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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문해력의 안과 밖-짐작(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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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문해력의 안과 밖-짐작(下)
  • 전국매일신문
  • 승인 2023.01.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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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옛 뿔잔이 빚은 예법, 두 손으로 공손히 술 받다

술병 들어 잔에 따르는, 짐작(斟酌·술을 따름) 즉 술 치는 것이 원래 경건함이 바닥에 깔린 조상에의 의례(儀禮)임을 문자의 속뜻은 보여준다. 조심해 술 따르듯 지레 짐작을 피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술 따르는 것’이 그렇게 엄정한 절차가 된 것에는 잔(盞) 즉 술잔의 시원(始原·첫 역사)도 관련이 있다. 술통 추(酋) 또한 그렇다.

‘존경하다’의 존(尊)은 어원으로 보면 두 손으로 (공손히) 술통을 받드는 그림이다. 추장(酋長) 즉 두목을 가리키는 酋는 갑골문에서 술통 그림이다. 술통을 두 손으로 받드는 공(廾)자 모양 그림이 나중에 손의 의미인 촌(寸)으로 바뀌었다. 도안(디자인)의 변천이다. 

술통처럼 두목도 잘 받들어야, 눈총 맞아 사표 내고도 해고당하는 불상사 없이, 살 수 있다. 짐작과 존경 사이의 촌수(寸數)다. 인문학의 실용성 아니겠는가. 하여간 공부는 필요하다. 

어원과 의미(들) 사이의 ‘밀당’(밀고 당기기)은 차라리 시(詩)다. 그 상징성의 승화(昇華)는 언어가 문명의 도구이면서 문명 그 자체이고, 그 문명을 앞에서 끌거나(牽引 견인) 뒤에서 밀어온(推動 추동) ‘힘’임을 또렷이 보인다. 그 역사가 문자학이다.

술병(酋)이나 주전자(酒煎子)처럼 술잔에도 비슷한 ‘출생의 비밀’이 있다. 토기(土器)로 진화하기 전에 짐승의 뿔(角 각)로 잔을 삼았던가 보다. 角처럼 치(觶) 고(觚) 굉(觥) 곡(觳) 상(觴) 등이 뿔로 만든 이러저러한 (용도나 경우에 쓰는) 술잔이었다. 

잘라낸 짐승 뿔의 속을 다듬어 술을 채울 수 있게 만든 뿔잔은 (받침 없으면) 바닥에 쉬 놓을 수 없다. 귀한 술 다 쏟아진다. 두 손으로 얌전히 받아야 하는 것이다. 공손하게 술(잔) 받는 예법의 시초였으리.

비어있는 술잔에 술을 따르는, 술(잔) 치는 것이 혹 우리말 잔치의 ‘먼 조상’ 아니었을까 하는 주장도 있다. ‘잔 치(觶)’가 슬며시 파티(party)의 뜻 잔치로 변신했을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워낙 어원의 연관성이 커서 이런 말잔치는 여러 생각을 부른다. 재미도 있다.

토사구팽(兎死狗烹)일까? 아직 신선한 토끼가 지천인데 개를 삶아 먹으면, 황금알 낳는 닭을 잡는 꼴이다. 왕따 신세로 ‘팽(烹)’당했던 겨레 문화의 원형(原形), 한자어를 복원해야 하는 것이다. 한자어는 외래어처럼 한자로 된 한국어다.     

황하(黃河) 유역에서 여러 족속과 어울려 한자(갑골문) 등 대륙의 문명을 빚던 겨레 조상(祖上)을 잊으니, 역사가 내내 쪼그라졌던 것이다.

3천5백 년 전의 대륙에 한국과 중국의 국경이 있었던가? 습(習) 선생 같은 족속(族屬)이 당시에도 그 땅의 주류(主流)였던가. 이제 되돌아볼 시점이다.

어떤가. 옛 사람들 원시(原始)의 삶이 (지금 우리 관점에서) 미개(未開)했다고 손가락질할 생각이나 배짱이 아직 남아있는가? 우리는 다음 사람들에게 (아들 손자들 생각도 안했던) ‘미개인’이란 따가운 비난을 피할 수 있을까?

우주의 영원(永遠)과 무한(無限)의 시공(時空)을 알아야 할 때다.

술 주전자 잔 등의 삶 곳곳에 스민 하늘의 기운, 인내천(人乃天)의 겨레는 그 마음을 잠시 잊었으되 금시 안다. 

우리는, 도둑질로 도구 삼는 왜(倭)나 구미(歐美) 나라들처럼 결코 만만할 수 없다. 개벽의 새 잔에 새삼 ‘생명’을 채우는 까닭이다. 

새해 첫 새벽 설날의 겸허(謙虛)한 짐작이고 삽상(颯爽)한 명상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어철학자·시민사회신문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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