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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0대 경제대국에 ‘K컬처’ 문화강국, 유리천장지수 11년째 OECD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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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0대 경제대국에 ‘K컬처’ 문화강국, 유리천장지수 11년째 OECD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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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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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업무환경은 여전히 열악(劣惡)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가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날’을 기념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여성 지위를 평가하여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작년에 이어 또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 3월 6일(현지 시각) ‘이코노미스트’가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이틀 앞두고 발표한 이 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29개국 가운데 29위에 머물렀다. 지수를 평가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한국은 줄곧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올해로 11년째 연속 최하위다. 통상규모 세계 7위의 경제 대국이자 ‘K컬처’로 문화강국 반열에 오른 한국의 부끄러운 현주소이자 낯 뜨거운 자화상이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 루트커스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시작됐다. 당시 대규모 시위를 일으킨 여성 노동자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고 노동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하면서 자유를 위한 시위를 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계 여성의 날이 지정된 것이다. 유엔(UN)에서 1975년을 ‘세계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1977년 3월 8일을 특정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화함으로써 기념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1985년 3월 8일 여성계에서 제1회 ‘한국여성대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매해 한국여성단체연합 주도로 개최되었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전국적인 행사로 자리 잡았으며, 「양성평등기본법」이 개정된 2018년부터는 법정기념일로 지정해 ‘여성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1978년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한 ‘유리 천장(Glass ceiling)’이란 표현에는, 여성이 겪는 취업과 승진 차별이라는 사전적 의미 의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유리 천장’이라는 강력한 ‘상징(象徵)’의 등장으로 비로소 알고는 있었지만,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막막한 차별의 실체를 ‘물증’처럼 직관적으로 인식하게 됐고 여성운동의 새로운 ‘전선(戰線)을 형성하면서 ‘유리 천장’을 허물기 위한 숱한 저항과 파열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젠더(Gender │ 사회적인 性別) 평등’의 사회적 이슈로 급 부상했다. 1978년 뉴욕 맨해튼 루즈벨트 호텔에서 열린 ‘직장 여성 박람회(Women at Work Exposition)’에서, 토론회 패널로 참가한 당시 만 31세의 뉴욕의 전화회사(현 Verizon New York) 인사과 직원인 ‘매릴린 로든(Marylin T. Loden)’이 가해자인 남성 젠더(Gender) 사회 때문이 아니라 피해자인 여성들, 특히 엄연히 실재하는 ‘천장’을 보지 못하는 나머지 패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처음 사용했다는 ‘유리 천장’은 미국인이 가장 많이 애용한다는 ‘메리암-웹스터(Merriam-Webster) 칼리지(College) 사전’ 1993년 제10판에서 “여성 또는 소수자가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것을 가로막는 위계 상의 보이지 않는 장벽(Intangible barrier)”이라 정의했다.

‘유리천장지수’는 나라별로 남녀 고등교육 격차,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 성별 임금 격차, 고위직 여성 비율, 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 의회 내 여성 비율, 경영대학원 신청자 수, 보육 비용, 남녀 육아휴직 비율 등 10개 세부 지표를 종합해 평가한다. 한국은 특히 성별 임금 격차에서 참담한 수준이다. 2022년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31.1%로 OECD 평균인 12%의 2.6배에 달해 최하위인 29위를 차지한다. 기업 이사회 여성 비율은 12.8%로 평균인 30.1%의 절반에도 못 미치며, 의회 내의 여성 비율은 18.6%로 평균인 33.8%의 절반을 간신히 넘는 데 그쳤다. 여성의 노동 참여율도 남성보다 18.1%포인트로 낮아 28위에 머물렀다. 이코노미스트는 “여전히 가족과 직업(경력) 중 택일해야 하는 일본과 한국이 최하위 두 자리(28·29위)를 채웠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실질적 성평등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하지만 여러 기관에서 발표하는 성평등 관련 순위에서 한국이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에 비해 여전히 하위에 자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코노미스트가 평가한 ‘유리천장지수’에서 상위권은 북유럽 국가들이 휩쓸었다. 아이슬란드가 지난해 2위에서 1위로 뛰어올랐고, 스웨덴(2위)과 핀란드(3위), 노르웨이(4위)가 뒤를 이었다. 포르투갈(5위)과 프랑스(6위), 벨기에(7위), 뉴질랜드(8위), 덴마크(9위), 슬로바키아(10위)가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서 스페인(11위), 폴란드(12위), 오스트리아(13위), 캐나다(14위), 호주(15위), 이탈리아(16위), 영국(17위), 아일랜드(18위), 미국(19위), 네덜란드(20위), 체코(21위), 독일(22위), 헝가리(23위), 그리스(24위), 이스라엘(25위) 등이 뒤를 이었다. 스위스(26위), 튀르키예(27위), 일본(28위)은 수년째 같은 순위에 머물며 한국(29위)과 함께 최하위권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7월 13일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성(性) 격차 지수(GGI │ Gender Gap Index)’에서도 한국은 0.689점으로 조사 대상 146개국 중 99위를 기록해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WEF는 ▷경제활동 참여 및 기회, ▷교육 수준, ▷건강 및 생존, ▷정치적 권한 등을 종합해 각국의 성별 격차를 0~1 사이의 점수로 나타내고 있다. 각 나라의 경제·사회적 수준은 반영하지 않고, 오직 국가 내에서 남녀 격차만을 따진다. 최종 점수가 0에 가까울수록 성(性) 격차가 크고, 1에 가까울수록 평등하다고 본다. 이는 2021년 0.687점, 102위에 비해 지난해보다 0.002점, 3계단 상승했다. 그 전년도 조사 대상국은 156개국으로, 지난해보다 10개국 더 많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성(性) 격차가 크게 개선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동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분류된 20개 국가 중에서도 한국의 점수는 12위로 중위권에 불과하다. 일본·중국은 각각 102위, 116위로 한국보다 성 불평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필리핀(19위), 태국(79위), 인도네시아(92위) 등은 한국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양성평등 관련 사회제도지수(SIGI) 또한 한국의 성(性)평등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 OECD는 ▷가족 내 차별, ▷신체적 자유, ▷생산자원에 대한 접근성, ▷시민적 자유 등을 종합해 SIGI를 산출한 뒤, 점수에 따라 ▷매우 낮은 차별, ▷낮은 차별, ▷중간 수준의 차별, ▷높은 차별, ▷매우 높은 차별 국가의 다섯 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가장 최근 발표된 2019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 대상 90개국 중 51위로 중하위권에 머물러 ‘낮은 차별’의 평가만 받았다. 유엔개발계획(UNDP)도 건강, 교육, 복지 수준 등을 종합한 인간개발지수(HDI)를 발표하고 있는데, 여성의 인간개발지수를 남성의 것으로 나눈 값인 성(性) 개발 지수(Gender Development Index)의 경우 한국은 2019년 0.936(1에 가까울수록 性 평등)을 기록했다. 이는 인간개발지수 최상위권인 62개 국가 중 57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2023년 세계 여성의 날 조직위원회(IWD2023)가 발표한 제115회 ‘세계 여성의 날’ 주제는 “Embrace equity(공정을 포용하라)”이다. 조직위원회는 “편견과 고정관념, 차별이 없는 세상, 다양하고 공정하며 포용적인 세상, 다름이 존중되고 축하받는 성 평등한 세상을 상상해 보라”며 “여성의 성취를 기념하고 차별에 대한 인식을 높이며 성평등을 위해 행동하라”라고 촉구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평등(Equality)’의 개념은 오랫동안 ‘기회의 평등’으로 해석되면서, 모든 개개인에게 동일(同一)한 기회와 자원을 제공하면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진리처럼 지배해왔다. 하지만 이는 기대와는 달리 허구에 그쳤을 뿐이다. 직장생활이란 트랙 경기에서 남녀가 똑같은 출발선에 선다 해도, 여성 앞에는 출산·육아·가사노동 부담 등 많은 허들이 가로놓여 있다. 다수의 남성이 직선 주로를 전력 질주하는 동안 수많은 여성은 허들에 부딪히고 막히며 경력단절을 겪게 된다. ‘공정을 포용하라’라는 주제의 진정한 의미는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한 기회와 자원의 ‘공정한’ 배분만이 진정한 ‘평등’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준엄한 명령의 메시지다. 결론적으로 ‘평등(Equality)’은 모든 개인이 같은 자원과 기회를 주는 것인데 반해 ‘공정(Equity)’은 개인이 각자 다른 상황에 있음을 인지하고 그에 맞는 자원과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삼성과 LG그룹에서 여성 사장이 나왔지만, 기업들 ‘유리 천장’은 여전히 단단하다. 이번 인사 전까지 5대 그룹에 여성 사장은 없었다. 기업분석 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반기보고서 기준 1,000대 기업 대표이사 중 비(非) 오너(Owner) 가(家) 여성은 7명으로 0.5%에 불과했다. 100대 기업 내 여성 임원 비중도 5.6%에 그치고 있음을 감안하여 정부는 ‘유리 천장’ 파괴를 선도해야 한다. 특히 성평등 가치를 왜곡하고, 이를 정치적 이해에 이용하는 것은 안 된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고,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성평등·재생산권 표현을 삭제하고, 임신 중지 의약품 허가 절차를 지연시킨 것 등은 성(性)평등에 결단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 여성이 사회의 주류 영역에 참여하여 의사 결정권을 획득하는 형태로 사회 체계가 바뀌는 현상)’ 전략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시대적 조류와 세계사적 흐름을 거슬러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수십 년 동안 일궈온 성평등·여성 인권의 성과를 퇴행시켜선 안 된다.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유리천장지수’는 정부가 부인하는 ‘구조적 성차별’을 숫자로 입증(立證)하고 있음을 명찰해야 한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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