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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30] 당선자들은 팽목항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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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30] 당선자들은 팽목항을 기억하라
  •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 승인 2016.04.13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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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길원 大記者 세상읽기]

국회의원 의석수가 300석이니 의원 한 명당 희생자 1명만 기억하라. 당선자들의 첫 발걸음이 슬픔에 겨운 국민들의 씻김굿이 되었으면 좋겠다. -

 

2년 전 그날도 세상은 오늘 같았다. 가로수 벚나무의 꽃들이 진 자리에는 파릇 파릇 새싹이 돋았고 아지랑이는 꼬리를 흔들며 하늘로 날았다. 풀잎은 푸르렀고 봄날의 햇살은 느렸으나 따스했다.

대한민국을 온통 슬픔에 빠뜨린 2014년 4월 16일도 그랬다. 세상은 어제도 오늘과 같았고 내일도 오늘과 다를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믿었다.

정오 무렵 ‘진도 앞바다에 여객선이 침몰했으나 전원구조 됐다’는 뉴스가 전파를 탔으나 일상의 뉴스 이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2개월전 경주 리조트 붕괴사고로 부산 외대생 10명이 희생된 참사를 겪은 국민들은 다시금 화들짝 놀랐으나 이어진 ‘전원구조’소식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전원구조’는 오보였고 승객 대부분이 침몰된 여객선 안에 갇혀 있다는 속보와 함께 대한민국의 ‘세월호 침몰’사건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늘은 어제와 같을 수 없었다.

304명이 희생됐다.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가던, 봄꽃보다 더 싱그러운 남녀 고등학생들이었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자리에 있으라’는 선내방송을 착실하게 따른 결과였다.

모두가 울었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언제까지나 그들을 기억하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우리는 잊지 않고 있는가.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사람들로 가득 찼던 4.13 총선이 막을 내렸다. 후보들은 거리에서 춤을 추고, 단골메뉴처럼 어린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고, 거리에서 간식을 사먹으며 서민 흉내를 냈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저급하고 유치했다. 집권당은 공천과정에서부터 진박이니, 비박이니, 옥쇄파동이니 하며 왕조시대의 필름을 돌렸다. 야당은 둘로 나뉘어 골육상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선거는 여전했다. 표심은 정책과 인물로 나뉘기 보다는 내 고장으로 나뉘었다. 여당의 본거지인 대구. 경북에서는 대통령만 외치면 됐고, 야당의 본거지인 호남에서는 비록 둘로 쪼개졌으나 말을 갈아타거나 대통령을 반대하면 됐다. 

아무튼 향후 4년은 당신네들의 세상이 됐다. 마음에도 없는 일로 노래하고 춤추고 악수하고 고생한 그대들의 세상이 됐다. 어린아이를 안고 사진 찍을 필요도 없고, 시장통에 나가 튀김을 사먹지 않아도 된다.

국민들은 선거기간인 한 달의 축제가 끝나고 4년의 고통이 시작됐지만 그대들은 한 달의 고생이 끝나고 4년의 축제가 시작됐다.

이제 그대들은 축제에 앞서 각자의 속한 입장에 따라 박정희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 또는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를 찾을 것이다. 헌화하고 참배할 것이다.

어떠한 의지를 다질는지는 모르지만 국민들에게 전하는 말은 신문이나 TV로 비추는 참배모습이면 족하지 않을까 싶다. 가급적 편 가르지 말았으면 하지만 원래 정치란 편가르기가 아니던가 싶어 그러려니 하련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의 묘소에 가도 좋고 편가르기를 할 바에야 안가면 더욱 좋다.

대신 진도에 가라. 팽목항에 가서 파도소리에 실려 오는 슬픈 영혼의 흐느낌을 들어보라. 그 울음소리를 그대들이 위로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주권을 가진 그들의 생명을 지켜줬어야 한다. 지켜주지 못했으면 반성하고 다시는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반성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가. 혹시 말로만 잊지 않겠다고 하면서 정략적 판단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 볼 일이다.

세월호 참사에 따른 유가족의 울부짖음을, 국민들의 기억을 정략적 계산기에 넣고 셈하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다’며 망각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잊지 말라고 강요해야 한다. 마침 진도에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그날을 기억하자는 의미를 담은 ‘기억의 숲’과 ‘기억의 벽’이 최근 조성됐다. 부끄럽게도 오드리햅번 가족를 위시한 외국 단체의 제안과 국민들의 성원으로 조성된 사업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세월호는 잊으면 다시 반드시 되풀이 될 수 있는 역사다. 당선자들이 편을 갈라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기에 앞서 국민들의 묘소가 되어버린 진도 팽목항을 먼저 찾아야 할 이유이다.

국회의원 의석수가 300석이니 의원 한 명당 희생자 1명만 기억하라.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믿는다면. 국회의원으로서 당선자들의 첫 발걸음이 슬픔에 겨운 국민들의 씻김굿이 되었으면 좋겠다.  

 

[전국매일신문] 서길원 호남취재본부장
sgw@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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