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온달과 평강
상태바
[기고] 온달과 평강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09.15 09: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나나 되니까 이러한 집에 시집와서 살지” 신혼 초에 아내에게서 자주 듣던 푸념과 한탄조의 소리였다. 그 말은 듣는 즉시 말이야 바른말이지 아무나 이러한 집으로 시집을 오나? 평강공주나 되니까 바보온달네로 시집을 오지. 평범한 사람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라며 응수를 했던 적이 있었다.

선을 처음 보는 순간에 저 남자가 내 남편감이라고 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내가 아니면 저 남자는 사후 몽달귀신이 될 것만 같아 보였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쉽게 결혼할 수 없는 악재가 겹쳐 있었다. 우선 농촌총각이라는 멍에를 벗지 못한 상태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며, 저학력에다 인물도 훤하지 못하고 빈약한 살림에 뚜렷한 직업마저 없었다.

그렇지만 평강공주는 역사에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결혼을 통해서 비로 서 터득했다. 말이 좋아 신혼이지, 쓰레기장에서 장작개비나 나무토막을 주워 아궁이에 불 지펴 한겨울 추위를 견디기도 했다. 급기야는 아내의 제의로 연탄장사를 시작했다. 아내와 같이 연탄 경운기를 타고 다니며 시가지에 연탄 배달을 했는데, 경운기 위에 나란히 앉아 달리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며 미국 서부 개척시대 때 역마차에 나란히 앉은 개척민 부부를 연상하기도 했다.

아내가 어쩌다 한번쯤 쏟아놓던 푸념도 사라졌다. 대신에 내가 비관적으로 말하는 것을 아내는 극도로 싫어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같은 입으로 하는 말이 세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만치, 이왕이면 긍정적인 말을 하라고 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적극적인 행동을 유발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이루어진다는, 내가 듣기에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내세우며 나를 가르쳤다.

그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았다. 한 예로 농기구 센터에 유리로 보호막까지 한 신형 트랙터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것이 부러워서 연탄 경운기를 타고 다니며 값을 물어보기만 하니까 종업원은 나만 보면 트랙터 값을 복창하고는 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으랴? 연탄 경운기도 내 것 잃어버리고 남의 것 빌려서 사용했는데, 근 이천 오백 만 원이나 하는 트랙터 값을 물어본 지 일 년도 안 되어서 내가 구입할 줄을, 아내의 말처럼 말이 씨가 되었나 보다.

아내가 웃으면 긍정적인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감추어두었던 돈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웃는 얼굴에 떡 하나라도 생기지, 우는 얼굴 대접받는 일은 초상집밖에 더 있냐고 말했다. 사람들은 곧잘 아내를 부잣집 맏며느리 감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 말 덕분인지 송곳하나 꽂을 땅 한 평 없던 살림이 결혼 19년 동안 과수원 포함하여 작은 전답을 장만하여서 중농대열에 접어들었다. 그것이 아내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결과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청에 오 년여 다니다가 IMF해고를 당했을 때였다. 실망감이 도를 더해 패배감음으로 좌절할 때, 사람이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오만상 찌푸릴 일이 있냐고, 오던 복도 달아나게 생겼다며 전화위복(轉禍爲福)을 부르짖은 것도 아내였다. 그동안 시간이 없어서 미뤘었는데 이 기회에 잘 되었단다. 활쏘기와 말타기 그리고 검법을 배우라며 격려와 독려를 했다. 아내는 드디어 평강공주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남편의 이름인 바보온달에서 ‘바보’자를 빼고 이름 뒤에 ‘장군’자를 붙이는 작업에 돌입했다.

시간이 있으니만치 글이나 배우라면서 문예대학 수강신청을 독려했다. 아내 말을 듣다보면 자다가 떡도 생길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아내의 말대로 자다가 떡이 생겼다. 문예대학을 계기로 두세 군데의 문학단체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등단도 하게 되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화구를 챙겨주며 하고 싶었던 취미, 이 기회에 하라며 서양화를 배우러 다니게 하였다.

하루는 친목회에서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다. 식사시간에 설핏 본 아내의 얼굴이 심상치 않더니 집에 와서 터졌다. 똑 같은 상에 앉아서 밥을 먹는데, 당신은 하필 상모서리에 끼어 앉아서 얻어먹는 밥 먹는 것처럼 그 모양이냐며, 언짢은 심기를 쏟아냈다. 못되고 나쁜 일이라도 변두리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중심에 앉아서 하라고 했다. 지금도 나의 평강공주는 남편 기 살리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호시탐탐기회를 엿보고 있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