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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복날은 간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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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복날은 간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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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0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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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대신 연분홍 복사꽃이 봄바람에 흩날리며 봄날은 가건만, 몇 달째 비다운 비 구경을 못했다. 양수기 네 대가 연신 물을 뿜어 올리고 밭고랑을 가로지른 물 호스에 걸려 넘어질 뻔도 했다. 그러한데도 부추 밭에선 흙 버짐이 일어났다. 세상이 말라붙는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깡마른 얼굴에 주둥이만 걸린 내 모습이 가끔 운동 삼아 논에 물꼬 보러 오는 목사님 눈에도 안쓰럽게 보였었으나 보다. 목사님이 개고기 스무 근을 줄 터이니 몸보신하라고 한다.

이삼 일 지나서였을까 목사님이 젖을 떼지도 않았을 법한 검정개 한 마리를 갖다 놓으며, 경비견으로 키우다가 스무 근쯤 되면 잡아드시라고 했다. 먼저 번에 목사님이 말한 개고기 스무 근이라는 것이 고작 검정 양말 한 짝만도 안 되어 보이는 새끼 개였다. 그래도 강아지라면 하얗든가 얼룩무늬가 있다면 좋았을 텐데 온통 새까만 것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다. 빨강머리 ‘앤’을 입양하기로 한 주인 매튜가 빨강머리를 보고 낙담한 마음과, 검정개를 처음 본 지금의 내 맘이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검정 양말 한 짝이 굼실굼실 기어가는 것 같더니만 쫄랑쫄랑 뛰어다닐 정도로 자랄 동안에도 비 한 방울 구경하기 힘들었다.

가뭄의 물 걱정에 개 이름 작명이라는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우리 어렸을 때에는 동네 개 이름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지 지금은 그 이름들 자체가 없다. 날이 더워 개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을 보고는 딸아이가 영국 왕실 근위병이 모자를 벗어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온통 검은 털로 덮여 있어서 엎드려 있으면 눈코 위치도 못 찾겠는 것이 그야말로 털모자 벗어 던져 놓은 것 같았다. 그 때부터 개 이름이 ‘영국왕실 근위병 모자’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름이 길다 보니 불편함을 느껴 목사님이 농장 경비견으로 키우다가 토사구팽 하라고 한 말이 생각나서 ‘경비’라고 불렀다.

가뭄에 물이 부족해 작물은 잘 자라 주지 않았어도 새끼 개는 잘 자라서 사람을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니느라 아내의 구박도 적잖이 받았다. 사람한테만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차에도 달려들어 급기야는 비료를 사러 가는 차에 치어 깨갱 소리를 내며 차 밑에서 기어 나왔다. 개라면 질색을 하던 아내가 뛰어오고 나는 사람이 차에 치인 것 이상으로 당황했다. 저것도 생명인데!

당황하여 빨리 병원에 데리고 가자며 차에 올라타는 아내를 뒤로 하고 죽는 소리를 지르는 강아지를 태우고 가축병원을 찾았는데, 마침 애견센터가 눈에 띄어 개를 안고 뛰어드니 이곳은 애견센터이지 동물병원이 아니라했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가축병원은 사라진 말이고 지금은 동물병원으로 불린다고 했다.

이마트 이층에 있는 동물병원을 찾아든 것은 동물병원을 찾아 이십여 분을 더 돌아다닌 후였고, 강아지는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섰다. 접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머리를 염색한 아가씨, 발톱에 물들인 아가씨, 귀고리를 한 청년, 그 주인들에 걸맞게 개들도 털에 분홍염색을 했거나 머리에 리본을 매달기도 했다. 개와 주인이 패션쇼장을 방불케 했다. 이렇듯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런 틈에 햇볕에 검게 탄 나와 우리 검둥개가 이방인처럼 끼어 있었다.

벽면에 걸린 세계 지도 위에 각 국가별로 명견들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데, 중국은 치우, 우리나라는 진돗개, 일본은 도사 아끼다가 있고, 서양 쪽으로는 달마시안, 도베르만 등의 명견들이 있는 그림을 보는데, 접수하는 아가씨가 호명하였다. 접수증에 기재하느라 개의 품종을 물어보는데 방금 전에 보았던 세계 명견의 피가 우리 개에게도 섞이지 않았을까를 순간적으로 생각해 보았지만, 명견의 상징인 꼿꼿한 귀부터 꺾여서 역삼각형 귀를 한 우리 개는 아예 명견하고는 거리가 있는 순수한 우리 토종인, 그 이름부터 토종스러운 똥개일 뿐이었다.

이름을 적는단다. 사람 이름이 아닌 개 이름을 적는데 생각 없이 경비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별난 개 이름으로 인해 동물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다 우리 일행(?)을 쳐다보았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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