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람을 기억해
- 송미정作
미풍도 훈풍도 아닌
구절초꽃 빛 같은
그 바람을 기억해
그 후로
얼마나 흘러왔을까
강물이 어제의 강물이 아니듯
그날의 내가 아닌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발자국에 발자국을 얹어보는 일
새살 돋은 흉터를
가만히 어루만져보는 일
흔들리면서
구절초는 다시 피고
어느 곁에선가 어루만져오는
슬픔 같은 그 바람을 기억해
[시인 이오장 시평]
3연을 주목해서 읽어보자.
시를 읽다 보면 어느 구절에선 멈췄다가 다시 읽는 구절이 있다.
바로 이런 구절이다.
시나 소설 수필 등에서 한 토막의 글이 전부를 이해하는데 가장 핵심을 주는 것은 당연한데 어떤 글을 읽어도 그런 것이 눈에 띄지 않으면 대개 덮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문장이 간결하고 짧은데도 깊은 울림으로 다시 읽는 구절은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구절초는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채취하는 것이 가장 좋은 약효를 가진다는 필수 약초다.
아홉 마디가 되면 어머니에게 가장 필요한 영양이 들어 아홉 번 구부러진 어머니의 허리를 고친다고 해서 오래전부터 약초의 으뜸이라 칭송받았다.
어머니는 아홉 번 허리가 꺾어진다.
아이를 낳을 때, 아이를 키울 때, 절구질에 또 한 번, 길쌈에 한 번 더, 호미질, 다듬이질, 아궁이에서, 논·밭두렁 호미질, 베틀에서 한 번 더, 어머니의 허리는 아홉 번 꺾였다가 그대로 굳어버린다.
그것을 기억하는 자식은 없고 안타까워 보듬어 주는 남편도 없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송미정 시인은 그런 기억을 끄집어냈다.
과거의 사물이나 지식을 머릿속에 새겨 보존하는 것이 기억인데 모두가 바람에 흘려버린다.
시인은 지워진 기억을 상기시켜 어머니의 꽃 구절초를 그렸다.
미풍도 훈풍도 아닌 그 구절초 꽃빛을 잊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영원히 사는 존재다.
발자국에 발자국을 얹어본다는 건 후회의 연속을 상기하는 게 아니다.
잃어버린 구절초 어머니를 그리는 일이다.
어머니를 한 번도 부르지 않고 어머니를 부르는 시인의 가슴은 뜨겁게 젖었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