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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自繩自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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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自繩自縛)
  • 최승필 지방부국장, 화성·오산담당
  • 승인 2016.04.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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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역사가인 반고(班固)가 저술한 기전체의 역사서 한서(漢書)의 유협전(遊俠傳)에 나오는 ‘자박(自縛)’이라는 용어에서 ‘자기의 줄로 자기 몸을 옭아 묶는다’는 뜻의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유래는 송나라의 어느 시장에서 경원부 은현사람인 원섭의 노비가 백정과 말다툼을 한 뒤 그를 죽이자 무릉의 태수 윤공이 원섭을 죽이려고 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윤공에게 “원섭의 종이 법을 어긴 것은 부덕한 탓이다. 그에게 옷을 벗고 스스로 옭아 묶어 화살로 귀를 뚫고 법정에 나가서 사죄하면 당신의 위엄도 유지될 것이다”라고 말 한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또 이 말은 당초에 ‘궁지에 몰렸을 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묶고 관용을 청하는 것’을 의미했으나 현재는 ‘자기가 행한 말이나 행동으로 난처한 처지에 놓인 것’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비슷한 예로, 옛 로마시대에 시칠리아 왕 팔라리스가 당시 명망 높은 조각가 펠릴루스에게 독특한 처형기구를 만들라고 명령함에 따라 조각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펠릴루스의 소’라는 놋쇠로 만든 소 모양의 처형기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왕 팔라리스 처형기구의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조각가를 놋쇠 소에 들어가게 해 결국 조각가는 자신이 만든 처형기구의 첫 희생자가 됐으며, 몇 년 후 왕도 내란으로 인해 펠릴루스의 소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됐다.
지난 4·13 총선에서 참패하며 소수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이 다수당 시절 문제를 삼았던 국회선진화법을 두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야당보다 적은 의석수로 정국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면 국회선진화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총선에서 국회선진화법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18대 국회 마지막 날인 2012년 5월2일 본회의를 열어 국회선진화법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국회의장 직권상정 제한, 안건조정위원회 설치, 안건 자동상정 등을 골자로 하고 있는 법안으로, 같은 해5월30일 19대 국회 임기 개시일에 맞춰 시행됐다.
당시 19대 총선을 전후 해 소수당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이처럼 국회선진화법 도입을 주도했지만 다수당이 되면서 국회선진화법이 소수당인 야당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내내 발목을 잡았다.
새누리당은 결국 지난해 1월 국회선진화법이 ‘의회주의 원리’와 ‘다수결의 원리’에 반한다는 이유 등으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등 개정의 속도를 냈다.
하지만 이번 20대 총선에서 다수당의 자리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어 주면서 다수당 때 ‘소수당 결제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던 국회선진화법을 방패로 사용해야 하는 그야말로 모순적인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당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된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국회선진화법과 관련, 그 동안 우리 당이 취했던 기존 입장과 변경된 사항은 없다”며 일단 변함없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나 일부 정치계와 법조계에서는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취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원내 2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으로선 다수 야당의 의회 독주를 막기 위해 오히려 국회선진화법에 기대는 것이 더 유리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자승자박의 덫으로 작용할 지 새로운 변화의 기회가 될 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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