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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직불금을 통해 지켜낸 스위스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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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의 窓] 직불금을 통해 지켜낸 스위스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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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3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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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스위스 하면 그림 같은 풍광과 시계, 비밀금고 모 이런 것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스위스는 21세기 세계 최고의 농업강국이다.

스위스의 국토면적은 412만9039㏊로 우리나라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평야면적은 27만3000㏊로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이 5.2㏊에 그쳐 유럽에서는 최하위권이다. 평지와 구릉지 중심의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이 50㏊에 이르는 독일이나 80㏊에 달하는 영국과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국토의 31.3%가 심한 산악지역이고 빙하가 25.3%에 이르는 등 농사짓기에는 최악의 조건이다. 농가수도 약 5만2000가구에 불과해 농업강국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처럼 좁은 영토와 산지가 많은 지형적 특성, 인구대비 농지가 부족한 국가인 스위스는 다른 산업 분야와 달리 농업은 철저하게 보호무역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스위스의 농산물 시장은 유럽은 물론이고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구조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시장개방이 전 세계를 휩쓸었을 당시 스위스는 보호무역을 고수하지 못하고 시장을 개방해야 했다. 농축산물 수입이 본격화되자 스위스의 농민수가 급감했고 농토는 황폐화될 위기에 처했다.

급기야 스위스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거쳐 1996년 식량안보 강화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담은 ‘연방헌법 104조’를 탄생시켰다. 세계 유일의 식량안보와 농업보호를 다룬 헌법이다. 104조는 국민에 대한 연방정부의 기본의무로 식량생산공급, 천연자원보존, 농촌경관유지, 인구분산 등 다원적 기능을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04조 1항은 시장에서 보상하지 않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공익적 편익을 농업직불제를 통해 보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04조 2항은 ‘경자유전원칙(耕者有田原則)’, 3항은 ‘상호의무준수’ 사항을 추가해 놓았다. 이는 국가 기간산업(基幹産業)으로서 토지를 실제로 경작하는 농민들이 실천해야 할 의무와 직접 직불금 지급을 선언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동물을 보호하고 자연생태에 가까운 생산방법 장려, 농식품의 원산지표시, 과도한 농약비료 사용규제 등을 명시하고 있다.

스위스의 연방헌법은 농민들의 노력과 헌신에 대한 정당하고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공익형직불제 확대로 귀결된다. 식량안보와 경관보전을 중심으로 한 기본형 직불금과 생물다양성·경관개선·생산시스템·자원효율성 등 4가지 가산형 직불금을 두고 있다. 또 직불제 참여로 소득이 크게 감소하는 농가를 위한 전환직불금을 지급하고 있다. 농가소득 안정화를 위해 투입하는 직접지불제 예산이 28억스위스프랑(3조1100억원)으로 농가당 평균 6000만 원 정도이다. 스위스 정부는 전국 가구의 1% 남짓한 농가에 국가 전체예산의 6%를 투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3%정도다.

이런 정부의 농업보호 지원정책은 융프라우, 마터호른, 루체른 등 해발 1000m이상 산기슭. 낭떠러지에서 초지를 가꾸고 낙농업을 이어가며 농지와 경관, 지역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레만호수 북쪽에 약 30km에 걸쳐 펼쳐진 라보 포도밭은 10세기부터 조성된 곳이다. 라보 포도밭은 2007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주정부 차원에서 엄격히 관리되고 있으며 2016년부터는 살충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라보 포도 재배 농가들은 수익성은 낮다. 그렇지만 직불금을 통해 멋진 경관을 유지시키며 농업․농촌의 풍경을 보존해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스위스 농민들은 국토 보전의 수호자라는 인식과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공급하고 있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비록 농경지가 부족하고 척박하지만 식량 자급률은 약 70%이상에 이른다. 감자, 채소류, 돼지고기와 소고기 등 육류, 유가공품은 국내산으로 자급자족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보듯 선진국들은 지속 가능한 농업, 농업의 공익적 다원적 기능을 조명하면서 농민에게 과감한 보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농업활동이 농촌지역의 경관․문화․역사를 보전하고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정책지원에 집중할 때다. 미래세대에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전수하고 의무를 다하는 농민들에게 소득안정을 보장해주는 더 강력한 공익형직불금 지급이 필요한 이유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문제열 국립한경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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