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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손더스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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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손더스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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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8.31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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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결혼을 한 후 아내가 시가에 들어오는 날 나는 보았다. 아내의 실망에 찬 눈빛은 훈련을 마친 신병이 부대에 배치될 때 후방이나 수도권에 있는 비전투부대가 아닌, 포탄이 서로 교체되는 최전방 참호 속으로 배속되었을 때의 바로 그 눈빛이었다. 많은 부대 중에 자기가 배속된 부대(시댁)의 가난함에 전의를 잃고 망연자실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도저히 전투(살림)를 제대로 치러낼 성 싶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혼이라는 연을 맺고서 전우(부부)가 되어, 생존경쟁이라는 싸움터에서 살아가기 위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 전쟁터에서 승리한 자에게 쏟아지는 환호성을 영화에서 숱하게 보았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드골의 파리 입성이나, 맥아더의 귀국 때 연도에서 환호하는 군중들은 생각만 해도 짜릿한 전율이 일어나게 했다. 그 기분은 전쟁터에서 승리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격이다.

저 앞 미래의 산 너머 어딘가에 있을 행복이라는 도시에 입성하기 위해서, 빈약한 무기(살림)를 챙기며 전선으로 발을 내딛는다. 특별한 방탄복도 없으니 저격을 피해서라도 시야가 트인 평지를 걷지 못하고 산악 루트를 선택했다. 그만큼 삶이 고달프다는 얘기다. 처지와 상황도 모르는 아내는 그 좋은 길 놔두고서 이 무슨 고생이냐며 볼멘소리를 달고 쫓아왔다. 전투에서의 불평은 전투력의 상실로 이어지니, 그렇게라도 불평을 하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탈영(이혼)이라도 하라고 권했다. 내가 말없이 보내주겠노라고 했다. 산등성이를 넘을 때까지 쫓아오지 않고 서있던 아내는 눈물을 머금고 쫓아왔다. 내 기필코 부와 행복이 있는 그 곳까지는 당신을 데려다 놓고 죽어도 죽겠다고 맹세를 했다.

산 밑 도로에 견인포를 단 군용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포병은 삼보 이상 승차고, 보병은 삼보 이상 구보라는데, 병과(부모) 잘 맞나면 그만큼 호강하는 것이다. 산 넘고 골짜기를 건너는 동안 본대(부모)로부터 변변한 보급(재산)도 받지 못했다. 자급자족으로 살길을 찾아나갔다. 그야말로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뱃속을 채우고 풍찬노숙(風餐露宿)으로 날을 보내는 동안에 나는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했고, 아내는 부황(浮黃)이 들기도 했다. 형편이 그러할 때 죽은 동물하나가 눈에 띠었다. 뱃속이 유혹을 하는데 아내가 한사코 말렸다. 의심나는 음식물(뇌물)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라고 말했다.

발은 부르트고 목은 마르면서, 없는 살림에 살아가는 몸 골이 말이 아니었다. 재산 있는 집 친구들이 전진하는 길에는 부모들의 화력(돈)지원이 뒤따랐다. 빈한(貧寒)한 우리 부모의 살림살이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오랜 시일이 흐름면서 전투(살림)경험도 늘었고, 허리띠 졸라 맨 덕으로 자동소총(畓)도 한정 구입하고 보니 배짱도 생겼다. 배짱이 생겼다 함은 곧 겁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서 편하게 목적지까지 가고 싶은 마음으로 산에서 내려와 도로가에 접어들었다. 찰나 견인차에서 내린 친구는 공용화기의 열세로 엄호사격을 못해서 전진에 힘이 든다며, 나중에 실탄을 두둑이 보충해 주겠다면서 나의 자동화기(담보물)를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아내의 못마땅해 하는 표정과 내 호신용을 누구를 빌려주나 망설이는데, 친구는 거의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결국 마지못해 빌려주고 우리는 다시 산악 길로 접어들어 고생을 자초했다.

아이 둘을 껴안고 산등성이를 타고 골짜기를 기는 것을 반복하면서 여로에 지칠 무렵, 산위에서 내려다 본 개할지(開豁地) 끝으로 아물아물 행복이라는 도시가 보였다. 목적지가 보이므로 마음이 들떴다. 앞은 평탄하기 그지없는 개활지요. 그 벌판 끝에 우리 가족이 십 몇 년이나 오매불망하던 행복이라는 도시가 보이는 것이다. 이제는 그곳에 환호성을 받으며 입성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결혼생활 십칠 년을 두고 보면서 위기에 대처하는 당신의 능력이, 어렸을 때 보았던 TV 외화 <전투>에 나오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아내는 빅모르와 릭 제이슨 주연의 <전투>에 나오는 손더스 중사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손더스, 나는 당신을 믿으니까 너무 조급한 마음 가지 말라는 아내를 쳐다보니, 그곳에는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격은 역전의 용사(아내)가 진로를 찾기 위하여 쌍안경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 조금만 기다리자. 개활지의 관목이 자라서 엄폐(掩蔽)까지는 안 되더라도 은폐(隱蔽)할 수 있을 때까지만 이라도.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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