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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동네 병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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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 동네 병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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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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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저렴한 값의 실력이 있는 의사를 찾아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려서, 들판을 건너 산을 넘고서 명의를 찾아갔다. 산 밑에 암자라고 보기에는 크고, 호화주택이라 부르기에는 초라한 집이 있었다. 그 곳에 정말 하얀 사람이 있었다. 머리와 수염이 하얀 것이 아니고, 흰 가운을 걸쳐서 그렇게 보일 따름이었다.

고수의 품위는 날카로운 눈매와 하얀 수염이 말해 준다고 했다. 내 앞에 있는 의사는 가냘픈 금테 안경 속의 날카로운 눈매와 흰 가운으로 의사의 품위를 대변하는데, 저 정도의 의사에게는 내 치아 전체를 맡겨도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정적 심리가 작용했다. 튓마루 지나 사랑방 안에 가지런히 정돈된 의료기기와 은은히 풍기는 크레졸 냄새는, 병원 구경 제대로 못해 본 시골뜨기에게 말로만 듣던 종합병원에 온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볼에 마취주사를 두 대 맞은 후 얼굴을 꼬집어보니 아픈데도 의사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생각하여 안 아프다고 말했다. 드디어 의사가 이빨을 뽑는데, 어찌나 아픈지 머리가 쭈뼛 서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아팠다. 이빨을 뽑는 의사나 뽑히는 환자가 복중에 비지땀을 연신 쏟아냈다. 신체에서 신경이 닿는 곳은 거의 다 아픈 것 같은데, 마취한 것이 이 정도이니, 마취를 안 하고 치료를 하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하며 정신적인 마취로 위안을 삼았다.

윗니가 제대로 안 되니 아랫니를 뽑자 한다. 중도에서 포기하면 아니 감만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아랫니까지 맡겼다. 그런데 그 이마저 제대로 안 뽑히고 속을 썩였다. 직감적으로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의사의 집게질에 이제는 몸까지 따라 움직였다. 그야말로 이 뽑다가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의사가 무엇을 봤는지 가운을 벗어던지고 산으로 달아났다. 달아나는 의사의 뒷모습에서 의사의 존엄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보사부 직원이 급습한 것만 같았다.

웬 사나이가 얼굴이 노래 가지고 화가 잔뜩 난 채로 들이닥친 것이다. 그 순간 나의 순진성이 또 작동되었다. 공급이 있으니 공급자인 내가 잘못이다. 그러니 저 의사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하려는데, 소리는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입안에 잔뜩 문 솜에 피가 벌겋게 젖은 것이 거울에 비치는데, 영락없이 얼은 수박 입에 물고 쩔쩔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의문의 사나이가 하는 말을 듣고서야 나는 정신이 아찔하여 비시시 벽으로 기대었다. 들이 닫친 사나이가 진짜(?) 의사이고, 여태까지 내 이를 희롱한 사람은 의사의 조수였다고 했다. 내 이를 확인하던 진짜 의사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하더니 이번에는 의사가 핏기를 잃고 마루기둥에 몸을 비시시 기대었다.

잠시 후 정신을 수습한 의사가 당신 괜찮냐고 근심스럽게 물어봤다. 어서 사지(死地)를 벗어나고픈 마음에서 안 괜찮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의사는 당신이 죽고 싶어 환장했냐고 말했다. 한꺼번에 이를 두 개씩이나 뽑는 인간이 어디 있냐며 한심한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이가 흔들거렸지만, 의사는 다리가 흔들거렸다. 오늘은 안 되겠으니 일단 집에 가있다가 부기가 빠지면 그때 다시 찾아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모퉁이를 돌았는데도 땀 한 방울 나지를 않았다. 이를 잡아 흔들 때 한 방울의 땀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쏟은 모양이었다. 그 이 치료소를 내 발로 다시 찾아간다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일이 될 것만 같았다. 어림없는 소리다. 차라리 호랑이굴을 찾아가는 것이 나을 성싶었다. 헌데 그 와중에 치료비는 선금으로 다 지불했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인가? 더운 열사의 땅에서 이 생각하면 소름이 돋고 으스스해지는데, 열너덧 번 생각하니까 본전이요. 그 후로도 꽤 여러 번 이를 생각하며 공포감으로 시원하게 보낸 무형의 이익금이 꽤나 되었다. 지금도 가끔 이가 아플 때 그 당시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이 아픈 것이 금세 사그라졌다. 의사 생각만 해도 이가 아픈 것이 멈출 정도니, 친구의 말처럼 과연 그 돌팔이들이 명의(名醫)는 명의(名醫)였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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