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화의 e글e글] 거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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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의 e글e글] 거절의 미학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8.0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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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거절을 잘한다는 것은 거절당한 상대방이 섭섭함이나 원망심을 적게 느끼도록 하는 기술이다. 특히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의 관운(官運)에는 거절 여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인의 청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다가 옷을 벗거나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주변의 민원 사항을 무조건 단칼에 자르기만 하면 인정머리 없이 자기밖에 모른다고 욕을 먹기 쉽다. 기술적으로 거절을 잘하는 방법은 없을까 다년간에 걸쳐 거절 잘하는 사람들의 실전 매뉴얼을 관찰하여 보니 이렇다.

▲청탁이 들어오는 전화는 비서가 받아서 응대한다. "부탁하신 그 내용을 정확하게 장관님(총리님, 의원님)에게 전달하겠습니다"

▲사나흘 뜸을 들인 이후에 비서가 다시 그 청탁자에게 전화를 건다. "장관님께서 각별히 챙기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 부탁 건보다 장관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 민원 해결을 위한 해법을 반드시 찾아내서 보고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2~3일 지난 이후에는 이렇게 비서가 말한다. "관계 부처 장관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해당 부처 장관에게 직접 이야기했으니까 뭔가 해답이 있을 겁니다"

▲"그쪽에서 알아보겠다고 합니다.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알아본 결과 실무자 쪽에서 하는 이야기가 '이 건은 이런 이런 규정 때문에 어렵다고 합니다. 어려워도 좀 밀어붙여 달라고 이야기하였지만 실무자 선에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네요"

이쯤에서 민원인의 섭섭함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몇 단계 더 상담을 진행하면서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장관님께서 이 사실을 보고받고 너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다른 식으로 규정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재검토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실무자에게 다시 한 번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해 놓았습니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되어 가지고 윗선에서 얘기해도 아래쪽에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번 건에 대해서 장관님이 너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장관님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단계 방법으로 시차를 두고 청탁을 거절하면 크게 원망을 듣지 않는다. 이게 경륜인지, 농락인지, 아니면 미학인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윤병화 성남미래정책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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