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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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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름다운 퇴장에 박수를 보낸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12.0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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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초가 되면 새로운 경영인의 신년사나 물러나는 경영인의 퇴임사를 접한다. 그 중 진성성이 담기고 삶의 교훈이 담긴 메시지는 사람들을 감동시켜 오랫동안 남는다.
 
지난 2000년 더글러스 대프트 코카콜라 전 회장의 신년 메시지가 그랬다. 그는 인생을 5개 공을 던지고 받아야 하는 저글링(juggling)으로 비유했다. 더글러스 대프트 전 회장은 각각의 공을 ‘일, 가족, 건강, 친구, 영혼’이라고 명명하고 그 중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라서 떨어뜨리더라도 바로 튀어오르지만 나머지 4개는 유리로 돼 있어서 하나라도 떨어뜨린다면 원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일 이외에 나머지 네 개가 더 지키기 어렵고 위태로운 것임을 강조한 말이다.
 
최근 국내 한 대기업그룹 회장의 퇴임사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지난달 28일 갑작스레 발표한 퇴임사는 흔치 않은 모습이라 오래 남을 듯 하다.
 
스스로를 금수저라 칭한 이 회장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를 느꼈다.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는다”고 했다.
 
재계 순위 30위 안팎의 '코오롱' 그룹을 이끌어온 이웅열 회장. 최근 그의 깜짝 선언이 주는 울림이 작지 않다. 마흔 살이던 1996년 회장직에 오른 그는 23년이 지난 올해를 끝으로 회장직을 비롯, 계열사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임·직원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코오롱' 경영에 손을 떼고, 진갑을 넘긴 나이에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는 것.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온 그이고, 소시민들은 그런 그의 삶이 관심 대상에서 벗어난 '딴 세상 사람'으로 인식을 해왔기에 부족할 것 없었던 그의 경영 일선 퇴진 소식이 신선한 자극을 준다.

그는 "제 나이 마흔에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딱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고, 나이 60이 되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자고 작정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3년이 더 흘렀다"며 "그 동안 금수저를 꽉 물고 있느라 입을 앙 다물었다. 이빨이 다 금이 간 듯하다.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내려놓는다"고 회장 사퇴의 변을 내놨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세상이 변하고 있고, 변하지 못하면 도태 된다'는 어찌 보면 평범한 경제 원칙에 자신이 변화의 걸림돌이라는 생각에서다.

코오롱호의 운전대를 잡고 앞장서 달려왔지만 앞을 보는 시야는 흐려져 있고, 가속 페달을 밟는 발엔 힘이 점점 빠지는 등 한계에 다다른 그가 스스로 비켜야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자신이 떠나 변화와 혁신의 빅뱅이 시작된다면 자신의 임무는 완수, 떠날 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그다. 시불가실(時不可失) 최근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전격사퇴 선언을 하면서 인용한 사자성어다.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의미로 전국시대 초나라 황헐(黃歇)이 진나라 소왕에게 유세하면서 한 말이다. (戰國策 秦策篇)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는 그는 회장 직함에서 청년 창업가로 변신해 원 없이 해보고, 마음대로 안 되면 망할 권리까지 얘기하고 있다.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시대정신은 요즘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우리 시대 청년들, 나아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큰 메시지처럼 들린다.

이 '아름다운 퇴장'이 경영권을 끝까지 놓지 않으면서도 승계를 위해 온갖 꼼수와 탈법을 일삼는 다른 재벌그룹들에게 좋은 선례가 됐으면 한다. 예순 두 살 청년 이웅열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이웅열 회장의 자진 퇴임은 오너 경영인이 맞느냐, 전문 경영인이 옳으냐, 그리고 소위 ‘금수저’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사회고위층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는 무엇이냐, 나아가 한국 지형에 맞는 경영인은 어떤 모습이냐는 등 재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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