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매일신문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지방시대
지면보기
 표지이미지
[세상읽기 55] 연기인 김영애와 ‘일개 전직 대통령’
상태바
[세상읽기 55] 연기인 김영애와 ‘일개 전직 대통령’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7.04.12 14: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박근혜와 전두환은 연기자 고 김영애씨의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세상은 감사할 일이 많고 그 감사함을 다 갚지 못하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 -
 

많이 망설였다. 고인을 누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어이 글을 쓰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을 직시했던 한 연기자의 삶과 마지막 남긴 말들이 큰 울림으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과 이어진 대통령 선거로 살벌해지고 있는 세상에서 그녀의 마지막 생은 남겨진 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벚꽃 흐드러지던 지난 일요일, 김영애라는 한 연기자가 날리는 꽃잎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가 운명하기 전 미리 행한 언론사와의 인터뷰 내용은 맑고 담백했다. 그녀는 죽음을 목전에 둔 생전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세상에 대한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아까운 건 없어요. 그런데 연기는 좀 아깝긴 해요. 그 것 말고는 미련도, 아까운 것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나아가 “정말 감사할 게 많아요. 이 세상에 감사했다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내가 가진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받았어요. 고맙고 감사한 일뿐인데, 이 감사함을 갚지 못하고 가는 게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세상에 감사했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는,  ‘그 감사함을 다 갚지 못하고 가는 게 미안하다’는 그녀의 말은 어떤 철학자나 권력자,  또는 종교인의 말보다 맑았고 여운이 깊었다.
 
필자는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어서 그녀가 출연했던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병원에서 외출증을 끊어가며 녹화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흔히들 하는 말로 ‘무대 위에서 생을 마감한 연기자’가 바로 고 김영애씨였다. 그녀는 그만큼 자신의 직업을 사랑했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녀는 한 때 사업에도 손을 댔다. '먹고 살기 위한 연기는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황토팩 사업은 번창했고 어려운 이웃에 통 큰 기부를 하는 등 사업가로 성공하는 듯 했다. 하지만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황토팩에서 인체에 유해한 중금속이 검출됐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텔레비전의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으나 그녀는 이 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일부에서는 이 일로 병을 얻었다고 한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 일과 관련, “나도 살면서 정말 부끄러운 일 많이 했다”고 고해성사처럼 밝힌 뒤 “누구를 미워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를 원망하는 것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니 그냥 나를 위해 사는 것이 낫다고도 덧붙였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로 인해 살맛나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그녀는 벚꽃 날리듯이 그렇게 갔지만 그녀가 남긴 삶의 흔적은 벚꽃보다 곱게 피어 우리 곁에 남았다.
 
한 연기자의 큰 삶을 보면서 필자는 ‘일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텔레비전 정치토론 프로그램을 두고 어느 정당의 국회의원이 ‘일개 PD가’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일개’를 어떻게 풀이하고 있는가 싶어 어학사전을 찾아보았더니 ‘한낱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일개’는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까지 ‘일개’로 만든다. 권력자들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일개 기자가~’라고도 한다. 그 말을 한 사람이 국회의원이면 ‘일개 국회의원이’이 되는 것이고 장관이 했다면 ‘일개 장관’이 되는 것이다.

연기자 김영애씨의 삶 앞에서 '일개’의 용어를 트집 잡는 것은 어떤 권력자보다 그의 삶과 영혼이 맑고 커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개’라는 용어를 이제는 잘못된 권력 모리배들에게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최근 대통령에서 탄핵돼 구치소에 수감된 박근혜가 반성은커녕 기를 쓰며 잘못이 없다며 우기고 있는 판에 12.12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5.18학살을 자행했던 전두환은 자서전을 통해 “나도 광주사태의 희생자‘라고 주장, 역사에 오물을 끼얹었다.

필자에게 돌아올까 보아 망설여지지만 ‘일개’라는 말은 이럴 때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나부랑이’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만  ‘일개 전직대통령이’라고.

이 화려한 봄날, 꽃잎하나도 틔우지 못하는 일개 전직 대통령이 무슨 대단한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박근혜와 전두환은 연기자 김영애씨의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세상은 감사할 일이 많고 그 감사함을 다 갚지 못하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

차기 대통령은 ‘일개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의 자랑스런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의 대통령’이라고 불리지는 못해도 최소한 연기자 고 김영애씨의 삶을 기억한다면 ‘일개 대통령’은 되지 않을 것이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