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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엿장수와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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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엿장수와 판사
  • 대기자/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4.04.0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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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판과 재판의 차이는 사회지도층에게 일반인의 1만배에 해당하는 특혜를 주려면 1만배에 해당하는 사회적 책임을 먼저 요구하는 데 있다. 그래야 나라가 선다.-미리 밝히지만 ‘국민권익의 최후 보루’라는 법관들을 희화하 하여 그 존엄성을 짓밟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또한 선량한 엿장수의 직업을 비하하거나 천대할 생각 역시 조금도 없다. 다만 두 직업의 행위가 같아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하고 싶다. 법관은 독립된 사법권을 가지고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 엿장수 역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엿을 판다. 그런 측면에서는 독립된 자유의지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두 직업에는 그들만의 전문성이 있기에 전문성 운운하며 차이를 들먹일 일도 아니다. 법관의 독립적 판단은 공공의 질서를 위해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으로 상식선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엿장수의 독립된 결정은 사적인 영리행위이기에 반드시 상식이 지켜져야 할 필요는 없다. 차이는 두 직업의 독립적 판단에 보편적 상식이 전제되느냐의 문제다.그러나 최근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구치소 노역 일당 5억원’으로 사회적 공분을 산 이른바 ‘황제노역’은 엿장수가 엿을 자른 것인지, 법관이 판결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벌금과 세금 400억원을 내지 않고 해외 도피 중이던 허 전 회장이 지난달 22일 자진 귀국하면서 필자의 머릿속은 법관과 엿장수가 동일직업으로 느껴져 혼란을 겪어야 했다.허 전 회장의 자진 귀국 이유는 간단했다. 249억원의 벌금을 하루 5억원씩 49일간의 노역으로 대신하겠다는 심사였다. 더구나 ‘노역이라 해보았자 봉투접기나 두부만들기 정도이고 토.일요일 등의 공휴일을 빼면 기껏 한 달 남짓 고생하면 된다’ 고 생각했을 수 있다.허 전 회장의 탈세 및 횡령에 따른 형량은 검찰의 구형단계에서부터 법원의 판결까지 ‘엿판의 엿’이었다.지난 2008년 광주지검은 508억원의 탈세를 지시하고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허 전 회장을 기소 한 뒤 징역 5년에 벌금 1,000억원을 구형했다. 벌금 액수가 많은 것 같지만 1,000억원의 벌금은 법이 정한 최하한선이다. 탈세액의 2배에서 5배까지 구형할 수 있는 만큼 최고 2,500억원 이상을 구형할 수도 있었던 사안이다. 그러면서도 검찰은 이례적으로 선고유예를 요청했다. 범죄의 중대성이나 엄벌의 필요성으로 수사 당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검찰이 벌금에 대한 선고유예라는 이해하기 힘든 구형을 한 것이다.광주지법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다. 법관의 재량으로 형을 덜어주는 '작량 감경‘을 적용해 벌금을 구형량의 반으로 삭감해줬다.이어 항소심 재판부인 광주고법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을 1심의 절반으로 깍아주면서 ‘자수감경(자수한 죄인에게 형벌을 줄여주는 일)’ 논리를 폈다.법원 안팎에서는 위법사실이 곧 발각될 상황에서 자발성이 결여된 자백을 자수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항소심 재판부는 또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구치소 노역장에 유치하는 ‘환형유치금’을 하루 2억5,000만원(1심)에서 5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검찰은 상고를 하지도 않았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단군께서 이 나라를 세운이래 최고의 일당은 이렇게 탄생했고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을 세운 당시 재판장은 광주지법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황제 노역’으로 물의를 빚자 최근 사직서를 제출했다.일반인의 하루 평균 유치장 노역 일당이 5만원임을 감안할 때 허 전 회장의 일당은 일반인의 1만배에 해당한다. 계산상으로 헤아려 254억원의 벌금액을 일반인이 노역으로 탕감 받으려면 1천년하고도 몇 백년을 더 노역을 해야 하지만 허 전 회장은 재벌이라는 이유로 50일 만에 탕감 받을 수 있게 됐다. ‘이게 엿판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라고 묻고 싶은 것이 국민들의 심정이다. 사람에 따라 5만원과 5억원으로 달라지는 판결이 ‘독립된 사법권을 가지고 양심에 따라 판결’한 것이라면 이는 엿판보다도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다. 뒤늦게 허 전 회장의 화려한 법조 인맥도 이번 ‘황제 노역’과 관련해 관심을 끌고 있다.고인이 된 허 전 회장의 부친이 지원장을 지낸 법관인데다 매제는 지방검찰청의 차장검사를 지냈고 사위가 현직 판사로 재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남동생은 2000년대 법조비리의 상징으로 지목된 전.현직 판사들의 골프모임인 ‘법구회’의 스폰서로 알려졌고 여동생은 지난해 법무부 산하 교정중앙협의회 회장을 맡아 일했으며 광주지역 유력 일간지도 허 전 회장이 거느리고 있다.법원의 관행적인 판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같은 검찰과 법원, 언론 등 인맥부조리가 어떤 식으로던지 작용했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 국민들의 시각이다.‘황제 노역’에 대한 국민들이 공분이 일자 검찰은 노역형을 중단하고 벌금을 강제환수키로 하는가 하면 국세청과 세관, 광주시도 은닉재산 추적에 나서는 등 호들갑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사후약방문’ 격일지라도 이번 기회에 법관가 엿장수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길 기대한다. 엿판과 재판의 차이는 사회지도층에게 일반인의 1만배에 해당하는 특혜를 주려면 1만배에 해당하는 사회적 책임을 먼저 요구하는 데 있다. 그래야 나라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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