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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올 연말엔 가슴 가득 사랑을 품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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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올 연말엔 가슴 가득 사랑을 품어보자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8.12.13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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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의 실수나 망신, 몰락을 보며 이렇게 말하곤 한다. “고것 참 쌤통이네.” 그 누군가가 잘나가는 연예인이거나 유명한 정치인, 성공한 기업인일 경우 남 보란 듯, 자신과 라이벌 관계에 있던 사람이라면 남모르게. 인정하기 싫겠지만 누군가의 불행 앞에 한 번쯤 이런 감정을 느껴봤을 것이다. 죄책감이 들면서도 통쾌한, 이 아이러니한 감정 말이다.
 
반갑고 즐거워야 하는데 마음이 불편한 모임이 있다. 소위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사람들의 실패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술자리가 그렇다. 도덕적인 줄 알았던 사회지도층 인사의 추문, 잘난 척하던 유명인의 낙마, 성공한 기업인의 추락, 높은 자리에 올라간 정치인의 몰락 등 가십을 주고받는 술자리의 안주는 밤새 풍성하다. ‘그 사람, 그럴 줄 알았어!’
 
미국에서 주목받던 젊은 과학저술가 한 명이 수년 전 큰 스캔들을 일으킨 바 있다.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조나 레너가 그 주인공이다. 컬럼비아대에서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에서 신학과 문학을 공부한 그는 뇌과학적인 관점에서 문학과 예술을 바라본 매력적인 책 세 권으로 단번에 화제의 작가가 됐다. 독자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젊은 작가의 유려한 문장을 좋아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책에 등장하는 인용문들이 사실은 그가 스스로 지어낸 것들이었으며, 자신이 예전에 쓴 칼럼들을 새 칼럼에 자주 재활용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급기야 출판사는 그의 책 두 권을 회수하기에 이르렀고, 그는 사과문을 발표하는 수모를 겪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그의 부정행위가 폭로되자 미국사회 내에서 그를 비판하고 조롱하는 글들이 쏟아졌는데, 과학저술가들과 학자들의 비난이 과도하게 빗발쳤다는 것이다. 덧붙여, ‘옳다구나, 이때다’ 하며 그의 해묵은 잘못들도 도마에 올랐다.
 
이렇게 ‘남의 불행에 대해 갖는 쾌감’을 독일어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 못지않게, 잘나가던 사람이 몰락하고 건방진 사람이 실패하면 고소한 마음, ‘쌤통!’이라고 느끼는 심리를 말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다.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인 이 심리가 바로 샤덴프로이데다.
 
‘네이처’는 조나 레너의 스캔들을 인용하면서 최근에 출간된 책 한 권을 소개한다. ‘질투’ 연구의 대가인 켄터키대학교 심리학과 리처드 스미스 교수가 쓴 ‘고통의 즐거움(The Joy of Pain), 이른바 ‘쌤통의 심리학’이 바로 그것이다. 만연해 있으면서도 차마 인정하기 싫은 이 감정을 스미스 교수는 인간 감정의 어두운 본성이라고 정직하게 고백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 즉 자존감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우월한 부분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두뇌구조를 가졌다. 내가 남보다 더 나은 부분을 찾았을 때 느끼는 약간의 쾌감이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내 성취로 자존감을 얻는다면 더없이 유익하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은밀하게 찾아 나선다.
 
열등감 극복과 자존감 회복에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질투다. 성공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의식하든 그러지 않든 간에 질투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의 성공은 더 그렇다. 그 과정이 비도덕적이거나 비상식적이면 더더욱 그럴 텐데, 그렇지 않더라도 흠집을 찾고 싶어 한다.
 
잘나가는 사람에 대한 질투는 그가 실패하고 추락하는 순간 쾌감으로 돌변한다. 마치 이제야 정의가 구현된 것처럼 목청을 높이지만, 찌질한 영혼의 민낯이 폭로되는 순간이다. 그들의 낙마가 아니고선, 나의 성취만으론 삶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이들의 한풀이, “너도 별거 없었구나!”라는 쌤통의 심리기저가 샤덴프로이데의 맨살이다.
 
우리 사회도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쌤통 심리가 만연한 곳이다. 성적이나 외모, 가정형편 같은 세속적인 잣대로 인간을 평가하는 데 익숙한 문화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우리에게 삶은 ‘평생 치러야 할 경쟁 레이스’다. 내 등수를 높이려면 누군가 낙오되어야 한다는 잠재의식이 쌤통 심리를 부추긴다. 남자는 여자의 성취에 각별히 인색하며, 지적이거나 도덕적인 체하는 사람들의 잘난 척에 과민반응을 보낸다. 나이가 들수록 더 옹졸해지는 것 같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험담이 더 늘어나는 것 같다.
 
이제라도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타인의 성취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타인의 불행에 깊은 연민을 느끼는 연대의식을 가르쳐야 한다. 타인의 성공 앞에서 질투를 다스릴 줄 알고, 타인의 실패 뒤에서 겸손함을 배우는 법을 공유해야 한다. 정의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치졸한 복수심을 들여다볼 줄 알게 해야 한다. 그것이 쌤통 심리를 악담과 악플로 배설하는 술자리 문화, 인터넷 문화를 없애는 방법이다.
 
‘남의 불행’은 연말 술자리의 좋은 안줏거리다. 씹기도 쉽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어느 날 이 안주로 인해 마음이 더부룩해진다면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자. 내 언행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건 쌤통 심리가 아니었는지. 링컨이 말했다.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올 연말엔 가슴 가득 사랑을 품어보자. 남의 불행에 나의 행복을 의존하지 말고 나 스스로 행복해질 방법을 고민하면서. 내 자존감은 온전히 내 성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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