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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패거리정치의 종말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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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패거리정치의 종말을 원한다
  • 제주취재본부/ 양동익기자
  • 승인 2021.04.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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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일본은 참 이상한 나라다. 이 나라는 스스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지만 기묘한 정치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다. 일본자민당은 1955년에 자유당과 일본민주당이 합쳐져 창당된 일본의 보수주의 정당인데 2020년 현재 총재는 스가 요시히데, 간사장은 니카이 도시히로이다. 1955년의 창당 이후 중의원 내에서 지속적으로 여당 자리를 지켜오면서 야당인 일본사회당과 55년 체제라 불리는 양대 정당 구조를 이루고 있었으나, 이후 1993년에 자민당과 공산당을 제외한 정당들이 연립 정권을 수립하면서 자민당 중심체제가 처음으로 붕괴했다. 그러나 다음해인 1994년 다시 내각을 이룬 이후로도 2009년~2012년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제1당의 자리를 빼앗긴 적이 없으며, 계속적으로 총리를 배출해내고 있는 등 일본 국내의 정치계에서는 독보적인 정당이다.

자민당 소속 의원들은 당내의 특정 파벌에 속해있다. 이는 총리나 내각 인사의 선출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정치 구도는 좌익과 우익 모두 분열된 상태에 있었다. 전후 일본의 우익 세력은 전쟁 전의 입헌정우회나 입헌민정당의 계보를 잇는 여러 정당으로 나뉘어졌고, 이들의 통합이 여러 차례 시도되었지만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955년 10월 13일, 4년간 온건 세력 및 급진 세력으로 갈라져 있던 좌익 세력이 일본사회당에 재통합되면서 이에 위기감을 느낀 재계 및 각계 인사들이 우익 세력의 통합을 요구했다. 그리고 우익 세력들이 통합되는 계기가 마련되어 보수합동이 이뤄지고 자유민주당이 창당됐다.

자유민주당은 창당 당시인 1955년부터 파벌이 존재했다. 창당 당시부터 각 파벌은 리더의 이름을 따서 각기 이케다파, 사토파, 기시파, 고노파, 미키파 등으로 불렸고, 이것을 자민당의 5대파벌이라고 부른다. 5대 파벌은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현재 자민당의 8개 파벌 중 5개가 자민당 초기부터 존재했던 파벌이고, 최근에 새롭게 만들어진 이시바파를 제외하고는 자민당의 파벌은 성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셈이다. 

60년이 넘게 파벌 정치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이유이다. 일본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총리직을 다수당 의원이 뽑고, 일본의 선거 방식이 1993년까지 중선거구제였기 때문이다. 1993년 이후 일본이 채택한 소선거구제는 대한민국도 채택한 방식으로 하나의 선거구에 1명의 의원을 뽑는 방식이다. 그러나 중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득표수에 따라서 2명 이상의 의원을 뽑는 방식이다. 일본의 중선거구제는 인구수에 따라서 하나의 선거구에서 2~6명까지 의원을 뽑았다. 그런데 의원내각제의 특성상 전체 의석의 과반수를 넘기지 못하면 단독으로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선거구에 과반을 당선 시켜야만 한다. 이 때문에 자민당 후보 사이에도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정책을 내세워야만 표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하나의 선거구에 하나의 파벌에서 2명 이상의 후보를 내놓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후보자는 파벌을 통해서 출마해야만 했고 각 파벌은 안정적으로 의석을 나눠 가질 수 있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파벌간의 노선 차이는 더 분명해져서 하나의 정당 안에 여러 개의 정당이 존재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파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면 총리를 뽑아야 하니까 일본의 의원내각제는 다수당의 대표가 총리직을 맡게 되어 파벌은 조직 투표를 할 수밖에 없다. 총리 후보자가 국민의 지지도나 당 내 지지도와는 큰 관계가 없이 총리 후보자를 몇 개의 파벌이 밀어 주느냐에 의해 총리가 결정된다. 일본의 거대 여당인 자민당은 태평양 전쟁의 전범들은 물론, 그 이전에 메이지 유신을 이끈 삿초 동맹의 세력이 직간접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전 총리인 아베 신조는 조슈 번 세력의 후손이며, 이전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소 다로는 사쓰마 번 세력의 후손이다. 그 외에 태평양 전쟁 1급 전범이었다가 사법거래로 불기소처분을 받은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역시 조슈 번 세력의 후손이 자민당의 주요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자유당과 민주당의 합당 형태는 파벌의 다양함을 만들었다. 과거에는 이시바시 단잔이나 미키 다케오, 스즈키 젠코, 후쿠다 야스오같이 나름대로 온건한 인물도 총리로 재직했고, 심지어는 고노 담화의 그 고노 요헤이 같은 개념인도 있었다. 다만 1990년대 온건 성향의 보수본류 계열들이 대거 탈당해 신당을 차리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우익 성향의 보수계열의 총리들이 쏟아지면서 극우 계파가 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아베 신조 총리 취임 이후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아베는 극우세력을 키우며 정치세력을 유지했다.

극우 중엔 가선 우익이 유명하다. 대체로 사진처럼 트럭이나 버스를 개조한 것을 타고 다니면서 방송하거나 군가를 틀고 다니는 우익단체 야쿠자들의 지원도 받는다. 근래에는 인터넷 넷 우익들이 거리로 튀어나오는 편인데 가두 우익과는 상당히 다르다. 가두 우익이나 정통 우익들은 보통 재계나 정계의 입장을 내세우는 편이다. 하지만 넷 우익들은 인종차별 성향을 매우 강하게 드러낸다. 일본이 요새 국력이 많이 쇄하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젊은이들이 극우내지 배타적인 국뽕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언론은 정부권력에 종속된 관계를 보인다. 마치 중국이나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와 같은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2014년 8월 아사히 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과거 기사 가운데 16건을 오보로 인정하고 취소한 일은 일본 우익들이 전 방위적으로 발호하는 계기가 됐다. 우파 성향의 언론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산케이 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은 비교적 중립적인 보도를 지향하는 아사히 신문에 대하여 ‘매국의 DNA'와 같은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공격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정치인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이들 보수언론과 일본정부는 내친김에 위안부 강제 동원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 주변국 반발과 여론 악화를 의식해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를 부정하지는 못하면서도 '고노 담화를 계승하되 검증 한다'는 기괴한 논리로 흠집을 내기 시작하며 지금은 이를 완전히 뒤집고 있는 상황이다. 위안부를 '군사적 성노예'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권고한 유엔 인권위원회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 대해 철회를 공식 촉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움직임에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아베 정권이 역사를 들쑤시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민간 차원의 우경화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일본 출판가에 ‘혐한서적’ 바람이 분 것은 물론 온라인 중심으로 이뤄졌던 혐한 활동도 오프라인으로 확대됐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 대학교 석좌교수는 "요즘 일본은 1930년대 일본을 떠올리게 한다"고 꼬집었다. 일본 극우들은 메이지 유신에서부터 일제 패망 직전의 역사를 황금기라고 부르며 그리워한다. 정작 일본 경제, 정치, 국방, 외교가 안정되고 중산층이 가장 많이 늘어난 풍요로운 시기는 일본 제국 시대라기보다는 패망 후 1960년~1970년대다. 이 시기의 일본은 정치와 언론 모두 극우가 아니라 친미, 친한 성향의 중도우파가 주도하였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일본 자유민주당도 지방자치 레벨에선 사회당, 공산당과도 협력하면서 복지를 대폭 강화할 정도로 유연했으며 전반적으로 중도파들이 당을 이끌었다.

일본은 이미 부패하여 썩고 있다. 일명 '모리카케'로 불리는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과 카케 학원 스캔들, 그리고 뒤이은 2019년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 등 장기집권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히는 비리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아베 신조 집권 이후, 논란의 특정비밀보호법 입법을 시작으로 일본 언론의 자유가 점차 위축된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일본의 언론 자유지수는 2020년 기준 세계 66위권으로 추락했다. 뉴욕 타임즈도 '아베 내각과 언론의 유착이 비정상적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아베는 대책회의에서는 면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이어 세탁해서 재사용이 가능한 면 마스크를 각 주소지당 2매씩 배부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는데 발표가 나오자 일본에선 비난이 쏟아졌다. 일본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만 엔의 지원금을 일률적으로 지원한다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아베 천마스크 배포 비용이 기존의 200억 엔이 아닌 466억 엔으로 밝혀졌다. 이는 약 5천만 가구당 2장씩 1억장이므로 소요예산이 장당 200엔 꼴이 되었어야 한다는 말인데, 실제로는 장당 466엔이었다는 말이다. 마스크의 공급업체 중 공개하지 않던 마지막 업체를 공개했는데, 이곳이 창가학회와 관련되어 아베 정권의 세금 횡령을 위한 페이퍼 컴퍼니일 것이라는 정황들이 속속 발견됐다. 게다가 이런 조잡한 물건을 배포하는데 466억 엔 한화 약 5260억 원이나 들였다는 사실에 일본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일본국민은 이상하게도 움직일 수가 없다.  

일본의 정책시행은 대부분 민간에 위탁되어 진행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공무원은 승인된 정책을 민간에 위탁하고 관리 감독하는 방식이다. 그 가운데 민간 수탁기관은 집행예산의 2~30%의 수수료를 수익으로 가져간다.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만 엔의 지원금을 일률적으로 지원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러한 민간에 위탁된 회사가 정치자금과 관련된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으며 정책남발이 이어져 국가재정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현재 GDP대비 200%가 훨씬 넘는 세계에서 부채율 최고의 국가에 등극했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의 자민당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당 안에 또 다른 당의 필요성과 자민당의 역사적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정치현실에 존재하는 패거리 정치의 현실을 옹호하는 경우도 있다. 뜻을 같이 하여 정책을 공유하는 집단적 정치행위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파당을 만들어 패거리를 이루는 목적에 문제가 있음이다. 정당은 정권창출을 최고의 목적으로 해 정치행위를 한다. 그러고 정권창출의 또 다른 목적이 무엇이고 이를 지향하는 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것은 국민의 생존과 행복권의 보장이다. 일본의 자민당의 경우처럼 집단화된 권력을 세습하고 권력을 지속하기 위해 자본의 이해관계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며 생존하는 소위 계파라는 것은 정치패거리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고착화된 정치패거리의 조짐은 항상 존재한다. 소위 친문으로 대변되는 현재의 집권 세력은 영구적인 당권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친박으로 대변되던 보수 패거리 집단은 그것이 의도됐던 아니던 국민의 심판에 의해 와해됐다. 다행히 이러한 정치패거리 의식이 일본처럼 세습적인 수준까지 이르기에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경계해야 할 것은 지금의 집권여당이 친문세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것이 영구집권과 권력세습으로 이어지는 일본 자민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친박의 중심은 신군부의 민정계를 기반으로 한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신군부의 주축세력이 배제되고 이에 협조했던 세력들과 김영삼 정부의 참여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다. 또한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를 정치에 입문시켜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하였고 이를 친박으로 세력화 하였다. 현재의 친문세력은 과거 동교동계로 일컬어지는 김대중 정권에 당시 386세대가 대거 정계에 입문했는데, 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친노그룹으로 세력화해 친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이명박 정부의 친이 세력은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단순한 정치 결사체에 불과했다.

동교동계나 상도동계는 당시 일본의 계보정치를 연상케 하는 요소가 많았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 김대중 대통령이나 김영삼 대통령의 존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민주화 운동에 대한 그 분들의 공로를 생각할 때 그러한 결사체의 목적 역시 부정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민주화의 성공과 정권의 창출, 그 정부가 임기를 다하고 동교동계나 상도동계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려졌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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