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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영구평화 상호조약 체결과 대일외교의 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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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의 시선] 영구평화 상호조약 체결과 대일외교의 방점
  •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 승인 2023.02.01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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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인류평화와 공영을 지향하는 외교통상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천년 이상을 이웃한 나라는 매우 드물다. 국가권력이 탄생한 고대부터 수많은 나라들이 명멸하였고 사실상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논하기에는 우리나라와 비견되는 국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4세기 무렵 출현한 일본의 야마토 정권에서 시작된 일본의 경우가 그나마 비교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지정학상의 비교적 큰 영토를 갖고 있는 섬나라로 인도양의 스리랑카, 남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영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반도를 기반으로 하는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그리스, 이탈리아 정도일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갖는 역사의 특이성에는 이유가 있다. 광대한 영토를 경영했던 그리스와 로마, 페르시아와 몽골, 돌궐과 투르크의 후예들이 현대에 와서 그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자신들만의 역사라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그러한 제국들은 이미 세계주의를 표방하였고 다양한 문화의 통합을 기반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몽골제국의 경우는 13세기에 출현하여 150년에 불과한 짧은 역사였고 대부분 현존하는 국가들이 러시아의 경우처럼 표트르대제 시기인 18세기이후 민족국가의 정체성이 성립되어 크고 작은 국가연방을 형성한 것을 감안하면 1,500 년 이상의 민족국가의 정통성을 유지해온 나라는 특별한 경우에 속하는 셈이다. 중국이나 인도가 방대한 인구와 국토를 경영하고 있으나 현재의 국가형태를 갖춘 것은 불과 100년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 지배를 계기로 국가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중국대륙은 이민족이 지배한 청나라 이전까지도 그 정체성을 규명하기란 매우 어렵다. 동남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살펴보면 그 많은 지정학적 독립성과 섬나라로 구성되어 있으나 다민족 문화를 가진 연합국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도 일본의 경우와는 다르다. 또한 아메리카대륙이나 호주대륙은 열강의 확장과 이주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서구열강에 의한 제국주의는 현재의 중동과 아프리카 국경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시작점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한일관계 역시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다. 수천 년에 걸친 역사적 상호관계의 지속성은 참으로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자신만의 문화를 영위하게 하였다. 인류 전체에 대한 DNA 분석 결과에 의하면 심지어 아프리카나 태평양 제도, 남아프리카,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대륙의 끝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유전적 형질이 발견되기도 한다. 동양적 사고인 혈연 측면에서 보더라도 한일 간 국민사이에서는 혈연적 유사성이 더욱 깊다. 두세 가지로 나뉘는 몽골계 혈연관계는 중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동남아와 인도 지역으로 이어지는 혈연적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민족은 북방계로 분류가 되고 있지만 일본민족은 사할린으로부터 유입되어 주류를 이루어 한반도와는 분명하게 구분되고 있다. 그러나 전체에 30%에 이르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혈족은 백제에서 비롯하여 그 이전부터 이어진 한반도 이주민이 일본의 고대문명을 만들기도 하였다.

근대사만을 보면 일제의 치욕은 우리의 트라우마다. 이러한 트라우마는 임진왜란의 오래된 역사를 끌어내기도 하고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왜구의 노략질을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한다. 역사사실에 근거한 이러한 역사적 감정은 일본에 대한 우리의 냉정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이는 그들의 지나친 억지는 충분한 이해가 필요한 문제이다. 그것은 그들의 억지스러움만큼이나 스스로 감추고 싶어 하는 역사적 열등감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믿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한 국가를 평가함에 있어서는 역사를 기반으로 한 현재의 정치구조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6세기 아스카문병을 꽃피웠지만 12세기 막부정치가 출현한 이후 1868년 메이지유신까지 군부에 의해 지배되었다. 상업적 계급사회를 이루고 무력을 기반으로 500년 이상을 유지하였다. 자본주의 열강의 외압에서 시작된 메이지유신 이후 왕정복구 신정부가 등장하였고 신정부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도쿠가와 바쿠후(막부)에 적대적이었던 젊은 무사들로서 주로 내정문제와 서구 열강의 침략 위협에 자극을 받았다. 이들은 '부국강병'이라는 표어 아래 서구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민족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이후 새롭게 등장한 도조 히데키의 황도파의 등장과 태평양 전쟁, 전쟁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정치세력화에 성공한 일본자민당의 집권파벌 등 오래된 무력에 의해 이루어진 정권의 욕망은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 일본이 권위주의 정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다. 이렇듯 일본은 권위주의와 자본주의가 민주주의 형식적 기반을 명분으로 존재하는 국가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서구유럽의 대부분의 민주국가나 미국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은 그러한 명분을 내실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고 우리나라는 그 선도에서 나가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시대는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변한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과학기술 발전과 더불어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 변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가치 실현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한 가치로 일반화된 것이 인간의 역사에서 최근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에는 태초의 인류 개개인이 생각했던 그리고 개인에게 한정되어야만 했던 소망이 집단지성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실현은 더디지만 발전하여가고 있다. 같은 차원에서 국가의 외교가 국가 이익에 기반 한 것이라 하지만 인류공영이란 보편적 가치실현은 항상 그것에 우선하는 가치이다. 그리고 인류는 그 실현을 위해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에는 우리의 진일보한 가치실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포용이다. 제2의 표트르대제가 되겠다며 낡은 이념의 도구가 지금까지 통용되는 민족주의가 기반이 되어 국가권력을 장악한 푸틴의 경우처럼 일본의 권위주의정권 역시 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IT의 발전은 가짜뉴스를 만들어 대중을 호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집단지성을 실현시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이것은 정부가 아닌 국민과 국민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방식을 제공한 것이다. 일반적인 외교행위가 정부 간 관계이지만 미래사회는 상대방의 국민을 설득하고 명분을 갖는 직접적인 행위도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일본 국민을 상대로 직접적인 설득이 가능한 방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미래의 한일관계를 위한 적극적인 행위가 된다. 중국과 달리 자유와 인권을 명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한 국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과연 일본 국민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수백 년 동안 무력을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지배받았던 일본 국민에게 주어진 딜레마는 평화에 대한 확신이다. 지진과 화산, 태풍 등의 자연 재해와 더불어 반복되어온 전쟁의 공포는 일본국민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도 일본정부는 전쟁의 공포를 수단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팽창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국방력 강화를 경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영구평화 상호불가침 조약은 한일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에는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가능성에 있으며 일본의 정치권은 미중의 대결적 구도를 이용하여 군사력 증강을 꽤하려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일 간의 군사적 긴장은 필요 이상의 군비 경쟁을 촉발하는 것이고 이는 일본 권위주의 권력의 명분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영구평화 상호불가침 조약은 독도와 대마도, 그리고 해양영토의 관할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현실적인 이해의 문제를 매듭짓는 당면한 문제이고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실효적 접근이다. 양국 사이의 영구평화를 선언한다는 것은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는 실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실현을 명분으로 하는 양 국의 국민적 합의를 원천적으로 이끌어내는 구체적 대안이 된다. 결국 역사문제해결에 대한 복잡한 정치적 문제는 괴리된 국민적 정서에서 기인된 것들이고 보면 하나의 통합된 합의는 이러한 역사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사실 국경의 개념이 남북한을 가르는 휴전선처럼 엄격한 구분이 이루진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그렇지 못한 이유로 인접한 국가 간 분쟁이 민족문제와 더불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일본과 한국은 바다를 기준으로 영토를 구분하고 있으며 민족적 정체성이 서로가 단일한 이유로 한일 간의 문제는 역사문제를 제외하면 비교적 분쟁의 여지가 단순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라는 공통된 국가권력의 명분은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현 시점에서 동북아의 평화를 스스로 확보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한일 관계의 진일보한 발전적 관계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영토의 확장은 다른 민족과의 융합을 의미한다.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지난 역사에서도 그 실패를 증명하였으며 그나마 위대한 역사로 남은 제국의 위대함은 다양성과 세계주의의 가치를 구현하였음에 있다. 오늘날 영토의 개념은 모호해지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경계의 개념은 점점 사라져갈 것이다. 시간이 되면 한반도의 통일은 이루어질 것이고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우리의 도전도 시작될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하늘과 바다를 관통하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타산지석이 되어야 하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외교적 역량은 인류공영을 위한 상호주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한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의식이 열려 있어야 하며 사회기반여건이 실질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일관계를 바라보아야 하고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전국매일신문] 양동익 제주취재본부장
waterwrap@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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