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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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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6.12.08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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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謙遜): 남을 높이고 제몸을 낮춤(modesty). 겸허(謙虛): 허심하게 자기를 낮춤(modesty). 국어사전에서 풀이하고 있으며, modesty:겸손·조심성·겸양·수줍음이라고 영한사전에서 풀이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커다란 특이점을 하나 발견 할 수 있다. 영한사전에서는 겸손과 겸허의 구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겸허라는 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겸손의 풀이에는 가식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겸허의 풀이에는 마음을 비운다는 허심(虛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또 한 번 우리말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난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기도 하고, 또 헤어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좋은 인재를 만나고 그를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 그와 함께 동행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중국의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초대 황제 양무제(梁武帝)는 세간에서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숭앙되는 사람이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건너오자 수도 금릉의 궁중으로 모셨다. “나는 즉위 이래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고 스님을 공양하기를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했습니다.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대사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무공덕(無功德)’ 공덕이 없다는 말이다. 양무제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판단해 다시 물었지만 역시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양무제는 자존심이 상했다. 달마대사 대답의 의미는 공덕을 바라고 하는 선행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며 삶에서 한없이 겸허해지라는 뜻이었다.
사람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자신을 아는 자이고, 둘은 자신을 모르는 자이다. 자신을 아는 자는 겸손한 자이고, 자신을 모르는 자는 오만한 자이다. 그래서 오만은 우리의 삶을 왜곡시키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우리가 이해할 것은 겸허와 겸손은 다르다는 것이다. 겸손은 표면적이고, 겸허는 내면적이다. 겸손은 세속적인 말이고, 겸허는 종교적인 차원의 말이다. 겸손은 누구나 가장할 수 있다. 겸허는 가장하지 못한다. 겸손은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다. 겸허는 흉내가 불가능한 경지이다. 그래서 겸손한 척한다는 말은 있어도 겸허한 척한다는 말은 없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것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겸손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진정한 겸손, 즉 겸허가 하나, 겸손한 척하는 것이 둘이다. 둘 다 겸손을 표방한다. 척하는 것은 처세의 덕목일 뿐이다. 속으로는 오만하면서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는 것이다. 겸손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것은 오만한 자와 마찬가지다. 이들은 겸손을 내세움으로써 남들의 호의를 얻고자 한다. 남들과의 경쟁을 회피하면서 기회를 엿보려는 비겁함과 나약함을 겉으로 보이는 겸손 속에 숨긴다. 진정한 겸손, 즉 겸허는 처세론적 덕목이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의 얘기다.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근원적인 문제라는 말이다. 겸허한 자의 생활방식은 겸손한 척하는 사람과 크게 다르다. 이들은 항상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며 자기반성으로 수양을 쌓으면서 신독(愼獨)하며 자기를 절제 한다.
‘주역(周易)’에서 겸손을 뜻하는 괘는 커다란 수확을 뜻하는 대유괘(大有卦) 다음에 나온다. 대유괘는 큰 것을 자진 자는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 다음이 겸괘(謙卦)이다. 주역 64괘 중 아마도 가장 좋은 괘일 것이다. 이를 지산겸(地山謙)이라 하며 땅 밑에 산이 있음을 상징한다. 땅속에 산이 들어간 모습으로, 마음속에 잘난 척하는 마음이나 남보다 뛰어난 재주 등을 다 감추어버린 형상이다. 춘추시대 제나라 관중이 쓴‘관자(管子)’에서는 ‘자신을 아는 자는 겸허하다’라고 했다. 그것은 현명이다. 세상에 현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이다.
사람은 누구나 거드름 피우고 오만한 자를 싫어한다. 항상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과 진실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때 사람들은 그를 따르고 좋아한다. 고사에 ‘삼악삼토(三握三吐)’라는 말이 있다. 주나라 성왕 때 섭정했던 주공(周公)의 이야기로, 인재를 얻기 위해 항상 자신을 낮추며 손님이 오면 기다리지 않게 하기 위해 머리를 감는 동안에도 머리털을 움켜쥔 채로 손님을 맞았고, 식사하는 동안에도 세 번이나 입안의 음식을 뱉어내고 손님을 맞아 성심성의를 다해 인재를 얻고 대접했다고 한다.
주공은 천하의 현사를 잃을까 늘 두려워했고 결코 자신을 뽐내거나 교만하지 않았다. 이처럼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고 제대로 사람 대접을 하는 사람은 주위에 쓸 만한 사람이 모여든다. 사람을 제대로 대우하려면 상대방을 항상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아랫사람에게 너무 겸손해도 상대가 불편하고, 너무 권위적이어도 거부감을 준다.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다는 전제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교만하고 인색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늘 겸허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할 때 그도 상대를 존중할 것이다. 지위가 높고 권력이 있다 해 함부로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항상 합리적인 자세로 상대를 존중하고 겸허해야 한다. 권위란 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삼악삼토’는 이처럼 권력을 남용하고 권력을 빙자해 오만불손을 자행하는 자들에게 큰 교훈이 으면 한다. 사람다운 삶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 도리만 지키면 된다.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평등의 정신만 꼭 지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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