌르는 창인 것이다.

기자에게 혹시라도 “누구한테서 그 얘기 들었소이까?”라고 물으면 뺨 맞을 수 있다. 기자의 본디를 포기하라는 얘기이니. 왜? 언론이 누가 제보자인지를 누설(漏泄)했다 치자, 어느 누가 그를 믿고 장차 제 위험이나 손해를 감수할 것인가? 공든 탑 무너지는 꼴 보이지 않는가.

제보(자)에 문제가 있으면 채택하지 않거나 문제점을 제보자에게 확인하고 활용 범위나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일단 채택했으면, 그 내용이나 결과가 법률과 배치(背馳)되더라도, 사법기관이 ‘누구냐’ 물어도 취재원을 지켜야 한다. 이때 책임을 언론이 질 수 있다.

취재원을 밝히지 않기 위해 감옥에 가는 해외 언론인, 언론이라는 제도가 존경받는 이유로 거론된다. 취재원 비닉의 ‘원칙’이다. 전직 고참 기자가 취재원(取材源)이 누구인지를 (기자에게) 물었다는 얘기는 참으로 황당하다.

비닉은 잘 숨겨준다는 뜻이다. 원칙은 기본 법칙이다. 기본은 귀중한 가치다. 언론학의 첫 장이랄 수 있는 취재원 비닉의 이 가치, 하도 당연해서일까 따로 언급되지도 않는다. 그러다 세상 기본 망가지니 이런 망조(亡兆)도 생겨나는가 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문명비평가·우리글진흥원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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