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 구미정作
떨어지길 멈춘 비가 소리가 될 때
비는 흐름을 찾는다
중력의 속도에서 경사의 속도로 변속한 빗물은
바람의 속도를 품고 땅의 속도를 익힌다
침묵
생명으로 솟을 때까지
[시인 이오장 시평]
많은 시인이 존재하고 그만큼의 시가 창작된다.
그런 속에서 이만한 시를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시를 쓴다는 건 체험으로 얻은 자신의 이상이 사물과 만나 상충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 같아도 누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독자와 소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미정 시인은 떨어지다 그친 비 앞에서 생명의 윤회를 보았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이름이 존재한다.
자신이 만들지 않았어도 누군가의 작명으로 이름이 탄생한다.
비는 구름의 다른 이름이다.
모양이 다르고 역할이 다르지만 본래 하나의 몸체다.
그 이름을 만든 사람의 상상에 의해서 작명되어 모두 다 그렇게 부른다.
비는 떨어지는 순간 비가 아닌 물이다.
물은 냇물, 강물, 호숫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갔다가 하늘에 올라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
시인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하여 비와 사람의 인과관계를 펼친다.
비는 소리 내며 떨어지다 그친 뒤 직선의 중력에서 경사의 속도를 알게 되고 땅의 속도에 맞춰 호수에 고였다가 바다에 이르러 인내의 기다림을 발휘하여 다시 생명의 씨앗으로 하늘에 오른다.
사람도 이와 같다. 태어나 이름을 얻었다가 길을 따라 흐름을 갖추고 죽음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철학적인 사유에 고민 하지만 그 영혼은 사라지지 않고 윤회를 거듭하여 만물 속에서 지구를 지킨다.
불교사상이 아니라도 모두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오늘의 삶을 꾸린다.
구미정 시인은 일상에서 갑자기 만난 비의 이미지를 꺼내어 시가 어떻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