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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19금 언어’의 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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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19금 언어’의 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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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5.1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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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탱자탱자요? 떡을 쳐요? 왜들 킥킥거리지요?

실은, 얼핏 생각나는 것만도 여러 개다. 그런 사례 중 둘만 골랐다. 얼마 전 수다 떠는 젊은 처자(處子)들을 지나치다 우연(偶然)히 들은 것이 계기다. 어쩌면 우연찮게, 반(半)쯤은 의도적으로, 귀를 기울였을 수 있다. 세상 언어를 바라보는 것이 직업이니, 직업병적 직감이랄까.

‘떡을 친다’는 그 말을 서너 해 전쯤 전에 들었다. ‘탱자탱자’는 비교적 최근 들은 말이다. 조심해 표현하겠으나, 불가피하게 들어가는 ‘어떤’ 어휘일랑 실증적(實證的)인 언어 공부라고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젊은 여성들의 대화 내용이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겠다. 저들이 저 말의 뜻이나 맥락(脈絡) 또는 문맥(文脈)을 알았더라도 저런 표현을 썼을까, 하는 얘기다. 아이들이 뜻도 모르고 내뱉는 욕설과도 흡사하다.

잘 쪄진 지에밥을 절구에 낙낙하게 넣고 (절굿)공이로 수없이 찧으면, 으깨진 밥은 떡이 된다. 떡(살)을 치는 그 정경, 그립다. 추석 무렵이면 노유(老幼) 남녀(男女) 불문하고 마음 설랬다. 지에밥은 술밑이나 떡을 빚기 위해 찹쌀이나 멥쌀을 시루에 찐 밥이다.

남자들끼리 모여 탁주에 홍어 한 점 씹는 대목에서는 충효(忠孝)의 정설(正說) 대신 음담(淫談)과 패설(悖說)이 적격일 터. 좀 전 떡을 칠 때 곁에서 짓이겨지는 떡살을 물 바른 손으로 바루던 곱분이 얘기가 안 나왔다면, 이건 거짓말이다.

떡 찧는 걸 남과 여의 합궁(合宮)으로 상상하는 건 자연스럽다. ‘떡을 치다’가 섹스의 남성 은어로 굳은 내역이다. 이 말의 ‘구비(口碑) 문학적 의미’를 대놓고 말하기는 좀 거북했겠다. 

어감이 재미있다고 느꼈을 어떤 이(여성)들이 다른 의미의 활용으로 이 말을 쓰기 시작했으리라. “떡볶이 만원어치면 셋이서 떡을 쳐.”란 말을 들었다. 필자는 당황스러웠으나 그들끼리는 자연스러웠다. 말은 이렇게, 살아 뛰논다. 이런 얘기 들으면 그들도 지금 당황스럽겠다.

‘탱자탱자’는 사전에도 나온다. ‘게으름 부리는 모양’ 정도로 풀이나 예문이 제시된다. 그런데 그 걸 보면서 킥킥거릴 이들 많다. 킥킥대는 이들은 사전의 저런 풀이를 아마 모를 것이다. 

원래 음담패설의 고샅(골목)에서 쓰이는 저 말(의 원본)은, ‘좆도 모르는 게 불알 잡고 탱자탱자 한다.’다. 좆이나 조지, 자지는 ‘남성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란다. 사전의 풀이다.

한자어로 성기 또는 생식기(生殖器)라고 써야 하는(고상한) 것으로 사전 편찬자들은 알고 있나보다. 아니면 ‘페니스’라는 영어가 나은가. 아서라, 말은 실질(實質)을 직격(直擊)해야 한다. 

비유적으로 쓰더라도 ‘실질’을 놓치면 안 된다. 점잔빼다 실제 뜻을 놓치면 ‘떡을 치다‘나 ’탱자탱자‘ 같은 웃지 못 할 코미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탱자는 남쪽지방 시골 울타리에서 자주 보았던 가시 많은 나무의 열매다. 향기도 그럴싸하고 약용으로도 쓰이나, 유자나 감처럼 과일 대접은 꿈도 못 꾸는 좀 딱딱한 열매다. 불알은 좆 곁의, 남성(男性)만의 부위, 한자어는 고환(睾丸)이다. 

우회(迂廻)해 말하자면, 만유(萬有) 곧 만사(萬事)의 세상은 짐작도 못 하는, 소견 좁은 이들이 자기 한 분야의 화사한 경력이나 권세(權勢)만으로 ‘뭘 좀 안다’고 자만(自慢) 또는 착각(錯覺)하는 걸 비웃는 것이기도 하겠다.

심오한 우주의 질서와 원리를 명상하는 도사들이 세상엔 숱하다. 저런 찌질한 이들의 몰상식한 삿대질은, 말 그대로 ‘탱자탱자’일 터다. 세상은, 다 안다. 저만 모를 뿐.

언어는 이렇게 느닷없이 본디를 찌르기도 한다. 말은, 알고 써야 옳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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