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군 석곡면에서 66년 동안 이어져 온 ‘면민의 날’ 행사가 석곡초등학교 운동장 개방 거부로 인해 취소됐다는 소식은 단순한 행사 중단 이상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지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행정적 결정에 대한 반발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과 소통의 단절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학교 측은 금연 구역 규정과 화기 사용 및 음주 금지를 이유로 들며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규정을 지키려는 이유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이 결정은 단순히 규정 준수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와 지역사회는 역사와 정체성을 공유하며 함께 발전해 온 관계로, 이번 결정은 이 동반자적 관계에서 벌어진 중대한 단절을 반영한다.
석곡초등학교는 오랜 시간 지역 주민들의 협조 속에서 성장해 왔으며, 설립 당시 부지 또한 주민들의 강제 수용을 통해 마련되는 등 지역사회의 지원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이 학교가 존재하고, 학생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그러한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의 학생들 또한 지역 주민들의 자녀로서 공동체의 일원이기에, 지역사회와 학교는 단순히 사용자와 관리자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력하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함께 만들어 가는 동반자인 것이다.
● 갈등의 이면: 개인적 감정과 공공의 이익
석곡 청년회장은 이번 결정이 ‘학교장의 개인적 감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갈등의 원인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만약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감정을 우선시한 결정으로 수십 년 전통과 공동체의 유대를 무너뜨리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이는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정이며, 공공기관이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외면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주최 측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존중하며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행사를 휴일에 개최하려 했다. 이는 지역사회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학생들의 학업 환경을 해치지 않기 위해 신중히 고려된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장은 운동장 사용을 거부한 것이다.
● 학교장의 대체 장소 제안의 한계
학교장이 대체 장소로 제안한 대황강 운동장은 여러 물리적 불편을 안고 있다. 인조 잔디로 깔려 있는 이 운동장은 노령 인구가 많은 석곡면민들에게 미끄럼의 위험이 있어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또한 그늘이 없는 개방된 공간이자 시가 행렬을 진행하기에 부적합한 구조로,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운동장은 단순한 행사 공간을 넘어 지역민들의 기억과 역사가 깃든 상징적 장소로, 그 의미를 고려하지 않은 대안이었다.
석곡초등학교 운동장은 114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1946년 석곡면 주민들이 세운 광복 기념탑과 오랜 시간 마을의 일상을 담아온 30여 그루의 나무들이 서 있는 공간이다. 이 운동장에서 열리는 ‘면민의 날’ 행사는 지역민들에게 단순한 편리함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진다.
● 법적 관점에서 본 학교장의 결정
학교장은 합리적인 사유가 있을 경우 학교시설의 사용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교육시설 개방에 관한 법률은 학교시설이 지역사회와 공유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공익적 목적으로의 사용 요청이 있을 경우 이를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주최 측이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휴일을 선택한 점을 고려할 때, 학교장의 이번 결정은 법의 취지와 학교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외면한 결정이라 볼 수 있다.
● 교육청의 역할과 책임
이 갈등에서 또 다른 책임의 주체는 석곡초등학교를 관할하는 곡성 교육청이다. 교육청은 학교장의 비합리적인 결정을 방관해서는 안 되며, 학교와 지역사회의 갈등을 중재하고 협력을 도모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러나 곡성 교육청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는 교육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으로, 지역사회의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 할 수 있다.
● 교육자의 철학적 접근: 홍익인간의 이념을 되새기다
교육법에 명시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은 모든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고 공익을 추구하는 가치를 담고 있다. 이는 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사회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협력하고 발전하는 자세를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교장은 이번 결정을 내리기 전에 이러한 교육적 철학을 되새기고,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숙고했어야 했다. 홍익인간의 이념은 학교와 지역사회가 상생하며 공존하는 방향을 지향하며, 그 가치를 망각하고 지역사회의 요구를 규칙 위반으로 외면한 것은 교육기관의 본분을 저버린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 진정한 해결책은 소통과 협력
이번 사건은 단순히 운동장 대여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학교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66년간 이어져 온 ‘면민의 날’은 지역민들에게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행사이며, 그 장소가 석곡초등학교라는 점은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학교가 이 의미를 간과하고 사려 깊지 않은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지역민들의 전통과 유산을 존중하지 않는 행위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학교장과 교육청은 공공기관으로서 법과 규칙을 넘어 지역민들과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공동체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지역사회가 학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장은 이를 거부했다. 이는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로,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결정이다.
공직자가 민원의 만남을 거부하는 것은 주민들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과 다름없으며,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의 전통과 요구를 경청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학교장과 곡성 교육청은 이제라도 진솔한 대화를 통해 지역사회와 협력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김영주기자(전남 곡성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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