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강상헌의 하제별곡] 정치와 몽둥이
상태바
[강상헌의 하제별곡] 정치와 몽둥이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3.07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흰 그늘’의 詩 ‘오적(五賊)’, 시인은 홀로 아팠다.

시인은 새벽에 일어나 앉았다. ‘닥터 지바고’ 영화의 시인도 그랬다. 설원(雪原)의 늑대들 소리 사나웠다. 시인은 오래 아팠다. ‘박정희’에게 짓밟힌 몸과 마음, 저물 때까지 사무쳤다. 그려보다 눈물이 났다. 시 쓰는 그 새벽, 아름답다 말라. 

시인은 ‘나’ 대신 아팠다. 김지하(1941~2022)의 시 ‘너는 나에게’의 몇 대목, 혼(魂)과 백(魄)의 갈필(渴筆)질이다. (2018년 작가刊 ‘흰 그늘’ 수록 詩) 

< ...이 길고 긴 고난과 가난과 황량한 ...시절에서 /눈물 흘릴 때 // 한없는 환락과 큰 소리에 높은 의자에서 /떵떵거리던 너 /너는 /무엇인가 // 너의 이름은 국회의원 /너의 이름은 장군 /또 /너의 이름은 고급공무원 /그리고 너의 이름은 /장차관 재벌 // 그것이 무엇이관대 ...밤새 잠을 설친 뒤 // 새벽에 /홀로 일어나 /옛 詩 /‘오적(五賊)’을 생각한다 ...나 이제 나이 80에 /결심한다. // ‘또 쓰리라!’ /‘또 써서 세상을 확 뒤집어 놓으리라.’ ...>

‘오적’(1970년)은 세상 확 뒤집었다. 뒤집힐 만 했다. 우리 시인은 메마른 붓으로 ‘사람의 정치’를 그렸다. 갈구(渴求)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그 ‘正’이 정의(正義)이고 자유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몽둥이가 필요한가. 정치(政治)의 ‘政’자가 보듬은 攵(복)자는 (손에 든) 몽둥이 그림이다. 문자는, 세상처럼, 그림이다. 

같은 글자 攴에서 그림이 더 잘 보인다. 획(劃) 따라 그려보면 손이 먼저 안다. 철학이 ‘세상과 사람의 원리’라면, 철학이론보다는 세상의 그림인 문자에 더 절실한 깨달음 있겠다. 

언제나 어디에나 ‘철학’은 있(었)다. 있을 것이다. 철학의 그 슬기는 명상(瞑想)이라고도 하는 생각을 통해 마음에 쌓인다. 적적(寂寂)하고 성성(惺惺)하게 깨어있어야 한다고 섭리(攝理)는 가르친다. 

우리 모두의 (어릴 적) ‘개똥철학’은, 떠올려보니 참 귀한 명상이었다. 지금은 사람 말고 스마트폰이, 인공지능(AI)이, 생각도 명상도 ‘철학’도 (대신) 한다. 허나, 다 해도 정치는 그래선 아니 된다. 요즘 정치, 보아하니 매를 번다. 

政 글자의 그림(바탕)은 큰 정치다. 개심(改心) 회심(回心) 하심(下心)하라, 신기함과 장사 속에 빠져 흐려진 그 마음 다잡으라, ‘正’이 몽둥이 들고 있는 까닭을 보자.

박정희가 ‘반공(反共)하자.’며 집어든 이데올로기가 ‘자유민주주의’였다. 시인이 화냈다. 그게 ‘오적’이다. 반공과 자유가 같은가? 제 편의를 위해 언어를 비트는 건 뜻 망치는 죄악이다. 자유는 생명의, 민주주의의 바탕이다. 이데올로기는 한갓 도구다. 

갓 서른, 시인의 손가락은 박정희를 겨눴다. 반공 빌미로 호의호식하는 국회의원 장군 고급공무원 장차관 재벌이 오적(五賊)으로 꼽혔다. 최고급 비유다. 적막 속에 깨어 있으라.

오늘, 무엇이 다른가. 누가 ‘몽둥이’를 들고 있나?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