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데스크席] 왕조시대의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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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왕조시대의 DNA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1.09.0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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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연좌제는 범죄자의 친족, 혹은 가까운 사이나 이웃을 주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께 처벌하는 근대 이전의 사법제도다.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은 중세 이후부터 시행 사례를 찾기 힘든 반면, 혈연 중심의 동양에선 일부 지역에서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에 반역자의 처자식을 처형한 뒤 목을 자르는 등의 연좌형을 대명률(大明律)에 의거해 시행했다. 대역죄의 경우 3족(부계, 모계, 처계)을 멸하기도 했다. 연좌형이 폐지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에 이르러서다.

그나마 한국은 연좌제 금지가 현재 헌법(13조3항)에 명시돼 있지만 일본에선 아직 헌법에 포함돼 있지 않다. 철로에 투신자살한 사람의 유가족에게 손해배상을 물리는 일본 법이 ‘연좌제의 유산’이란 분석도 있다. 다섯 가구에 한 명씩 선전원을 배치해 가족생활까지 감시, 통제하는 북한의 사례는 말할 것도 없다.

헌법상 금지돼 있다고는 하나, 우리 사회에도 연좌제의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자신의 죄로 혈족이 단죄되는, 권력에 반동하는 반역죄는 그 친족에 더하여 외족과 처족까지 3대를 멸한다는 연좌제가 있었다.

동서고금을 불문(不問)하고 성문이든, 불문(不文)이든 ‘근대국가’ 출현 이전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1980년에 출범한 제 5공화국 헌법 제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없어졌다. 제13조 3항에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는 조문이 그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연좌제를 금지했다. 이로써 연좌제는 공식적으로는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직접적인 처벌을 하지 않을뿐이지 여전히 우리 사회 내에 존재하고 있다. 과거보다 더욱 치밀하고, 지독한 방식으로 말이다.

범법 및 범죄를 단순히 실수라는 말로 그 무게를 가볍게 할 수는 없지만, 연대책임에서의 이런 양상은 연좌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는 “누구누구 아버지/어머니가 범죄자라던데”, “그 부모에 그 자식이지”라는 말로 누군가를 가해자로 낙인 찍어버린다. 이런 명제들은 과거 공포 정치의 수단처럼, 범죄를 사전에 막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미 범죄가 일어났을 땐 또 다른 폭력을 낳곤 한다.

많은 부모가, 자식이, 연인이, 사람들이 타인의 행위로 인한 질타를 받고 불이익을 겪고, 같은 ‘가해자’로 불리며 사회에서 내몰린다. 결국 연대책임의 구조를 부당하다고 여겼던 개인들이 도리어 연대책임을 ‘강요’하는 셈이다.

어느 국회의원이 아버지의 농지법 위반으로 그 직을 사퇴했다. 결기가 예사롭지 않다. 행위자와 관찰자의 시선을 동일시하는 모범으로 보인다. 교육심리학의 귀인(歸因)효과로 설명하는 ‘내로남불’ 부당을 몸으로 웅변했다. 그러나 의도 모두가 순정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귀책이 아닌데서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서 돈을 불리려고 한 아버지의 자식이 죄가 될까. 농지법을 위반함으로써 투기 프레임이 맞다. 그것으로 아버지한테 문책하면 된다. 규범적 하자는 있겠지만 국회의원직을 던질 사안은 못된다.

대의정치의 책무를 가볍게 보는 경박한 처신이다. 그 지위가 높아서가 아니다. 십 수만 유권자의 기대회피, 한 개별적 헌법기관 상실, 국가적 손실이다. 기자회견이나 방송활동과 달리 빛나지 않지만 값진 의정활동이 무진하다. 입법의 합리성을 제고하는 일, 방만한 정부를 견제하는 일, 국민의 살림살이 살피는 일, 참 많다. 결코 쇼일 수 없지만, 솔선과 희생이 깃든 이기적이며 망상적 공명심으로 보는 눈길도 있다.

과연 누가 이 기형적인 현실을 마땅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연좌제를 반대한다고 해서, 가해자의 범죄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그 범죄행위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괜히 불똥 맞은 사람들의 억울한 입장도 헤아려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가해자를 비판하던 우리도, 사실 누군가에게는 폭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가해자일지도 모른다. 철학자 니체의 말마따나, 괴물과 싸우며 괴물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심연을 더욱 비춰봐야 할 것이다.

똑같은 가해자가, 방관자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연좌제식 발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왕조시대의 DNA가 21세기에까지 짙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인가.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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