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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칼럼-미운 이웃을 격려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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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칼럼-미운 이웃을 격려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 대기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4.02.1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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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이웃이 당장은 불쾌한 것이 사실이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보면 안타까운 이웃이기도 하다. ‘혐중증한’으로는 일본이 한국을 이길 수 없다.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다.” 한국과 중국을 비하하는 ‘혐중증한(중국 혐오, 한국 증오)’ 내용의 서적과 잡지가 일본 출판계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도쿄의 유명한 서점들이 “그 나라에 배울 것은 하나도 없다”거나 “왜 이 민족은 이렇게 자기 중심적인가”라는 등 자극적인 문구를 부각시킨 책들이 전용 코너까지 만들어져 진열돼 있다고 한다. 아베 총리 등장 이후 노골화 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영향이 한 흐름처럼 굳어지고 있는 것 같아 여간 개운치가 않다. 아베 총리의 국내 지지도가 60%를 오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본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민들에게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아베 총리는 독일의 히틀러가 경제불황과 제국시대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를 부추겨 집권한 사례를 답습하며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때문에 그런 그가 부끄러운 역사를 미화하려는 미망에서 깨어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 및 중국과의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역사왜곡과 군사대국의 야망을 더욱 키워가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일본 지도층의 잘못된 역사관으로 인해 한·일간에 냉전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지난 주 나흘간의 한국방문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 그는 방한기간 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참담한 심정으로 용서를 구한데 이어 국회연설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 등을 예방하며 ‘일본국민들이 모두 아베와 같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심어주고자 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한 한일관계 정립’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배우고 미래에 잘못이 없도록 하는 게 역사의 역할이기에 그런 면에서 무라야마 담화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양보해서는 안된다. 꼭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무라야마 담화’는 그가 총리시절이던 1995년 “식민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총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태평양 전쟁 당시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를 말한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또 ‘고노 담화’를 언급하며 ‘(일본의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여러 가지 이상한 망언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부끄럽다”며 “국민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정말 우리가 나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는 점을 한국인들이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방한 행적은 일본과 일본국민, 그리고 ‘아베’로 상징되는 일본 극우파 정치인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다. 아직도 일본에는 아베의 정책이 잘못됐다며 비판하는 많은 양심적 지식인이 있고 아베의 우경화에 따른 맹목적 반한시위 등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국민들이 많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양심적 지식인들과 국민들에 비해 잘못된 역사인식을 갖는 국민들이 절대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생각의 끝에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걸렸고 답은 ‘냉정’이라는 두 글자에 모아졌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반일’이 새겨져 있다. 무조건 일본이 싫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차분하게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볼 여유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지 않다. 쉽게 말해 똑같은 ‘미운 짓’을 해도 그 감정에 ‘플러스 알파’가 얹히고 ‘이쁜 짓’을 해도 썩 내키지 않는다. 이러한 감정은 극일(克日)이 될 수는 없다. 나아가 이제는 일본이 극복의 대상이 되던 시기는 지났다. 동등한 우호협력의 동반자 관계가 한·일 관계다. 그만큼 우리가 성장했다는 반증이다. 그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어야겠지만 매사를 감정적으로 처리할 일은 아니다. 일본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일만이 아베를 중심으로 한 잘못된 역사관을 갖고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고 선린이웃으로 가는 길이다. 관점을 최소화 하더라도 아베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 아베 편으로 돌아서게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한국을 비하하고 증오하는 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적을 발행하고 또 유행처럼 팔린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 여유를 잃고 있다는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런 이웃이 당장은 불쾌한 것이 사실이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보면 안타까운 이웃이기도 하다. ‘혐중증한’으로는 일본이 한국을 이길 수 없다. 같이 치사해질 필요는 없다. 냉정함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다. 소치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피겨스케이팅 분야에서 우리의 김연아 선수와 일본의 아사다마오 선수가 한·일 양국의 자존심과 감정을 한꺼번에 안고 숙명의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세계의 시선도 모아지고 있다. 승패를 떠나 아사다마오에게도 야유보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할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는 있어야 한다. 그게 냉정이고 우리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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