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미(Anomie : 사회 구조와 무규범성)’는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에 의해 최초로 주장된 이론으로 ‘긴장 이론(straintheory)’의 뿌리를 이룬다.
아노미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강력한 가치관이 세력이 약화하고, 한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가치관이 동등한 세력을 가지면서 한 사회 내에서 공존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아노미 상태에서 살고있는 개인들은 어떤 가치관을 따라야 할지와 같은 가치관의 혼란을 경험하게 되며, 따라서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가치·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인 일탈행위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뒤르켐은 범죄와 관련, 어떠한 사회에서도 범죄 행위가 전무 할 수 없다는 ‘범죄정상설’과 범죄가 오히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범죄유용설’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무규범성을 사회적 규범이 약해지거나 붕괴할 때 발생하는 상태로 묘사했다. 이후 미국의 유명한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은 1938년 ‘Social Structure and Anomie’라는 논문을 통해 이 같은 아노미 이론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
그는 특정 사회에서 문화적 목표는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 제도적 수단으로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사회적 ‘긴장’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아노미 상황에서 사람들이 내면화한 문화적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에 따라 각기 다른 적응방식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범죄학 및 사회학 분야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머튼이 제시한 개인의 적응방식은 크게 다섯 가지로, 동조형(Conformity : 순응)은 사회적으로 승인된 수단을 사용,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며, 혁신형(Innovation : 혁신)은 합법적인 목표를 추구하지만 제도화된 수단은 거부하며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범죄가 이에 포함된다고 한다.
또, 의례형(Ritualism : 의식주의)은 사회적 목표를 거부하고 제도화된 합법적인 수단만을 수용하는 적응방식이다. 조직의 목표보다는 절차적 규범이나 규칙만을 준수하는 데 치중하는 무사안일한 관료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도피형(Retreatism : 회피주의)은 사회적 목표와 수단을 모두 거부하고, 사회로부터 후퇴 또는 도피해버리는 적응양식으로, 만성적 알코올중독자나 마약 상습자 등이 이러한 적응양식이라는 것이다.
반역형(Rebellion : 반란)은 기존의 문화적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을 모두 거부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화적 목표와 제도화된 수단으로 대치하려는 적응방식이다.
‘아노미 현상’은 사회학적 용어로, 주로 사회적 규범이 약화·분해돼 개인이나 집단이 지향할 모델이나 행동 양식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각종 범죄나 비행, 자살 등 많은 사회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
요즘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피습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온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41·서을 송파을)이 4·10 총선을 76일 앞둔 지난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 입구에서 ‘배현진이 맞냐’며 접근한 15세 중학생 A군으로부터 둔기 피습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했다가 김모(67) 씨가 휘두른 흉기에 외쪽 목을 찔리는 피습을 당한 지 23일 만이다.
이 대표의 피습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서울 도심에서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가 발생하자 여야를 가리지 않고 크게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공포감도 확산하고 있다.
여야는 배 의원 피습 다음 날인 지난 26일 당국에 국회의원 피습 대책을 촉구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도 그렇고 배 의원 피습 사건도 그렇고, 이런 유사한 범죄, 모방범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선거 관련 경찰의 경호·경비 대책이 선거운동 기간 중으로 제한돼 있다. 이 기간보다 앞에서부터 경찰이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나”고 밝혔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명백한 정치테러란 사실이 분명하다”며 “연초부터 이런 불행한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데 당국의 특단의 대책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 같은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한국사회의 극심한 혐오정치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수원정 지역구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배 의원의 피습 사건에 대해 “남 일 같지 않다”며 한 장의 메모 사진과 함께 “출마 소식을 접하고 처음 쪽지로 받은 협박 메시지”라는 글을 올렸다.
이 교수가 12월 초 받은 메모에는 “교수님 출마 의지 잘 들었다.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막고자 나가시는데 왜 국민의힘이냐. 수원은 국회의원, 수원시장, 도지사 전부 민주당인 유일무이한 도시”라며 “사지로 가지 마시고 민주당이 아니면 무소속으로 출마하셔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이 교수는 연구실 문틈에 끼워놓고 갔다는 건 내 위치와 동선을 알 수도 있다는 이야기라며 잠시 두려움이 판단력을 마비시켰지만 잊기로 했다고 밝혔다.
갈등을 부추기고 정서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혐오·팬덤 정치가 불러온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전문가들은 극단적 이념의 유권자들 사이에서 정서적 양극화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념적 양극화는 합리성에 기초하는 반면, 정서적 양극화는 감정의 차원에서 발현한다는 것이다.
정서적 양극화가 ‘폭력’으로 표출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2021년 미국에서 발생한 의사당 난입 사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선거에서 패배하자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해 의회에 난입, 유혈사태로 확대되면서 6명이 사망했다.
정서적 양극화는 아노미 현상을 부추긴다. 정치권에서는 증오와 혐·분열·막말의 정치가 사라져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한 정치권의 실천 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전국매일신문] 최승필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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