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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명량대첩 비사(祕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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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하제별곡] 명량대첩 비사(祕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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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4.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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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겨레와 이순신 함께 피 흘린, 남도 명량의 기억을 걷다. 

어찌 끝나는지 다 안다. 줄거리에 대목대목 대사(臺詞)도 대충 외운다. 그래도 보면(읽으면) 또 재미지다. 분노로 또 슬퍼서 주먹 쥐고 눈물 훔친다. 설마 그런 얘기가 진짜로 있을라고 하며 갸웃하시는가? 하지만 있다.    

“지금 싸움이 한창이니 내 죽음을 (주위에) 알리지 말라.”

성웅,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이 대목은 부처님 진신사리 마냥 우리 가슴에서 늘 영롱하고 성성(惺惺)하다. 

김한민 감독의 시리즈 영화가 그렇고, 장군이 몸소 쓴 ‘난중일기’ 또한 그렇다. 역사의 사실(事實)이 워낙 그래서, 이를 (다른 형태로) 옮긴 얘기도 그런 것이다.            

그 책의 저자인 친구 이돈삼 선생에게 ‘재미지게 봤다, 고맙다.’ 인사를 보냈다. 그는 “재미지단 말은 예의상의 (거짓) 인사겠지만, 하여간 끝까지 읽어줘서 고맙다.”는 답장 보내왔다. 그러나 이는 거짓 인사일 수 없다. 겨레 누구에게나 그러하리라.

‘남도 명량의 기억을 걷다’라는 그의 최근 책(도서출판 살림터 刊)은 ‘이순신 조선수군 재건로 44일의 여정’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저 낱말들로 어림해 ‘아, 그거.’ 하며 아는 체 지나치지 말라. 후손 우리 모두는 그 성스러운 피의 빚을 나눠 짐 지고 산다. 읽다보면 그 빚이 우리의 기쁜 힘이기도 함을 안다. 우리는 그 겨레와 리더 이순신의 후예다.

이진진성(梨津津城)의 터 남은 해남 북평 이진마을의 우물, 어릴 적 방학 때마다 큰집 찾은 필자는 ‘장군님이 이 물 마신 힘으로 왜놈 군대 싹 몰살시켰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나라를 구한 신(神)이었다. 그 흔적, 나중에 난중일기에서 보았다.

영광 진도 장흥 고흥 순천 구례 하동 진주... 방방곡곡 굽이마다, 나루나루에 포구마다 ‘장군님’의 그 신성(神聖)에 얽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영광(榮光)의 숨결, 그 피땀이 수만 갈래로 흐드러져 있음도 차츰 알게 됐다. 

김한민의 비슷한 줄거리 다큐멘터리 영화도 봤다. 필자의 그 ‘재미’라는 표현에 안긴 혈투(血鬪)와 대첩(大捷·큰 승리)의 무대, 그 뒷편의 담화(談話)다. 

역사에는 까닭과 명분(名分)이 있다. 제 역사를 지키려 목숨 바친 겨레는 미래를 바라보는 기쁜 힘을 가진다. 자격이기도 할 터다. 그 역사가 바르면, 그 힘은 인류에도 기여하리라. 

본적 해남, 태생(胎生) 영암에 성장지는 순천, 공부는 광주다. 좋은 기회에 나주 목포 무안 담양 화순도 배웠다. 남도 골골샅샅이 고향인 셈이니 그 역사의 힘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겠다. 축복 받은 인연(因緣)에 감사한다.

막 읽은 이 책의 온기(溫氣)를 청년들에게, 특히 ‘장군님 우물’ 얘기 들었던 때와 비슷한 또래들에게 전하고 싶다. 저자와 함께 어려운 길 답사한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고마운 이유다. 

백의종군에서 일어나 심신(心身) 갈기갈기 찢긴 채 ‘황대중 등 군관 9명과 병사 6명으로 시작’한 이순신과 남도 선조(先祖)들의 전쟁, 천지신명(天地神明)이 도왔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실감한다. 그 숨결, 울돌목 물살처럼 아직 거칠다. 우리는 이겼다. 이긴다.

살다 지치면, 옹졸해질까 걱정되면, 상상하자. 저 바다 몸소 보자. 마음에 배를 띄우자. 장군이 외친다. 제 부하 죽이고도 뻔뻔한 요즘 그 ‘장군’들도 혹 듣는가.

“깃발 올려라! 조선 수병들아, 진군하라! 왜놈들아, 이 울돌목이 너의 마지막이다.” 

[전국매일신문 칼럼] 강상헌 언론인·슬기나무언어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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