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경기행정동우회 회원 33명은 포천 국립수목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포천 국립수목원(광릉숲), 남양주 광릉(光陵), 구리 동구능(東九陵)에서 산불예방 캠페인과 자연과 역사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날이다.
11시. 포천시 소흘읍 국립수목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수목원 입구에서 권두현 회장님으로부터 가을철 산불 예방에 대한 주의사항을 들었다. “건조한 기후와 강한 바람으로 산불 발생 위험성이 높아지는 가을철을 맞아 산불 예방 활동이 중요하다. 화재로부터 소중한 산림 자원 보호와 인명, 재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산불 예방캠페인은 광릉숲 수목원 방문객을 대상으로 산불 예방 분위기 조성, 산불 예방 안전 수칙 전파 등을 진행했다. 아울러 산책로 주변 환경 정화 활동도 병행하였다.
이어 숲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수목원을 돌며 자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광릉숲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국립수목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수목원이며 대한민국의 허파다. 이곳은 조선시대 왕실 가족이 사냥과 함께 활쏘기를 훈련했던 강무장(講武場)이었다. 1468년 세조의 무덤 광릉이 조성된 이후 국가 차원에서 550여 년 동안 관리해 훼손되지 않고 보전이 잘됐다. 조선왕조는 관리들을 파견하여 능과 그 주변 숲을 지키게 했다.
광릉숲은 25,000㏊(생물권보전지역)에 이른다. 여의도 면적의 29배에 달한다. 전 세계적으로 온대 북부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온대 활엽수 극상림(極相林)을 이루고 있는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숲이다. 광릉의 전나무 숲은 오대산 월정사, 부안 내소산 전나무 숲과 함께 3대 전나무 숲으로 손꼽힌다. 가을에 단풍이 정말 아름다우며, 계수나무가 많아서 특유의 달고나 향이 진동한다.
광릉숲은 생물다양성의 보물창고로 국내 으뜸가는 산림생태계의 보고(寶庫)다. 무려 6천 여종의 생물이 어우러져 생육하고 있다. 단위 면적당 생물의 개체수가 설악산보다 훨씬 많다. 2010년 유네스코는 광릉숲을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으로 지정했다. 특별히 광릉요강꽃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꽃이 큰 난초로 1931년 광릉숲에서 처음 발견됐다. 천연기념물 제38호 하늘다람쥐, 제197호인 크낙새, 제218호 장수하늘소, 제242호 까막딱따구리 역시 광릉숲에서 발견된 것이다. 장수하늘소는 곤충 가운데 유일하게 천연기념물이다. 또 크낙새는 우아한 자태로 광릉숲의 유일한 상징이었으나 1989년 이후 현재까지 관찰기록이 없다. 광릉숲에 크낙새가 돌아온다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인 광릉숲이 새롭게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국립수목원에는 산림박물관도 있다. 1987년 개관한 국내 최초의 산림박물관이다. 연 면적 4,798㎡(1,453평)으로 전시실, 체험공간, 도서관 등을 포함해 2층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실에는 산림자원과 기술, 산림과 인간, 세계의 임업, 한국의 자연이라는 테마로 1만여 종류의 전시물이 진열돼 있다.
국립수목원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남양주시 진접읍에 소재한 ‘광릉(光陵)’으로 이동해 산불 예방캠페인과 주변 정화 활동을 한 후 역사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광릉을 둘러보았다. 광릉은 조선 제7대 왕 세조(世祖:1417~1468)와 세조의 원비(元妃) 정희왕후(1418~1483)의 능이다. 1970년 사적 제197호로 지정됐다.
세조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둘째 아들로 진평대군(晉平大君), 진양대군(晉陽大君)을 거쳐 1445년(세종27)에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봉해졌다. 1943년(단종1)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1455년 단종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하는 동안 정승(政丞)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 현직 관료들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職田法)을 실시하여 토지제도를 개혁하였다. 지방의 군사 조직을 강화하여 방어체제를 구축하였고,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편찬을 시작했다. 1468년 아들 예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수강궁(壽康宮)에서 세상을 떠났다.
정희왕후는 1428년(세종10) 당시 진평대군이던 세조와 혼인하여 낙랑부대부인(樂浪府大夫人)에 봉해졌고, 1455년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1469년 아들 예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당시 13살이던 손자 성종을 왕위에 올린 후 조선 최초로 7년 동안 수렴청정(垂簾聽政)했다. 1483년(성종14) 온양 행궁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조와 정희왕후는 조선 최초로 같은 능 구역 내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을 썼다. 이른바 ‘동원이강(同原異岡)’ 형태의 능이 되었다. 세조의 유언에 따라 재궁(梓宮:임금의 관)을 두는 방을 석실(石室)대신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으로 만들고, 봉분에 두르는 병풍석을 생략하여 왕릉 공사에 드는 비용과 인력을 절약하였다. 이는 조선 초기 능제(陵制)에 변혁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일정으로 구리시 인창동 소재 ‘동구릉(東九陵)’으로 이동했다. 이곳 역시 산불 예방캠페인 및 주변 정화 활동을 마치고 역사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동구릉을 둘러보았다. 동구릉은 약 450여 년에 걸쳐 9개 능(陵)으로 왕 7명과 후비 10명이 족분(族墳)을 이루고 있다. 1970년 사적 제193호로 지정됐고, 2009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동구릉에는 조선왕조의 창업 군주인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健元陵), 제5대 왕 문종과 비(妣)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顯陵), 제14대 왕 선조와 정비(正妃) 의인왕후와 계비(繼妃) 인목왕후가 함께 묻힌 목릉(穆陵), 제16대 왕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인 휘릉(徽陵), 제18대 왕 현종과 비 명성왕후의 능인 숭릉(崇陵), 제20대 왕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의 능인 혜릉(惠陵)이 있다.
그리고 제21대 왕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의 능인 원릉(元陵), 제23대 순조의 아들인 추존 문조(文組:1809∼1830)와 그의 비 신정왕후의 능인 수릉(綏陵), 제24대 헌종과 정비 효현왕후와 계비 효정왕후의 능인 경릉(景陵)까지 총 9개의 능, 16개의 봉분이 구릉산 기슭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다양한 왕릉의 형태를 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이번 경기행정동우회의 가을철 산불 예방캠페인과 자연 역사문화 답사는 숲의 소중함과 왕릉의 절개(節槪)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광릉숲은 왕의 숲이 된 지 55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숲이 지닌 유형과 무형의 가치를 몸으로 느끼면서 숲을 잘 보전해 역사적, 문화적, 생물학적 가치를 후세대에 온전하게 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조선왕릉은 풍수, 조경, 건축, 미술의 최고봉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왕릉은 소나무가 우거지고 햇빛이 잘 드는 조용한 숲속, 일명 명당에 있다. 그래서인지 권위적이지도 않고 폐쇄성도 없으며 엄숙하다는 느낌도 없다, 오히려 좋은 자연공원으로 낮은 지대에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의 힐링 장소로 인기가 높다.
늦가을 단풍을 기대하고 갔건만 숲은 아직 푸르름이 가득했다. 예년과 다른 기상 이상으로 무더움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시계’라는 것이 있다. 이 시계는 전 세계 과학자, 예술가, 기후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프로젝트로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 상승하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을 나타낸다. 2024년 11월 1일을 기준으로 1.5℃ 상승까지 남은 예정 시간은 4년 263일이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도 1.5℃ 상승하면 폭염·가뭄 빈도 및 태풍 강도 증가, 강수량 상승 등의 기후변화가 이어져 생태계 절반 이상이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예고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올해 여름 우리 국민은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최악의 폭염을 견뎌야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올해 여름이 다가올 여름에 비하면 가장 시원할 것이라는 전망을 믿으며 자조했다.
광릉숲에서 느낀 것은 자연의 평온함뿐 아니라 소중함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파괴되고 사라지는 숲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유네스코가 인정한 광릉숲은 국가와 국민의 숲으로 우리가 지켜야 한다. 숲은 질병, 식량을 비롯한 우리가 직면한 미래의 여러 어려움을 해결해줄 자원이며 자산이다. 상쾌한 가을날에 함께한 산불 예방캠페인은 공직 선배님들과 숲을 잘 가꾸고 보존하여 미래에 이어 주어야겠다고 결의를 다진 굳건한 하루였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제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