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대대통령선거에서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를 중심으로 선거의 전략·전술에서 괴히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선거Slogan은 어떤 관심과 흥미롭고 호기심으로 국민들께 다가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제1공화국 초대 대통령선거는 국회간접선거로 선거구호가 없었으며, 제2대는 52년 5월 15일 실시되었는데 대통령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소위 발췌개헌을 단행, 자유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를 이에 맞선 민주당은 “우리의 주장과 정견” 이라는 슬로건을 내 세웠으나 다소생소하고 추상적으로 대중의 절박한 요구나 불만해소에는 미치지 못한듯하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수는 2052만7000여 명이었고 1인당 GNP는 67달러이었다. 제3대 대선은 56년 5월 15일 사사오입개헌을 격렬하게 반대한 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 새 사람 뽑아 새 살림하자” 는 전투적 구호를 내 놓았고, 여당은 “구관이 명관이다. 갈아봤자 더 못 산다” 로 응수했으며 정당의 후보자 대결이 처음으로 펼쳐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신익희 후보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혁신과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제창한 진보당은 “이번에도 못 바꾸면 4년 다시 더 못 산다”를 외친 결과 30%의 득표율을 획득했다.
60년 3월 15일 제4대 대선전에서 여당은 “트집마라 건설이다”를 야당은 “죽나 사나 결판내자” “썩은 정치 몰아내자” 로 외쳤으나 후보자등록마감일 2틀 후 조병옥 후보가 「워싱턴 월터리드」육군병원에서 돌연사로 이승만이 단독 후보가 되어 선거구호는 없었다. 이어서 3‥15부정선거로 대통령의 하야에 따라 60년 8월 12일 의원내각제개헌으로 제2공화국 초대 대통령은 국회간접선거로 윤보선이 당선되었지만 5·16 군사혁명으로 장면정부는 붕괴되고 63년 10월 15일 2년 7개월의 군정마감으로 제3공화국 대통령직선제 개헌에 따라 민주공화당에서는 박정희 후보가 민주당은 윤보선이 지명되었다.
“새 일꾼에 한 표 주어 황소같이 부려보자. 혁명과업완수와 조국근대화”를 야당은 “군정으로 병든 나라 민정으로 바로 잡자.”로 대응했으며, 양당의 선거슬로건은 이념 논쟁에서 정책대결현상으로 변화해 가는 조짐을 보였다. 67년 5월 3일 제6대 대선에서 여당은 “황소 힘이 제일이다. 틀림없다 공화당, 박 대통령 다시 뽑아 경제건설 계속하자. 중단하면 후퇴하고 전진하면 자립한다” 로 재선을 호소했으며, 야당의 윤보선후보는 “빈익빈이 근대화냐 썩은 정치뿌리 뽑자, 지난 농사 망친황소 올봄에는 갈아보자”로 격하게 응수했으나 연속해서 패배했으며, 당시 투표성향은 표의 남북현상이 깨지고 표의 동서현상이 표출되었다. 71년 4월 27일 제7대 대선에서 여당은 3선 개헌으로 박정희 후보가 추대되고 야당은 40대 기수론 으로 맞선 김대중 후보와 팽팽한 선거전에서 여당은 “혼란 없는 안정 속에 중단 없는 전진,” 을 이에 맞선 김대중 후보는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참겠다. 갈아 치자, 논도 갈고 밭도 갈고 대통령도 갈아보자” 로 응수했으며, “선거는 명랑하게, 투표는 자유롭게, 관리는 공정하게 선거포스터가 내 걸리기도 했으나 야당은 패배하였다. 72년 12월 23일 제8대 대선은 유신헌법에 따라 토론 없는 무기명간접선거방식의 투표로 박정희 후보가 단독 출마해 유신체제 1기가 출범됐다. 이어서 제4공화국 9대 대선 또한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고, 제10대는 79년 10월 26일 대통령의 서거로 그해 12월 6일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과 곽상훈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이 출마했으나 선거구호는 없었고 최규하가 당선되었다.
제11대선은 최규하 대통령이 재임 8개월 만에 물러나고, 12·12군사반란,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정치적 격변기 속에 80년 8월 27일 역시 체육관선거에서 전두환이 당선되고, 81년 2월 25일 제12대 대선은 종전 통일주최국민회의가 폐지되고 대통령선거인단에 따른 간선제로 전두환 후보는 “창조· 개혁 ·발전의 새 영도자” “결단력과 통찰력을 지닌 새 시대 지도자”를 유치송 후보는 “지난해의 그 놀라운 충격과 시련(‥‥)”을 내세웠고 일부선거운동을 허용했으나 전두환이 당선됐다. 87년 12월 16일 제5공화국 제13대 대선은 6월 민주항쟁으로 전두환을 굴복시킨 후 16년 만에 직선제개헌에 의해 노태우 후보는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 이제는 안정입니다.”를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야당의 김영삼은 “군정종식 김영삼, 확실하게 밀어주자 대통령은 김영삼” 김대중은 “평민은 평민당 대중은 김대중, 김대중을 당선시켜 군사독재 끝장내자”를 김종필은 “보릿고개를 몰아낸 근대화의 주역”을 내세웠으나 심하게 지역감정이 표출된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제6공화국 14대 대선은 92년 12월 18일 실시되었다. 여당의 김영삼 후보는 “한국병치유와 신한국 창조”를 야당인 민주당 김대중은 “정권교체 이제는 바꿔보자”를 통일민주당 정주영은 “경제대통령 양김 청산 구 정치 대 새 정치”를 97년 12월 18일 제15대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이회창을 내 세워 “깨끗한 정치와 튼튼한 경제”를 DJT연대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은 “준비된 대통령, 경제 대통령”을 국민신당 이인재는 “3김 청산을 통한 세대교체를 주장했으나 김대중이 당선되었다. 이어서 3김 시대가 끝난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야당인 이회창은 “나라다운 나라를”을 내 세웠으나 병풍사건으로 패하였다. 제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국민 성공시대”를 여당의 정동영은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무소속 이회창은“또 잘못 찍었다고 후회하십니까? 이번에는 이회창입니다” 등 격돌했으나 10년 만에 보수파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제18대 대선에서 여당의 박근혜는 “복지확충과 대기업규제가 필요한 경제 민주화”를 야당의 문재인은“사람이 먼저다”를 내 놨으나 박근혜 후보가 당선 됐고, 제19대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대통령궐위로 인한 재선거에서 박근혜 최순실로 인한 적폐청산 트레임이 너무 강했는데 문재인은 “위대한 국민의 위대한 승리”를 홍준표는“지키겠습니다. 자유대한민국을” 심상정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조원진 후보께는“뛰어봤자 벼룩”이다. 는 별칭이 부여되기도 했다. 제20대 대선에서 여당의 이재명은 “ 이재명은 합니다.”에서 “나를 위해 이재명”으로, 또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대통령”을 야당인 윤석열은 “정의 · 공정 · 상식을”에서 “국민이 키운 윤석열, 내일은 바꾸는 대통령”으로 슬로건을 내걸었으며, 역대 대선에서 가장 울림이 컸던 슬로건으로는 “배고파 못살겠다.” 에 맛서 “구관이 명관이다 갈아봤자 더 못 산다.”가 선동적 감성적이라는 평가가 있었고, 현대정치사 최고의 슬로건으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오바마는 “Yes, We Can” 영국의 토니블레어는 “New Labour, New Britain”또 마가렛 대처는“Labour isn’t working” 빌 클린턴은 “ It’s the economy stupid !” 등이 기념비적인 선거구호로 회자되기도 한다.
[전국매일신문 기고] 강재수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