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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을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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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을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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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1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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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가을을 팝니다. 백로(白露)를 맞이하여 가을 상품을 출시하여 새로이 선보이니 많은 구매 바랍니다. 백로 무렵에는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해일로 곡식의 피해를 겪기도 합니다. 올해는 태풍도 없었습니다. 봄부터 나무 가지의 움을 터 여름내 푸르게 제작하여서 붉고 푸르게 염색해 가을 상품으로 내 놓았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불경기라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가을 상품 하나쯤은 들여놓지 않으시렵니까. 지난여름 가뭄에도 잘 견디어서 울긋불긋 한 것이 색상도 참 좋습니다. 성미 급한 나무는 한로(寒露)를 맞이하여 낙엽이라는 전단지를 한두 장씩 돌리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한로가 지나면 제비는 강남으로 가고, 기러기는 북에서 옵니다. 제비가 오면 기러기가 가고, 기러기가 오면 제비는 갑니다.

꼭 가을 상품을 사지 않으셔도 좋으니 아이쇼핑이라도 즐기세요. 청명한 푸른 하늘도 있고요. 여름하고는 다른 어딘지 모르게 외롭게 느껴지도록 갈대꽃 나부끼는 낙조도 준비했는데, 붉은 낙조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철새 떼 곁들여 감상하신다면 그 풍경 두고두고 기억되실 겁니다. 달 밝은 밤에 기러기의 안무도 즐길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했습니다.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까요 바람부터 다르게 느껴질 겁니다.

코스모스 길도 준비했고요. 국화축제도 마련했습니다. 쑥부쟁이 구절초등의 야생화도 많이 장만했습니다. 이브몽땅의 <고엽>과 리챠드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도 마련했어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판매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은 약간 값이 비쌉니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어떠신지요? 윤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도 추천해 드립니다. 구매하셔서 옷섶의 브로우치가 아닌 마음의 브로우치로 달아보세요. 구매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안도현의 <가을 엽서>한 장씩 보내 드립니다. 가을 엽서를 보내려면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있어야겠네요. 풍경이면 풍경, 음악, 문학, 분위기, 심지어 마음까지도 쎈치하게 업그레이드 해 줄 수 있는 가을 상품으로 없는 것이 없습니다.

상강(霜降)을 맞이하여 전국 산야에서 가을맞이 블랙 프라이데이를 개최하오니 행사기간동안 최대한으로 가을정취를 만끽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기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대신에 밤의 기온이 매우 낮아지는 때입니다.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 얼음이 얼기도 합니다. 이때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의 계절입니다. 행사개최지를 일부 설명하자면 설악산에서는 오색단풍, 용문산에서는 노란 은행잎, 민둥산 억새, 내장산 단풍, 순천만 갈대 등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가을 상품들을 진열해 놨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눈이 아닌 청명한 맑은 날 나무에서 날리는 낙엽을 맞는 맛이 어떠신지요. 단풍잎 책갈피에 끼워 소녀적 향수도 한번 느껴 보세요.

입동(立冬)되면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 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산야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갑니다.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합니다. 지난번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바람 많이 부는 날을 택하여 낙엽을 날리는 재고정리 겸 감사세일을 개최하오니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가을 정취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소설(小雪)이 되면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정도로 날씨가 추워집니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립니다. 또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합니다. 주위에 가을 정서가 아직 남았는데 소설(小雪)이 오기 전까지 자리를 내 달라고 성미 급한 겨울 녀석이 성화입니다. 그때까지 자리를 비워두지 않으면 대설(大雪)로 덮어버린다고 찬 기운으로 으름짱을 놓아, 비가 오는 날을 택해 눈물의 바겐세일로 점포정리를 해야겠습니다. 그때까지 안 팔리는 나뭇잎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입새로 남기고> 안 떨어지는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둘 터이니 추운 날 재고떨이로라도 팔라고 겨울에게 부탁하렵니다.

머그잔에서 풍기는 진한 커피향내를 맡으며 창밖의 비에 젖는 나뭇잎에게서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세요. 젖은 공기처럼 낮게 깔리는 첼로 음악을 곁들인다면, 그만한 가을 상품 찾기 힘들 거예요.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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