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
- 홍석영 (서울) 作
벌거벗은 몸으로
겨울의 차디찬 바람 맞으며
묵언으로 서 있다
절망의 골짜기
외로운 수행이다
때로는 먼 우주를 꿈꾸고 있을까
겨울 끝에 매달려 아우성치는
작은 새들의 울부짖음의 의미를
헤아려 보고 있을까
차츰 기억이 사라지고
육신이 마비될 때
새로운 이름 하나 얻는 것
장승
[시인 이오장 시평]
지켜준다는 것은 희생이다.
우리의 삶에는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단체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결집을 위하여 선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선도는 희생이 따른다.
결국 돕는다는 건 나를 던진다는 말이다.
역사 이래로 이러한 희생은 국가와 사회에 교훈을 남겨 나보다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이 훨씬 값어치가 있다는 정신적 가르침을 주고 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두려움을 가졌다.
자연의 냉혹함은 삶을 허물어트리기도 하였고 많은 재앙으로 극복하기 힘들게 하였다.
이럴 때마다 무엇인가에 의지하려는 의식적인 행사를 치러 잠시의 위안으로 삼았다.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통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을 새긴 것을 가리킨다.
수문신은 사찰이나 지역 간의 경계표 이정표의 구실을 하며 전국적으로 분포된 수호신이다.
동제의 주신 또는 하위 신으로서 신앙의 대상이며 돌무더기 신목 서낭당 선돌 등과 함께 복합적인 문화를 이룬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글씨를 새겨 남녀로 쌍을 이뤄 마주 세웠는데 오래전부터 남녀의 평등을 강조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홍석영 시인은 수호신의 대명사인 장승으로 환생하여 지역과 사람의 안녕을 빌고 싶어 하는 유언적인 작품으로 나 보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말한다.
절망의 골짜기 외로운 수행으로 얻은 삶의 교훈을 차츰 기억이 사라지고 육신이 마비될 때 새로운 이름 하나 더 얻어 마을 입구에 해학적인 모습으로 서서 모든 것을 지켜주고 싶어 한다.
정신적인 믿음을 얻었으나 실천하지 못하였으니 죽어서라도 수호신이 되겠다는 시인의 아름다운 다짐이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