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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동네 병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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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동네 병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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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2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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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집 앞에 병원을 짓는데 나날이 층수가 올라가는 것 같다. 풍문에 듣자하니 우리 지역에서 제일 큰 병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할 일 없는 마을 노인네들이 병원신축현장에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를 들으며,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지만, 우리 동네에 병원이 생길 줄을 누가 알았느냐면서 옛날을 회상했다.

지금은 김포시내에 병원이 즐비하여 번화가에 구멍가게 들어선 것만큼이나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어떤 건물은 사람의 신체 각 부위별로 세분화한 병원들이 개원하고 있어서 다 죽어 가는 사람도, 그 건물을 풀코스로 한 바퀴 돌고 나면 건강해져서 나온다는 우스갯말까지 있다. 현재는 병원이 즐비하여 의료혜택을 받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병원이 부족했던 내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그 당시 읍내에는 의원(醫院)이 두 곳 있었다. 한곳은 성함을 그대로 이용한 ‘이정택 의원’이었고, 또 한곳은 의원 자도 없이 사람들 입으로 떠도는 ‘윤공의’였다. 의사가 왕진이라도 나갈 때는 앰뷸런스는 생각지도 못하고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가는데, 화급(火急)을 다투는 환자나 있을 때에나 택시를 겨우 이용할 정도였다.

우리 동네에 여물에 섞인 뱀을 먹고서 황소가 미쳐 날뛰었을 때였다. 미친 황소 한 마리로 온 동네가 무법천지가 되었다. 수숫대 엮어서 만든 담벼락은 미친 소가 휘두른 꼬리만 맞고도 우수수 무너졌고, 초가지붕은 미친 소가 내뿜는 콧김만으로도 이엉이 벗겨져 날아갈 지경이었다. 미친 소가 동네를 어지럽히는 것이 미친 말이 파밭 뭉개는 것보다도 쉬워 보였다.

밤에 동네 장정들이 횃불을 매어달은 장대로 소를 몰아세웠다. 그 와중에 동네 사람 한 명이 크게 다쳤다. 죽겠다고 뒹구는 환자를 마차에 태워서 사람들이 개미떼같이 달라붙어서 끌고 밀며 의원을 향해서 달렸다. 비포장도로를 고무바퀴도 아니어서 덜커덕거리는 마차 바퀴 소리와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앰뷸런스의 경음기 소리보다 더 요란했다. 미친 소가 따라붙지 못하게 횃불 들은 사람들이 마차를 호위해서 같이 뛰었다. 마차 주위에서 넘실대는 불빛이 앰뷸런스의 경광등보다 더 번쩍거렸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렸을 때 보았던 그 앰뷸런스보다도 더 요란한 앰뷸런스는 보지 못했다.

어려서 배 아팠을 때는 할머니 손으로 쓰다듬는 것으로 치료를 대신했고, 감기 몸살에는 할머니 등에 업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골절상 한번 입지를 않아서 병원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했던 차에 나이 이십 넘어서 병원에 갈 일이 생겼다. 중동건설경기가 한창일 때에 해외 취업을 나가게 되었다. 근로를 감당할 수 있는 신체조건에 결격사유가 없어야 된다는 글이 꽤나 크게 보였다.

겉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는 것 같은데 입안의 충치가 마음에 걸렸다. 입 다물고 있으면 되련만 그 당시 어는 곳을 보나 ‘자수하여 광명 찾자!’라는 글이 좀 흔해 빠졌던가? 입 다물고 충치를 감출 것이 아니라 자수하는 셈 치고 충치를 뽑기로 했다. 친구가 말하기를 충치에 관한한 명의(名醫)가 있는데, 중국의 편작(扁鵲;BC401~BC310)이나 우리나라의 허준(許浚;1539~1615)은 명함도 못 내놓을 정도의 신의(神醫)라고 귀띔을 해 줬다. 그 의사는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기를 꺼려하며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하면서 치료를 한다고 했다.

요즘 같은 자기 과시의 시대에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렇다! 무협지를 보더라도 신기에 가까운 고수들은 원래 깊은 산속에서 은둔생활을 하지 않는가 말이다. 저절로 믿음이 갔다. 그뿐만이 아니고 요금은 일반 치과의 반액 정도의 금액을 받는다고 했다. 히포크라테스의 강령을 고지식하게 실천하는 근세에 보기 드문 의사다운 의사를 여태껏 내가 몰랐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화가 치밀었다.

덧붙이기를, 신기에 가까운 치과기술을 가졌으면서도 의사면허가 없는 탓으로 치과의사라 하지 않고 ‘이빨의사’라 하는데, 한수 더 떠서 ‘돌팔이’라고 사람들이 불러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병원을 격하시켜서 ‘야매’라고 놀림 비슷하게 말해도 명칭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게 대처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존경심마저 생겼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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