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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행정동우회 선배님들과 함께 한 감사한 하루(여주 신륵사, 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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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행정동우회 선배님들과 함께 한 감사한 하루(여주 신륵사, 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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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0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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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5월 17일 경기행정동우회 50명의 회원들은 수원과 서울에서 각각 버스에 나눠 타고 영동고속도로로 달려 여주로 향했다. 오늘은 여주의 문화유적지 신륵사(神勒寺)와 세종대왕릉 영릉(英陵)에서 청결 캠페인과 문화유산 탐방을 하는 날이다.

11시. 여주시 천송동 신륵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회원들은 입구에서 권두현 회장님의 인사말을 듣고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경내를 돌며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도 듣고, 쓰레기도 줍기로 했다.

신륵사는 봉미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신라 진평왕(579~631년 재위)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기 나옹선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남한 강변에 위치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때문에 고려시대 이래 시인묵객(時人墨客)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사찰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강변 사찰이다. 조선 성종 3년(1472년)에는 세종대왕릉인 영릉의 원찰(죽은 사람의 화상이나 위패를 모시고 그 원주(願主)의 명복을 빌던 법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가 원찰로서의 의미가 약해진 뒤 다시 신륵사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신륵사 경내는 불교중흥의 꽃을 피운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의 삼대화상(三大和尙) 영정을 모셔놓은 조사당(祖師堂), 흰 대리석으로 쌓은 다층석탑(多層石塔), 남한강을 통해 교통하는 사람들의 이정표 기능까지 담당한 전탑(塼塔), 고려말 공민왕의 국사인 나옹화상의 부도(浮屠)와 석등(石燈), 나옹화상의 사리를 모신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목은 이색(牧隱 李穡)이 비문을 쓴 보제존자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등 보물 8점이 있다. 이 밖에도 경기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극락보전(極樂寶殿)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600년 이상 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향나무가 풍치를 더해 준다. 잘 보존된 신륵사의 모습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면서 앞으로도 잘 보존돼 영원히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정오 12시. 신륵사 경내서 청결 캠페인을 마치고, 재미난 사찰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품고 나와 인근 ‘산너머남촌’식당으로 갔다. 더덕구이, 도라지무침, 묵무침, 돼지고기수육 등 푸짐한 한정식으로 꿀맛 같은 점심을 먹었다. 바로 식당 옆 여주박물관으로 옮겨 여주의 역사와 원향사지청동소종(元香寺址靑銅小鐘), 귀면와(鬼面瓦), 책가도(冊架圖) 등 유물, 남한강 수석전시실, 조선왕실의 열성어제어필(列聖御製御筆), 민치록서첩(閔致祿書帖), 무과홍패교지(武科紅牌敎旨), 다섯임금어필첩 등 고서를 들러 보았다.

오후 3시. 여주시 세종대왕면 왕대리에 있는 영능 주차장에 도착했다. 영릉은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가 묻힌 조선 최초의 합장릉이다. 경기도의 조선시대 왕릉은 구리시의 동구릉(東九陵), 고양시의 서오릉(西五陵)과 서삼릉(西三陵), 화성시의 융건릉(隆健陵), 남양주시의 홍유릉(洪裕陵)과 광릉(光陵), 파주시 장릉(長陵)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품격있는 왕릉을 꼽자면 세종과 그의 비인 소헌왕후가 함께 묻혀있는 영릉일 것이다.

세종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조선조 4대 임금으로 1397년(태조6년)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418년(태종15년) 맏아들 양녕대군이 폐위되면서 세자로 책봉되었다가 그해 8월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하였다. 세종은 제왕의 품위를 지녔을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고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분별역이 뛰어났다. 우리 문화의 황금기를 만든 최고의 성군(聖君)이다.

원래 세종과 세종비 소천황후가 안장된 영릉은 태종의 능이 있는 헌릉(서울시 강남구 내곡동)의 서쪽 언덕에 위치하였다. 그 후 이 자리가 풍수적으로 불길한 땅이라 하여 지금의 여주 영릉자리로 1469년 3월 6일 이장했다. 이전하기 위한 천릉(遷陵) 작업에는 부역꾼 5,000명, 석공 등 공장(工匠) 150명 이상이 투입되었다. 식량(쌀) 2,646가마, 소금 82가마가 사용되었고 35일 동안 작업을 했다. 이때 상여군(喪輿軍)이 1,500명이었는데, 3교대로 하여 서울에서 여주까지 옮겼다.

우리 일행은 영릉에서도 신륵사와 마찬가지로 매표소 입구에서부터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약 2km가 되는 산책로를 따라 청결 캠페인을 병행하기로 하면서 출발했다.

영릉으로 가는 길은 너무 아름답고 널찍하다. 좌우 공원에는 그 시대에 발명한 다양한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등을 전시해 두었다. 조금 더 가니 능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齋室)이 있었다. 재실 맞은 편에는 제위답(祭位畓)이 있다. 이미 모내기가 완료되어 있다. 재실을 지나니 대청마루 같은 넓은 공간에 책을 보거나 휴식을 할 수 있는 집도 있다. 조금 쉬다가 전방 500m 정도에 보이는 영릉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가는 길은 모두 푸른 잔디 위에 예쁜 나무가 심어져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한편에는 연못도 있다. 주변 산에는 우람한 한국의 푸른 소나무가 영릉의 수호신이 되고 있었다. 휴지 조각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국가유산청에서 조경부터 시설물관리에 이르기까지 깔끔하게 해 놓아 쾌적했다. 국민 의식 수준도 높아 그 누구 하나 휴지 한 장 버린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되뇌는 순간들이었다.

경기행정동우회의 여주 신륵사와 영릉 유적지 청결 캠페인과 문화 유산탐방은 특별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자이언트 포레스트 국립공원(Giant Forest National Park)’ 을 다녀온 기분이다. 남한강의 강바람, 영릉의 솔향기, 들판의 푸르름을 만끽한 힐링이었다. 더더욱 80세, 90세의 선배님을 한 자리에서 뵙고 옛 말씀을 듣고 한없이 웃었던 최고의 행복한 여정이었다. 행사를 주선해주신 권두현 경기행정동우회 회장님, 송유면 사무총장님, 정호필 사무국장님께 감사드린다. 공직 생활을 함께 한 선배님들과 퇴직 후에도 이렇게 만나 우리 사회를 위해 함께 봉사하며 배움의 길을 이어간다는 점이 무척이나 감사한 하루였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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