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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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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의 향기로운 詩] 허상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2.01.12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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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허상
 - 최재문作

어스름이 벼랑을 깎아놓고
일몰의 허리가 적벽에 잠기면
 
뉘었다는 그림자 희뿌연 안개로
넓고 깊은 등급이길 휘감아 돌아
 
눈 씻어 걸릴 것 없는 바람 한 폭
생채기 쓰다듬어 펄럭이고
 
몸속 빨갛게 익어가는 나이테는
삶의 늪에 던져버린다
 
목선 하나 가을을 저으며
삽상한 마음 은빛 날개로 휘날린다
 

[이미지투데이 제공]
[이미지투데이 제공]

[시인 이오장 시평]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경치가 ‘기가 막히다’는 뜻으로 보기가 매우 좋다는 의미의 감탄사다. 

자연의 풍광이나 예술품, 사람에게도 적용되며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뜻 밖에 마주쳐서 할 말을 잊고 입을 벌리며 놀라기도 한다. 

이러한 감탄은 억지로 내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느낌이다. 
대게는 여행 중에 만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주위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도 한다. 

특히 사람은 평소에 잘 몰랐으나 어느 날 정감이 생기면 아름답게 보여 소통을 원하고 갑자기 만난 상대방의 모습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다. 

또한 사물이 아닌 글에서 아름다움을 느껴 연신 감탄사를 발하며 지은이와 공감을 이루는데 특히 시에서 이러한 일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최재문 시인의 허상이 그렇다. 
마치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를 보는 느낌이다. 

"어스름이 벼랑을 깎아놓고/ 일몰의 허리가 적벽에 잠기면"으로 시작하는 싯귀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인왕제색도를 연상하게 하고 거기에 겹쳐 전개되는 안개 휘날리는 모습은 꿈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눈 씻어 걸릴 것 없는 바람 한 폭 생채기 쓰다듬어 펄럭이고" 의 심적 묘사는 아름다움을 넘어 환상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시의 참맛은 후반부에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황혼에든 화자의 심상이 자연과 어우러져 인생의 허무를 읊는데 한마디로 기막히다. 

"몸속 빨갛게 익어가는 나이테는 삶의 늪에 던져버린다" 늪을 건너오듯 아슬아슬한 삶은 이제 던져버리고 인생여정의 고난과 번뇌를 잊어버리겠다는 시인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읽는 이의 감정과 동일하게 치솟는다. 

마지막으로 저승의 강을 건너더라도 시원하게 살아온 마음은 상쾌하고 아무런 여한이 없다고 하는데 이 얼마나 참되게 산 삶인가. 

결코 삶의 바램은 허상이 아니고 바라는 대로 이뤄진다는 인과율(因果律)을 말했지만 시인의 삶과 작품이 하나로 이어진 작품이다.

[전국매일신문 詩] 시인 이오장(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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