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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8] 매트릭스와 알파고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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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28] 매트릭스와 알파고의 승리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6.03.16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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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사고할 수 있는 기계의 출현은 인류의 문명이 문자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나뉘는 것보다 더 큰 획기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아직은 섣부른 판단일지라도...”

-서기 2100년 무렵,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로봇은 인간처럼 자율적 존재로 발전하고 자아의식과 감정까지 갖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로봇을 200여 년 전 아프리카 흑인노예처럼 가혹하게 부려 먹는다.

자아의식을 가진 로봇들이 이에 저항하면서 로봇이 주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인간은 로봇에 대한 파괴에 나선다. 결국 인간과 로봇간에 전쟁이 발생하고 인간은 로봇들의 에너지원인 태양을 짙은 연막으로 차단하지만 전쟁에서 패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로봇들은 인간의 생체 에너지로 대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인공배양해서 인큐베이터에 가둬 키운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인공 자궁 안에 갇혀 기계들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된다. 로봇들은 메트릭스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간들을 프로그램화 한다. 2199년 무렵, 세상은 시스템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

로봇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매트릭스’의 간추린 줄거리이다. 사람이 로봇을 만들고 프로그래밍하지만 진화를 거듭한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면서 결국에는 인간이 로봇에 의해 프로그래밍된다는 내용이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던 인간과 기계(인공지능.AI)간 세기의 대결이 AI의 승리로 끝나자 영화속 상상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포시즌 호텔에서 열린 1국을 시작으로 15일까지 모두 5차례 열린 대국에서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세계 최고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4대1로 이겼다. 완패는 겨우 면했지만 좀 더 현실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창조주인 인간이 자신의 피조물인 기계에 졌다.

경기에 앞서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매치’를 개최한 구글 지주회사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은 “이번 대국은 결과와 상관없이 승자는 인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세돌이 이기면 상상력을 갖춘 인간의 승리로 의미가 있고, 알파고가 이기면 인간이 창조한 인공지능의 쾌거이기에 어차피 인류가 승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막상 5전4패라는 믿기지 않은 결과를 보는 심사는 편치 못하다. 왠지 꺼림칙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려가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화 ‘매트릭스’가 상상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개운치 않다.

통상 바둑에는 ‘우주의 진리’가 담겨있다고 한다. 우주의 원소만큼 경우의 수가 무한한데다 계산 능력은 물론 직관과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인공지능 알파고는 한판의 대국을 수천, 수만의 경우의 수로 일관하지만 인간은 단순 계산 능력 외의 대세관이라는 직감까지 합쳐 흔들기, 역공, 사생결단의 승부수를 던지는 것이 바둑이다. 그 만큼 바둑은 상상력과 창의성이 가미된 인간 고유 영역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때문에 학습능력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컴퓨터가 이세돌 9단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으나 결과는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인간이 만든 사물에 지능을 부여하는 기술이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인공지능과 인간간의 바둑 대결이 보여 준 것이다.

알파고는 수많은 학습을 통해 경험치를 배가시키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알파고는 이번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추론을 통한 선택으로 사고의 영역에 일부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고할 수 있는 기계의 출현은 인류의 문명이 문자 이전과 이후의 시대로 나뉘는 것보다 더 큰 획기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아직은 섣부른 판단일지라도 말이다.
전문가들은 ‘매트릭스’ 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결정하고 행동하는 로봇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기우라고 한다.

지정된 영역에서 연산과 확률에 대한 추론은 할 수 있지만 사람처럼 감정이나 생각의 기능을 활용하는 영역에서는 알파고 같은 AI가 끼어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견해처럼 AI가 몇 세기 만에 인간에 대항하는 로봇으로 발전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제어할 수 없고, 또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기술발달의 속성이기도 하다.

미래의 세대에 AI는 분명히 문명의 이기가 되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겠지만 필자는 그런 시대의 뒷면이 갖는 어둠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어찌됐건 사고하는 기계에 인간이 패했다는 사실은 꾸고 싶지 않는 악몽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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