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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의 나물이야기] 나라마다 다른 고사리 사랑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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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의 나물이야기] 나라마다 다른 고사리 사랑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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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2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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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순 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고사리는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식물이다. 1만 2000종이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고 하는데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고사리를 먹는 식문화는 없다. 그렇지만 서양에서는 고사리를 관상용으로 매우 소중하게 여기며 식물자원으로 보존하고 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고사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가치를 구가했는데 이러한 사회현상을 ‘고사리 열풍(fern craze)’라 불렀다.

고사리 열풍에 불을 지핀 사람은 영국의 외과 의사이자, 식물애호가였던 나다니엘 백쇼 워드(Nathaniel Bagshow Ward)였다. 1829년 여름 워드는 스핑크스 나방의 부화 생장과정을 관찰하기 위해 병 안에 흙과 나방의 번데기, 마른 잎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얼마 후 부화한 나방을 꺼내면서 흙에서 싹을 틔운 고사리를 발견했다. 워드는 무심코 나방만 꺼냈고 고사리는 방치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사리는 병 안에서 아무 탈 없이 3년 동안 살았다.

이러한 경험에 착안해 워드는 식물이 물 없이도 자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밀폐형 용기를 개발했다. 사실 17~18세기에는 식물을 원산지에서 유럽으로 무사히 살려 가져오는 일은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나 ‘워디안 케이스(Wardian Case)’라고 불리던 일종의 휴대용 테라리움(terrarium) 덕분에 전 세계의 식물을 살아 있는 그대로 유럽으로 운반이 가능해졌다.

워디안 케이스는 고사리 마니아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유럽에서 고사리는 관상용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수많은 식물 사냥꾼들은 고사리를 채집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전 세계 식민지를 찾아 헤맸다. 워디안 케이스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고사리를 안전하게 유럽으로 유통시키는 데 이용됐고 ‘집안의 수정궁’이라 불리며 중산층 마니아 가정의 거실을 장식했다. 희귀종 고사리의 가치는 치솟았고 엄청난 가격으로 거래됐다. 고사리를 많이 채집했거나 희귀종을 손에 넣은 사람들 중 몇은 기사 작위(爵位)를 받을 정도였다.

고사리 열풍은 단순한 채집이나 매매, 수집이나 관상에 그치지 않았고 식물산업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고사리는 유럽에서 가장 매력적인 브랜드로 부상했다. 고사리 문양으로 장식한 직물에서부터 도자기, 가구 등이 불티나게 팔렸고 출판업자들은 관련 서적을 만들어 팔아 떼돈을 벌었다. 그러나 워디안 케이스는 무차별적인 고사리 채집과 서식지 파괴 등 희귀종 고사리의 멸종을 야기시켰다. 결국 고사리의 질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고사리 열풍도 사그라들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국립공원과 산 같은 곳에서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커다란 고사리 밭을 볼 수 있다. 한국의 고사리에 비해 크기도 크고 더욱 부드럽다. 하지만 야생동물의 식용으로 있는 것이라 뜯어가지 못한다. 고사리를 막 뜯어가다 걸리면 야생식물 불법 채취로 벌금을 물린다. 북미에는 뜯어가는 사람이 없어서 엄청난 밭이 많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막 뜯어가서 불과 하루 만에 풍경 자체가 바뀌자 원주민들이 항의하면서 채집이 불법이 됐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예로부터 고사리를 식용으로 먹기는 했다. 유럽인들의 도래 이전에는 고구마와 타로, 참마가 잘 자라지 않는 남섬에 정착한 마오리족들이 고사리 뿌리를 주식으로 삼아 먹었다. 유럽인들에 의해 감자와 밀가루가 전파되면서 별식 수준으로 먹는 수준이지만 여전히 고사리의 전분을 발효시켜 빵으로 먹기도 한다.

뉴질랜드의 은고사리(silver fern tree)는 국민의 정체성, 강력한 힘과 번영, 새로운 시작(생명)을 상징한다. 은고사리를 도안한 퀼마크(Qualmark)는 국가의 공식 인증 로고로 뉴질랜드 관광 산업에서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의 품질을 인증한다. 뉴질랜드 어느 지역에 가든지 이 로고를 만난다면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다. 퀼마크 인증 시스템은 예술 및 스포츠에 대한 심오한 영향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풍부한 유산에 대한 증거로 우뚝 서 있다.

한국인의 고사리 사랑은 유별나다. 생고사리에는 발암물질있고, 가축들도 먹지 않을 만큼 지독한 독성을 가지고 있어 서양에서는 기피하는 식재료다. 이런 고사리를 데쳐서 말리고 물에 불리는 방식으로 독성을 제거해 최고의 식재료로 요긴하게 사용했던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고화순 대한민국전통식품명인 남양주시 하늘농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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