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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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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로남불’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9.04.1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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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서울대 교수 시절인 2016년 8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이철성 경찰청장을 임명하자 페이스북에 신랄한 비판글을 올렸다. 그는 “음주운전 사고를 냈으나 신분을 숨겨 징계를 피했다는 이철성을 기어코 경찰청장에 임명했다. 다른 부서도 아닌 음주운전 단속의 주무부처 총책임자가 과거 이런 범죄를 범하고 은폐까지 하였는데도 임명한 것이다.

미국 같으면 애초 청문회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경찰, 이제부터 이철성과 유사한 행위를 한 시민을 단속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검증 책임자인) 우병우 민정수석의 마음은 ‘나의 비위를 덮으려면 더 센 비리를 가진 사람이 스폿라이트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조 수석은 문재인 정부 2기 국토교통부 장관에 내정된 최정호 전 후보자를 검증했다.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한마디로 ‘다주택자는 죄인이나 다름없다’는 것. 최 전 후보자는 똘똘한 아파트로만 3채를 소유했지만 조 수석의 검증을 통과했다. ‘검증에 문제는 없었다’는 게 청와대의 공식입장. 조 수석은 어떤 사과나 해명도 내지 않았다. 그를 잘 안다는 여당 의원은 “조국 책임론은 권력기관 개혁을 막으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문재인정부가 부동산 투기 과열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던 지난해 7월 ‘대통령의 입’ 김의겸 대변인은 재개발지역 고가 상가를 매입했다. 그것도 은행에서 무려 10억2000만원을 대출받아 25억7000만원의 부동산을 사들였다.누가 봐도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로 볼 수밖에 없는 김 대변인에게 야당은 집중포화를 퍼부었고, 여권도 냉랭했다. 그는 결국 전격 사퇴했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한겨레 선임기자 시절인 2011년 3월 ‘왜 아직도 박정희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상대적 박탈감’을 치유해야 박정희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난 전셋값 대느라 헉헉거리는데 누구는 아파트값이 몇배로 뛰며 돈방석에 앉고, 난 애들 학원 하나 보내기도 벅찬데 누구는 자식들을 외국어고니 미국 대학으로 보내고, 똑같이 일하는데도 내 봉급은 누의 반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삶 등등. 가진 자와 힘 있는 자들이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초원에서 초식동물로 살아가야 하는 비애는 ‘도대체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낳게 한다”며 박정희에 대해 “부동산값이 오르면 철퇴를 가했고 전국적으로 고교 평준화를 단행했으며 봉급은 적을망정 차별받지 않았던 직장 등등. 비록 독재를 했으나 시장의 강자들을 억누르고 약자들을 다독였다는 기억이 무덤 속의 박정희를 불러일으켜 세운 것이리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무덤에 침을 뱉는 것만으로는 그의 혼령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박정희보다 더 강하고 더 서민적인 길을 보여줄 때만이 그 향수병도 치유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김 전 대변인은 25억원 투기 의혹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지만 물러나기 직전까지도 “투기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미 집이 있는데 또 사거나 아니면 시세 차익을 노리고 되파는 경우에 해당한다. 저는 그 둘 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에 김의겸은 한겨레 기자로 조선일보 이진동, JTBC 손석희와 더불어 촛불 정국에서 맹활약한 언론인 가운데 하나였다. 촛불정국을 가로지른 기자정신이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16억을 대출받아 25억짜리 재개발 지구 상가를 구입해서 상당한 차익을 실현했다.대변인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현재 은행 불법대출 의혹을 받고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지탄받던 시절이 있었다.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가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라고 시작하는 것처럼 오래전 머나먼 때에는 대한민국에서도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당연하던 시절은 머나먼 과거의 일이 되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있던 그 시절은 너무 아득해서 공상과학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1954년 12월 20일 자정 미국 시카고에서는 ‘구도자들’이라는 사이비 종교집단이 외계인의 UFO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대범람으로 인해 멸망할 지구를 떠나기 위해서다. 신도들은 클라리온 행성의 외계인들이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란 예언자 도로시 마틴의 말을 믿고, 가진 재산을 모두 처분해 바쳤다.

하지만 예언 속 구원의 시각인 자정을 지나서도 지구는 평온했다. UFO 역시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예언자는 “밤새 앉아서 기다리는 이 작은 모임이 강한 빛을 펼쳐서 신은 지구를 멸망으로부터 구하기로 했다”고 둘러댔다. 신도들은 기쁨에 젖어 자신들이 일으킨 기적(지구를 구원한 일)을 자랑했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이 같은 자기합리화를 ‘인지적 부조화’를 풀어내려는 인간심리의 결과물이라고 규정했다. 심리학자들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중잣대를 버려야 ‘인지적 부조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으로,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얼핏 사자성어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아니며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속담은 더더욱 아니다.

‘내로남불’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드루킹 재판으로 구속 수감되었을 때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등 여권의 반발이 그랬고,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던 입장을 뒤집는 등 정치권의 사법부 공격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특히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25억 건물 매입’ 논란에 대처하면서 보여주는 ‘내로남불’ 자세는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환경부 블랙리스트’의혹에 연루된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나 원내대표가 사법부 비판에 나섰다. 나 원내대표는 “영장기각 결정을 보면 어이가 없다”면서“(담당 판사가) 임종석 전 실장과 같은 대학교 출신이면서 노동운동을 했다”는 말로 영장을 기각한 담당 판사를 공격했다. 판사 출신으로 사법부 독립을 강조하던 입장을 뒤집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현 정부들어 정치권의 말바꾸는 도를 넘는 수준이다. 정치인에게 ‘말바꾸기’는 금기(禁忌)나 다름없다. 정치인들이 상황이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면 전에 했던 말에 발목이 잡힐 수 밖에 없다. 정치권의 내로남불 공방이 심해질수록 국민들의 정치 불신도 함께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늘 네 탓만 하는 여야 정치권 싸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민생과 밀접한 정부 경제금융정책에서조차 내로남불과 갑질이 묻어나서야 어찌 국민들로부터 정책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시장과 민심을 정확히 읽고 동떨어지지 않은 제대로 된 로맨스를 기대하는 것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현재 정부의 지지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정권 초기에는 90%에 가까운 지지율이 이제는 40%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다. 현 정부는 꾸준히 이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적폐 청산을 하고 있고, 이전에 잘못되었던 관행, 관습들을 바로잡고 있다. 재벌들의 부조리한 점들을 계속해서 처벌하고 있고, 사회에 만연한 갑질에 대해서도 칼질을 한다.

분명 한국은 이전에 비해 정의로운 사회로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살기는 더 힘들어진다. 이제는 대학에도 기업의 취업 의뢰가 거의 오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다. 물가는 오르지만 월급은 오르지 않는다. 세금 등 정부에 내야되는 돈은 오르는데 앞으로도 더 오를 것이라고 한다.

수입은 늘지 않는데 내야될 돈은 늘어나니 부자가 되기는 더 어렵게 된다. 정의롭지만 못사는 사회, 우리는 지금 그 길을 가고 있다. 사람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기는 하지만 못살면서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을 훨씬 더 원하고 있다.

정치는 국민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서 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옳은 일을 추구한다. 하지만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국민들이 정말로,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지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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