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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반인권적 '백신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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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반인권적 '백신이기주의'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1.05.1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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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IT 강국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진땀을 배고 있다. 진땀을 빼는 이유 중 하나는 강대국들의 백신 독점 때문이다. 백신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다. 백신은 이미 핵무기급 파급력을 갖는다. 이를 통한 무역보복도 분명 존재한다. 백신 부족국가는 울며 겨자 먹기 식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지구인들이 바이러스 때문에 죽고 있는데, 한쪽에선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약을 만들어놓고 목숨줄을 좌지우지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 대부분의 국가가 백신 가뭄에 시달려 왔지만 미국은 자체 개발한 화이자·모더나 백신의 제조법을 독점한 가운데 지나치게 많은 백신을 비축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반면에 부작용 논란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자체 개발한 백신을 개발도상국들에 대량 지원했다. 글로벌 리더 미국 ‘백신 이기주의’가 더욱 선명하게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된 이유다.

이제라도 미국이 이런 비판을 수용해 백신 지재권을 풀기로 한 건 만시지탄이나 환영할 일이다.미국의 결단은 ‘11월 집단면역’이 목표인 우리에겐 큰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백신 수급난 해소를 위해서라도 더는 ‘이념 외교’에 얽매이지 말고 동맹 공고화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가 주도하는 다자 외교의 틀 속에서 북한 비핵화와 중국 견제 등 현안을 긴밀하게 조율해 민주주의와 인권에 기반을 둔 가치동맹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상호 신뢰가 다져져야만 백신 확보가 원활해질 수 있다는 건 불문가지다.문 대통령은 오는 21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다음 달 11일 영국 콘월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두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관심사는 한·미·일 협력이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은 지난 5일 런던에서 만난 한·일 외교부 장관이 ‘양국 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합의한 사실을 부각하며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G7 회담을 계기로 영국에서 열릴 가능성이 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3국 간 협력 증진’ 합의가 도출될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핵심 전략인 쿼드(미국·일본·인도·호주 4국 협의체) 참여 문제도 ‘백신 외교’에서 비켜갈 수 없는 문제다. 비동맹주의 맹주인 인도는 쿼드에 참여한 결과 미국산 백신 2000만 회분 지원을 따냈지만, 미국의 ‘린치핀’ 동맹이라는 한국은 아직 정부차원의 지원을 받지 못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베트남이 추가로 참여하는 ‘쿼드 플러스’ 구상까지 나온 마당이다. 그런 만큼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코로나19·기후변화 등 쿼드 분과별 협의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쿼드 플러스 참여 의사도 밝힐 필요가 있다. 안보가 핵심인 쿼드에서 우리가 원하는 백신만 얻어내려 한다면 미국과의 신뢰 회복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일부 강대국들은 올 여름 이후 코로나19 펜데믹 이전의 예전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인도는 최근 매일 36만명의 코로나 19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같은 기간 하루 평균 사망자도 30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실제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표된 것보다 몇 배 많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도 마찬가지다. 연일 확진자와 사망자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의료시설도 붕괴 수준이라 뚜렷한 대책이 없다. 이런 극과 극 상황의 중심에는 백신이 있다. 아니 백신 이기주의가 존재한다. 코로나19 펜데믹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게임체인저인 백신이 각 나라별로 심각한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다.

북미의 미국, 캐나다 그리고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백신을 통해 조금씩 코로나19의 악몽을 벗어나고 있지만 인도와 브라질 등은 백신은 커녕 제대로 된 의료장비도 구하지 못해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전 국민이 2차 접종까지 하고도 남을 정도로 백신이 넘쳐나고 있다. 그 이웃국가인 캐나다는 백신 공급 초반부터 전 국민이 다 맞을 양의 두 배를 확보해 백신 과잉구매라는 오명까지 듣고 있다.

특히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지난해 7월 백신 개발이 한창일 때, 전 세계에 공평하고 공정한 백신 보급을 촉구하는 글을 기고한 당사자이기도 해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처럼 힘있는 국가들의 백신 광란의 사재기가 백신 개발 이전보다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 인류의 보편적 이익과 지구촌 공공성 실현을 복원할 수 있는 공공재인 백신의 공평한 공급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 국가만이 백신을 통해 코로나에서 벗어날 수 없고 전 세계가 함께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공공의 적’을 대면한 위기 앞에서 분열하고 함께 하지 못한다면 인류의 미래는 절망 밖에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할 시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일성으로 미국의 ‘글로벌 리더’ 복귀를 말했다. 하지만 세계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고통을 더는 데 힘을 보태려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코로나19 백신을 독점화하는 것을 넘어 무기화하는 ‘백신 제국주의’를 글로벌 리더로 가는 길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저개발국가발(發) 변이 바이러스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부터 벗어나려면 국제적 협력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어서 깨닫기 바란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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