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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징비후환(懲毖後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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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징비후환(懲毖後患)
  • 최재혁 지방부 부국장 정선담당
  • 승인 2015.07.0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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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를 움츠러들게 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하다 5일만에 다시 발생했다.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필자 나름대로 올 여름의 사자성어로 ‘토붕와해(土崩瓦解)’와 ‘징비후환(懲毖後患)’ 두 고사성어를 꼽아봤다.1529년 중종의 정국 운영이 난맥상을 빗자 대사간 원계채 등이 상소문을 올린다.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나라 일이 토붕와해의 상황인데도 임금이 끝내 깨닫지 못하면 큰 근심을 자초한다. 임금이 통치의 근본을 잊은 채 자질구레한 일이나 살피고, 번잡한 형식과 세세한 절목은 따지면서 큰 기강을 잡는 일에 산만하면 법령이 해이해지고 질서가 비속해진다. 밝은 선비가 바른 말로 진언해도 듣지 않다가 큰 일이 닥쳐서야 비로소 후회한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일반론으로 운을 뗀 후 이어 임금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전하는 즉위 초에는 정성으로 덕을 닦고 세운 뜻도 굳었지만 근년에는 일마다 고식적인 것을 따르고 구차한 것이 많다. 본원이 한번 가려지면 백 가지 일이 다 그릇되고 만다. 전하께서 엄하게 다스리려 해도 요행으로 은혜를 얻든 자들이 인척의 힘을 빌려 못된 짓을 한다. 또 간언을 하면 성내는 뜻을 드러내므로 진언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 이래서야 나라꼴이 되겠느냐’고 직언을 쏟아냈다. 토붕와해는 지반이 무너져서 기와가 다 깨진다는 뜻이다. 사기 ‘주보언열전(主父偃列傳)’에 나오는 말이다.서락은 한무제에게 올린 상소문에서 토붕과 와해를 구분했다. 그는 천하의 근심이 토붕에 있지 와해에 있지 않다고 보았다. 토붕은 백성이 곤궁한데도 임금이 구휼하지 않고, 아래에서 원망하는데도 위에서 이를 모르며, 세상이 어지러운데도 정사가 바로서지 않아 나라기 어느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말한다. 와해는 권력자가 위엄과 재력을 갖추고도 제 힘을 믿고 제 욕심만 채우려다 제풀에 꺾여 자멸하고 마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원래는 토붕과 와해가 구분됐으나 나중에 하나의 성어로 합쳐졌다고 한다. ‘활을 들면 좀먹은 부스러기가 술술 쏟아지고, 화살을 들자 깃촉이 우수수 떨어진다. 칼을 뽑으니 칼날은 칼집에 그대로 있고 칼자루만 쑥 빠져 나온다. 총은 녹이 슬어 총구가 꽉 막혔다’ 다산 정약용이 군기론에서 당시 각 군현에 속한 무기고의 상황을 묘사한 대목이다.갑작스런 환난이 닥쳤을 때 온 나라가 맨손뿐인 형국이니 이는 외적 앞에 군대를 맨몸으로 내보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지금 당장 위급한 상황이나 눈앞의 근심이 없다 하여 군대에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찌 위난에서 나라를 지켜낼수 있겠느냐’고 질책했다고 한다. 징비후환(懲毖後患)이라 했다. 지난 일을 경계 삼아 뒷근심을 막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소 다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느라 항상 바쁘다. 평소 징비를 바탕으로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가동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다.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 대책이나 실종자 수색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은 물론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 누구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여러 차례 인재라고 볼 수밖에 없는 엄청난 재난을 겪어왔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으니 어찌 정부나 지도자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지반이 튼튼한데 지붕이 무너지는 경우는 드물다. 근본과 기강이 서고 국민이 제자리를 잡고 있으면 와해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바닥이 통째로 주저앉는 토붕의 경우는 손쓸 방법이 없다. 집이 무너져 가는데 문패나 바꿔다는 미봉책이나 위기의 본질을 외면한 채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고식지계(姑息之計)로는 상황을 돌이킬 수가 없다.지난 5월 20일 국내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진 환자가 처음 발생한 한달이 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초유의 혼란을 겪었다. 감염병에 대한 제대로 된 매뉴얼조차 없어 초기대응 과정에서 발생한 보건당국과 일부 병원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과 뒷북 대응은 우리 사회 전반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이 병원명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메르스 전파력이 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병원 비공개 방침을 정했다”고 밝혔다. 메르스 사태 장기화에 따른 ‘원죄’가 정부에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특히 정부의 초동대처 실패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고 사태를 키웠다.감염병 방어체계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하다. 질병관리본부를 평상시보다 비상시 대응체제로 개편하고, 비상시 방역관을 임명해 야전사령관 역할하도록 해야 한다. 그 밑에서 상시적인 역학조사단이 구성돼 신종 감염병에 즉각 대응해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이번 사태에서 봤듯 메르스·에볼라 같은 전염병은 언제든지 우리 사회의 보건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우리가 겪었던 혼선과 혼란을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다시는 메르스 사태와 같은 우(愚)를 되풀이해선 안된다. 특히 정부는 ‘지난 일을 경계 삼아 뒷근심을 막아야 한다’는 징비후환(懲毖後患)을 깊이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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