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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적 가치가 남긴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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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적 가치가 남긴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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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3.12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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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 속에서 물러나게 됐다. 과거 '선거의 여왕'으로까지 불리면서 제18대 대선에서 승리했던 영광의 순간은 뒤로하고 이제는 피의자 신분에서 검찰 수사를 받고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해야 하는 치욕의 시간만 앞에 두게 됐다. 현직 대통령이 파면된 것은 우리 헌정 사상 처음이다. 헌재는 10일 재판관 8명 전원의 찬성으로 박 대통령의 파면을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로 시작된 대통령 탄핵 국면은 92일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정미 소장 권한대행은 오전 11시 21분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엄숙히 선고했다. 그 순간 대통령 박근혜는 한 명의 자연인이 됐다. 동시에 경호·경비 이외의 전직 대통령 예우가 모두 사라졌다. 사후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자격도 없어졌다. 국민의 무거운 신임을 저버리고, 법의 엄정한 명령을 어기고, '최순실 국정 농단'에 개입한 말로다. 그 죄과의 경중을 떠나 4년 간 이 나라를 통치했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보면 인간적 동정심이 일기도 한다. 물론 국가적으로는 큰 비극이자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 권한대행의 결정문 낭독과 주문 선고는 예상보다 훨씬 짧은 20여 분 만에 끝났다. 신속하고 단호한 진행만큼 결정문의 논거도 명쾌했다. 한마디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위반한 '법 위의 대통령'은 헌법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가 먼저 주목한 부분은 대통령의 헌법상 '공무수행 투명성' 의무이다. 최순실 씨의 국정개입을 철저히 숨겨 민주주의 구성의 중대한 요소인 국회와 언론의 감시를 무력화시켰다는 취지다. 대 국민 담화 등을 통해 검찰과 특검 조사를 받겠다고 약속하고 지키지 않은 것과 청와대 압수수색을 불허한 것도 중대한 탄핵 사유였다. 그런 행위들로 대통령이 지켜야 할 헌법적 가치가 훼손되고 국민의 신임을 잃었다는 판단이다. 이 권한대행은 "피청구인의 언행을 보면 헌법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이 헌법을 지키는 길임을 강조한 것이다.


헌재의 탄핵 결정은 그동안 국정의 발목을 잡았던 각 분야의 불확실성을 대부분 제거했다. 우선 차기 대통령 선거 일정이 확정됐다. '60일 후 대선'을 향한 각 정당의 질주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를 것 같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이 보수와 중도 진영의 후보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특검에서 바통을 넘겨받은 검찰 수사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특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의해 드러난 박 전 대통령의 혐의는 열세 가지나 된다. 박 전 대통령의 보호막이었던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만큼 검찰 수사가 급가속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은 금융계좌 압수수색이나 통신조회 같은 강제수사로 증거를 확보한 뒤 박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할 듯하다. 물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통령 조사를 대선 이후로 미룰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헌재의 분명하고 단호한 탄핵 결정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검찰은 법과 원칙을 따르는 것이 최선이다.


이번 탄핵심판은 우리의 치부도 적잖게 드러냈다. 그중 최악을 꼽는다면 단연 허약한 법치주의가 아닐까 싶다. 탄핵 찬·반 세력이 연일 헌재 앞에서 막말 시위를 벌이고, 정치인들도 가세해 부채질하는 나라는 남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다. '기각하면 혁명뿐', '탄핵하면 아스팔트 피바다' 식의 칼날 같은 말들이 춤추는 나라도 마찬가지다. 중대 결정을 앞둔 헌재를 이렇게 막무가내로 압박하는 행위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상상할 수도 없다. 까마득한 정치 후진국임을 자인한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헌재 결정은 법치주의의 진정한 가치와 '힘'을 새삼 일깨웠다. 대한민국의 '제왕적'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법의 명령'으로 퇴출할 수 있음을 온 국민 앞에 증명했다. 이젠 여야 정치인은 물론 국민모두가 갈등과 대립의 상처를 치유해 화합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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