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복날은 간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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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복날은 간다②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1.10.1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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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개가 다치게 된 경위를 들은 수의사 선생이 다리 부분을 엑스레이로 찍은 사진을 보여 주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간에 교통사고는 하루 이틀 지나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으니 모레쯤 다시 내원하라고 권했다. 인사하고 나오려는데 개가 먹은 것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놀라서 다시 한 번 배 부분을 엑스레이 찍고 사진을 보는데 아무 이상이 없더란다.

동물병원에 있던 아가씨들이 “경비야 잘 가”, “경비야 아프지 말고 근무 잘 서”라는 인사를 받으며 농장에 도착하고서야 검둥이가 토한 원인을 알았다. 검둥이가 깨갱거리며 차 밑에서 튀어나온 것은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은 단지 놀래서였고, 토한 것은 차멀미 때문이었다. 동물병원을 찾아 두리번거리느라 급정거와 급출발을 일삼으며 이십여 분간 운행했으니 개새끼인들 멀미가 안 나겠는가. 엄마로부터 강아지가 차에 깔려서 병원에 갔다는 비보(?)를 들은 딸아이는 농장까지 와서 스프를 끊여서 먹이고, 병원에 주사 맞으러 갈 때 차멀미를 우려해서 아들은 염천에 개를 껴안고 스케이트보트를 타고 주사를 맞히러 갔다.

우리 가족의 극진한 간호와 염려로 인해 검둥이의 꾀병은 완치되었고 ‘엄살’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대신 부여받았다. 개 이름을 바뀌었을지언정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라며 경비 초소를 지었지만 근무지 이탈은 다반사요, 사람만 보면 짖는 것은 아예 잊고 반가워서 달려들며 핥는데 도둑이 들어와도 반가워서 달려들 놈이라고 집사람이 말했다.

사람만 보면 좋아서 달려오는 개 줄에 걸려 모종하여 겨우 뿌리만 내렸을 오이 줄기가 끌려오며 줄줄이 뽑히기도 했고, 모종삽을 들고 쫓아가니 도망가느라 파밭으로 뛰어들어 파 한 줄을 짓이겼다. 조용하다 싶은 것이 꺼림칙하여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수박밭에 퍼질러 엎드려서 수박 줄기를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솎아낸 수박덩이를 집어 들고 개를 향해 투포환 선수 흉내를 내보건만 수박덩이는 개 근처에도 못 미쳤고 개 장난감만 하나 던져 준 꼴이 됐다.

급기야는 개를 묶어두기로 했는데 대소변은 철저히 가리는 개라 용무 때마다 풀어 줘야 하는데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비닐하우스 안 고추밭에서 여자 비명소리가 나서 뛰어가 보니 고추를 따던 젊은 여자가 얼굴이 하얘졌고, 나이 든 아줌마가 낑낑거리며 개를 안고 나왔다. 고추 넝쿨이 우거진 것을 헤치며 고추를 따는데 줄기 사이에서 시커먼 개의 머리가 쑥 나오는 것을 보고는 기절초풍을 한 것이다.

아내가 개를 잡도리를 하는데 원인은 신발을 물어뜯었기 때문이었다. 개에게 전생이 있었다면 놀부네 집에서 자랐었는지 개하는 짓이 놀부 심술보그대로 빼닮았다. 성직자인 성스러운 목사님이 전해 준 개여서인지 그렇게 말썽을 피워도 지나는 투로 하는 욕 한 두어 마디가 고작이었다. 아마 목사가 아닌 개백정이 갖고 온 개였다면 몇 번을 고쳐 죽고도 모자랐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내의 뿔 뻗친 것으로 봐서는 목사, 아니, 하늘에 계신 분이 내려준 개라도 뒈지게 맞을 것 같다.

우리말에 ‘개 패듯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아내가 지금 그 말을 실천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빗자루로는 한 대 때리면서 입으로는 열대를 때리는데, 우이독경(牛耳讀經)이 아닌 견이훈시(犬耳訓示)였다. 결과는 빗자루 한 개만 못 쓰게 되었고 개는 검은 털에 윤기만 흐르고 더운 날에 혼자 원기 왕성하였다.

아침에 농장으로 출근이라도 할라치면 개가 꼬리만 흔드는 것이 아니라 굴러오다시피 하며 달려들면서 정신을 다 빼놓는데, 하루는 아내가 동행하지 않았다. 개가 자동차의 좌우 쪽 문을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데 아내가 내리지 않자 문 옆에 앉아서 아내가 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먹을 것을 주며 불러도 꼼짝 않고 고개만 돌려 쳐다보는 눈빛이 참으로 애절해 보였다. 어제 아내한테 그렇게 두드려 맞았는데, 짐승이지만 사람 못된 것보다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잡아 몸보신하라고? 내가 못 먹고 비쩍 마른 편이 더 낫다.

삼복을 넘기면서 검정 개새끼는 목사님이 말한 개고기 스무 근 수준에 육박할 정도로 자랐지만 삼복에 개새끼한테 시달린 나로서는 오히려 몸무게가 줄어들었다. 밭과 논바닥이 마르며 봄날은 갔고 개에 시달려 내가 마르며 복날은 갔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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