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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선족’ 아니라 ‘재중교포’로 불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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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조선족’ 아니라 ‘재중교포’로 불러야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03.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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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이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간 시점은 17세기 무렵이지만, 1910년부터 1931년 동안 가장 많은 조선인의 이주가 이뤄졌다. 1932년에 일제가 오족협화의 기치를 내걸고 만주 괴뢰국을 세우자 일제의 이민정책으로 만주 땅으로 이주하는 조선인들이 급증했다. 이 시기에는 간도뿐만 아니라 만주 전역에 여러 종류의 직업을 갖는 조선인들이 옮겨 갔으며 만주국 내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인구가 300만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45년 만주국의 붕괴와 조선의 독립으로 다수의 조선인들이 귀국하였지만 약 100만 명의 조선인이 여전히 중국에 남았고 이들이 후에 조선족의 기원이 된다. 이 시기는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부터 1949년 6월의 중국공산당(中共) 중앙 차원에서 소수민족 정책의 시작이라고 할 정협(정치협상회)의 준비회의에 조선족 대표로 ‘주덕해’가 참가하는 시점까지이다.중화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1949년 10월 성립하고 한반도에서 남북한 정부가 성립하는 것이 1948년 8월 이후임으로 이 시기의 만주와 조선인의 위치는 복합적이고 불안정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중국의 조선족 정책이 거의 완벽하게 성립됐다고 볼 수 있다. 만주성위의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1945년 이전까지 만주에 실질적인 기반이 없던 중공 중앙과 다수의 조선인 공산주의자에 비해 열세였다.이들은 조선인과 조선 공산주의자를 대등한 입장에서 혹은 조선인을 외국인이나 투쟁의 동지로 여기며 선언적인 수준에서만 그들의 조선인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중공의 조선인 정책은 조선인을 중화인민공화국의 56개 민족으로 이뤄진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간주, 적극적인 민족정책으로 조선족으로 개편했다.

이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는 1949년에 당시 중국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들을 중국 국민으로 편입시키면서 중국의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이라 불리는 ‘조선족 사회’가 형성되었다. 이로써 중국의 조선족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북한 포함)의 한인계와는 다른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중국동포가 조국인 한반도로 돌아오는 과정의 시점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이어 19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에 친척방문으로 조선족 1세대나 2세대들이 중심이 되어 입국이 시작됐다. 이후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하는 1992년을 기점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증가됐다.

더불어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을 하거나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 한국으로 이민을 오는 조선족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조선족의 인구수는 약 70만 명에 이른다.중국동포에게 있어서 ‘조선족’이라는 호칭은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명칭이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조선족’이란 이유로 ‘나/너’, ‘우리/그들’ 등으로 구분했다. 구분의 의미에는 ‘차별과 멸시’ 또는 ‘동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현실적으로 ‘조선족을 조선족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오히려 한국에 거주하는 많은 중국동포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어가 가진 뜻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통상적으로 한국에서 갖고 있는 단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호칭은 중국교포, 중국동포, 재중동포, 한국계 중국인 등으로 다양하지만 이를 통일시키는 작업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실 같은 혈통의 동포를 “~~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고 상호간에 불편하기조차 하다. 호칭(呼稱)이라는 것은 그 대상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중국이 자신을 구성하는 여러 종족을 일컬어 “~~족”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타 민족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한 행정편의적인 용어다.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을 부르는데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실로 낯설고 황당한 말이다.

지난해 상영했던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가 70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큰 인기를 끌었다. 조선족이 모여 사는 서울 가리봉동의 조선족 조직폭력배 소탕을 다룬 영화다. 볼 만했다. 가리봉동뿐만 아니라 전국의 식당, 건설현장, 영세 중소기업 등 곳곳에서 쉽게 조선족을 만날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3D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묵묵히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중국에 있는 가족, 특히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다.

조선족은 중국에 사는 우리 민족이다. 같은 민족이지만 우리는 조선족을 멸시하는 경향이 짙다. 재미교포와 재일교포, 그리고 그 후손들까지 조선족처럼 대하지 않는다. 물론 1992년 한-중 수교 후 조선족이 돈을 벌기 위해 대거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고, 한국에 사는 조선족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교포 사회에서 지식인을 중심으로 스스로 조선족이라고 하지 말고 ‘재중교포’로 부르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워낙 지역이 넓어서인지 쉽게 정착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먼저 ‘재중교포’라 부르고 이들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특히 일제강점기 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지금의 조선족 주 거주지인 만주에서 활동했다. 후손들은 그동안 중국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와 사고, 문화 등이 다르지만 그들 중에는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이 있고 일제로부터 고통당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교포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같은 민족의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재미교포’, ‘재일교포’, ‘프랑스교포’ 하면서 중국에 사는 동포를 ‘재중교포’라 하지 않고 ‘조선족’이라고 부를까. 미국·일본·유럽 등 동포에게는 노예 근성을, 중국동포에게는 졸부 근성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조선족’은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중국 정부가 쓰는 말이다. 우리가 써야 할 말은 조선족이 아니라 ‘재중교포’ 또는 ‘재중동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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