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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구독’과 구독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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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구독’과 구독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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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6.0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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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렌털 서비스’와 ‘구독경제’의 차이점을 설명하시오.

생활 속 경제와 관련된 말이나 개념들은 세상 변화와 함께 늘 변한다. 그 언어를 결정하는 문물(文物)이 변하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말이 새롭게 등장하고 또는 사그라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돈’과 관계되는 중요한 이치인 것이다. 그 원리 또는 작동(作動)의 모습을 아는 것이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말 따로 세상(흐름) 따로 가다보면 사람도 사회도 차차 총명을 잃기 쉽다.

‘구독경제’란 말이 유행한다.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여러 영리한 방법을 고안하고, 이를 알리는 요즘 마케팅의 아이디어 중 하나겠다. 용어해설(사전)의 설명들을 참고해 그 대강의 뜻을 살펴보자.

<고객이 일정한 금액을 내면 물건이나 용역(用役 서비스)을 공급자가 주기적으로 제공하는 유통상품이다. 의류 등 생필품, 차량 등을 받아 (소유하지 않고) 쓸 수 있는 서비스다.>

아하, 가전제품 등 고가(高價)의 물건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렌털(rental) 서비스의 제목을(만) 저렇게 (새롭게) 붙인 거구나. 소비자의 눈에 띄어야 살아남는 마케팅 세상의 치열함을 알겠다. 앞으로는 또 어떤 (기발한) 말이 나올까?

저 말 ‘구독’은 언론가(街)에서 너무도 익숙한 말이다. 왜 그렇지? 한자 購讀(구독)에 그 이유가 있다. 산다(buy)는 뜻 購와 읽는다(read)는 뜻 讀 두 단어의 합체다. 사서 읽는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 사람들이 사서 읽지 않으면 언론사는 쓰러진다. ‘광고로 벌지 않느냐?’는 질문도 있겠으나, 광고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매체(媒體 미디어)를 보는가에 대한 대가다. 세상은 달라지지만, 원리(原理)가 그렇다는 얘기다.

언론사 관계자들은, 기자도, ‘정기구독자 확장(擴張)’이란 말 들으면 좀 으스스하다. 대개 상품을 건, 현상(懸賞) 이벤트지만 ‘최소 몇 부 이상’ 정기구독자를 늘이라는 일종의 의무사항인 것이다. 기간을 정한 구독 즉 정기(定期)구독이 저 ‘구독경제’ 설명과 대충 맞아 떨어진다.

세탁기나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 등을 기간을 정하고 사서(購) 읽는다(讀)는 것이니, 구입(購入)과 독서(讀書)로 말의 (속)뜻을 생각하면 좀 황당하기도 하다. 읽는 것이 쓰는 것이라고?

저 말 ‘구독’에는 역사가 있다. 한중일(韓中日) 동양 3국 중 맨 먼저 서구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이 1890년대에 영어 섭스크립션(subscription)이라는 개념(말)을 번역한 어휘다. 

그 후 신문 잡지 등이 생겨나며 우리에게 들어온 것이다. 1900년 무렵으로 추정한다. ‘일본산 한자어’라고나 할까. 우리말과 중국어에는 이런 내력(來歷)을 가진 단어들이 적지 않다.   

‘섭스크립션’에 들어있는 스크립트(script·글씨 원고 대본)의 어원은 ‘글을 쓰다’는 뜻의 라틴어 스크리베레(scribere)에서 파생된 말이다. 서기(書記)나 비서(祕書) scriba(스크리바)나 scriptum(스크립툼·작성된 글)이 관련 라틴어 단어다.

세계 여러 문자의 현재 상황을 언어학으로 설명한 헨리 로저스의 저서 ‘문자의 세계’ 등의 자료를 참고한 것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이 기획하고,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펴낸 서적이다. 

저렇게 영어권의 섭스크라이브 섭스크립션 등은 스크립트(글자)가 속뜻이어서 ‘읽는다’는 뜻이 바탕이다. 우리에게는 최근 저 뜻 보다는 기업이 내세우는 ‘구독경제’의 뜻으로 더 알려지고 있어 언어현상은 이렇게 다채로움을 더하는가 보다.

한국어 중 상당수인 한자어의 존재와 개념이 우리말에서 희석(稀釋)되고 있는 사정을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말은 생각을 나타내고, 문자는 그 말을 나타낸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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