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팝니다. 백로(白露)를 맞이하여 가을 상품을 출시하여 새로이 선보이니 많은 구매 바랍니다. 백로 무렵에는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해일로 곡식의 피해를 겪기도 합니다. 올해는 태풍도 없었습니다. 봄부터 나무 가지의 움을 터 여름내 푸르게 제작하여서 붉고 푸르게 염색해 가을 상품으로 내 놓았습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불경기라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가을 상품 하나쯤은 들여놓지 않으시렵니까. 지난여름 가뭄에도 잘 견디어서 울긋불긋 한 것이 색상도 참 좋습니다. 성미 급한 나무는 한로(寒露)를 맞이하여 낙엽이라는 전단지를 한두 장씩 돌리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한로가 지나면 제비는 강남으로 가고, 기러기는 북에서 옵니다. 제비가 오면 기러기가 가고, 기러기가 오면 제비는 갑니다.
꼭 가을 상품을 사지 않으셔도 좋으니 아이쇼핑이라도 즐기세요. 청명한 푸른 하늘도 있고요. 여름하고는 다른 어딘지 모르게 외롭게 느껴지도록 갈대꽃 나부끼는 낙조도 준비했는데, 붉은 낙조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철새 떼 곁들여 감상하신다면 그 풍경 두고두고 기억되실 겁니다. 달 밝은 밤에 기러기의 안무도 즐길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했습니다.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까요 바람부터 다르게 느껴질 겁니다.
코스모스 길도 준비했고요. 국화축제도 마련했습니다. 쑥부쟁이 구절초등의 야생화도 많이 장만했습니다. 이브몽땅의 <고엽>과 리챠드 클레이더만의 <가을의 속삭임>도 마련했어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도 판매합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은 약간 값이 비쌉니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어떠신지요? 윤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도 추천해 드립니다. 구매하셔서 옷섶의 브로우치가 아닌 마음의 브로우치로 달아보세요. 구매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안도현의 <가을 엽서>한 장씩 보내 드립니다. 가을 엽서를 보내려면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있어야겠네요. 풍경이면 풍경, 음악, 문학, 분위기, 심지어 마음까지도 쎈치하게 업그레이드 해 줄 수 있는 가을 상품으로 없는 것이 없습니다.
상강(霜降)을 맞이하여 전국 산야에서 가을맞이 블랙 프라이데이를 개최하오니 행사기간동안 최대한으로 가을정취를 만끽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기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 대신에 밤의 기온이 매우 낮아지는 때입니다. 온도가 더 낮아지면 첫 얼음이 얼기도 합니다. 이때는 단풍이 절정에 이르며 국화도 활짝 피는 늦가을의 계절입니다. 행사개최지를 일부 설명하자면 설악산에서는 오색단풍, 용문산에서는 노란 은행잎, 민둥산 억새, 내장산 단풍, 순천만 갈대 등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가을 상품들을 진열해 놨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나 눈이 아닌 청명한 맑은 날 나무에서 날리는 낙엽을 맞는 맛이 어떠신지요. 단풍잎 책갈피에 끼워 소녀적 향수도 한번 느껴 보세요.
입동(立冬)되면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 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산야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갑니다.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합니다. 지난번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에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바람 많이 부는 날을 택하여 낙엽을 날리는 재고정리 겸 감사세일을 개최하오니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가을 정취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소설(小雪)이 되면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릴 정도로 날씨가 추워집니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립니다. 또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합니다. 주위에 가을 정서가 아직 남았는데 소설(小雪)이 오기 전까지 자리를 내 달라고 성미 급한 겨울 녀석이 성화입니다. 그때까지 자리를 비워두지 않으면 대설(大雪)로 덮어버린다고 찬 기운으로 으름짱을 놓아, 비가 오는 날을 택해 눈물의 바겐세일로 점포정리를 해야겠습니다. 그때까지 안 팔리는 나뭇잎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입새로 남기고> 안 떨어지는 감은 까치밥으로 남겨둘 터이니 추운 날 재고떨이로라도 팔라고 겨울에게 부탁하렵니다.
머그잔에서 풍기는 진한 커피향내를 맡으며 창밖의 비에 젖는 나뭇잎에게서 마지막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세요. 젖은 공기처럼 낮게 깔리는 첼로 음악을 곁들인다면, 그만한 가을 상품 찾기 힘들 거예요.
[전국매일신문 기고] 유재철 김포시 통진읍 도사리 꽃씨맘씨농장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