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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금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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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의 데스크席] 금메달
  • 최재혁 지방부국장
  • 승인 2024.08.2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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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혁 지방부국장

‘KOREA’가 태극기를 앞세워 하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건 1948년 영국 런던대회다. 당시 우리 이름은 ‘조선’. 대한민국 정부를 공식 수립해 명실상부 독립국이 되기 보름 전으로 미군정(美軍政) 치하였다. 웸블리 스타디움 개막식에 태극기를 든 기수 손기정을 앞세워 선수단이 입장하자 라디오 중계를 하던 서울중앙방송 민재호 아나운서는 감동을 못 이겨 흐느꼈다. “런던 하늘에 태극기, 선수들 앞에도 태극기, 이 넓은 스타디움에 눈물을 머금고 저 태극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태극기도 입이 있어 말을 한다면 우쭐거리고 춤을 추면서 파란 많은 지난날을 눈물로 독백하리라” (김광희 ‘여명:조선체육회, 그 세월과의 싸움’ 2001)

조선이 런던대회에 참가하기까지 여정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이었다. 1948년 6월 21일 기차로 서울역을 떠난 선수단은 근 20일 지구 반쪽을 누비고 7월 11일 런던에 도착했다. 먼저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 후쿠오카로 갔고 다시 기차로 요코하마에 갔다. 이틀을 보낸 후 또 배를 타고 상하이(중국)를 거쳐 홍콩에 닿았다. 여기서는 비행기를 탔지만 여러 도시를 돌며 갈아타느라 공로(空路)에도 닷새가 걸렸다. 방콕(태국), 콜카타, 뭄바이(인도), 카이로(이집트), 로마(이탈리아), 암스테르담(네덜란드) 등 5개국 6개 도시를 지났고 서울부터 런던까지 치면 10개국 13개 도시를 거쳤다. 여비가 부족해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 1924년 파리올림픽 이후 100년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센강에서의 화려한 개막식을 시작으로 제33회 파리올림픽이 그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 테러에 대한 우려가 불식되지 않는 속에서 치러졌지만, 또 한편 친환경건축과 재생가능에너지사용, 낮은 탄소발자국을 목표로 하는 ‘가장 친환경적인’ 올림픽을 치렀다는 야심적인 프랑스의 의도가 관심을 끄는 대목이라 하겠다. 빗속에 진행된 개막식은 프랑스의 독특한 문화예술을 유감없이 보여준 한편의 연극무대와도 흡사했다. 무엇보다 개막식 수상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내내 볼 수 있었던 노트르담대성당과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등 파리의 명소들과 화려한 레이저 조명 속에 빛나는 에펠탑은 가히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세계인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에펠탑, 베르사유 궁전, 그랑팔레 등 도심의 랜드마크를 경기장으로 활용하면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2024년 파리올림픽이 17일간의 여정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는 양궁, 사격, 유도, 펜싱, 배드민턴, 복싱, 수영, 탁구, 태권도 등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면서 스포츠 강국으로서 체면을 살렸다. 단체 종목의 출전이 줄어들면서 조용한 올림픽이 되리라는 예상은 조금 빗나갔지만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을 극복하고, 어렵게 대회를 준비한 선수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게 됐다. 그러나 좋은 성적과 흥행, 영웅의 등장이라는 긍정적 결과와 달리 절규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올림픽을 앞두고 금메달 5개와 종합순위 15위권을 목표로 설정한 대한체육회에 대한 신뢰성도 타격을 입었다. 소박한 목표에 이유가 있겠지만 엘리트 체육의 부활을 위해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선수들에 대한 객관적 평가 시스템의 붕괴와 정보의 부족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스포츠 선진국은 단순하게 메달 숫자로 평가되지 않는다. 선수 육성의 체계성과 합리성이 전제된, 공정한 행정 시스템의 선진화가 우선이다. 정치에 몰두하면서 선수의 아픔과 고통에는 관심 없는 체육단체는 반성해야 한다.

늘 그랬듯이 올림픽은 새로운 스포츠영웅을 탄생시킨다. 이번 올림픽에도 수많은 영웅이 새벽 시간, 국민을 설레게 했다. 우리는 영웅들의 표정, 몸짓, 손동작, 말 한마디에도 주목하게 된다. 기다림과 떨림, 좌절, 극복, 땀, 눈물 등 그동안의 모든 시간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회 기간에 있었던 몇몇 영웅들의 절규는 기성세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약자일 수밖에 없는 영웅들의 분노와 간절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것은 특정 단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든 구조를 하루아침에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염치’라는 기준으로 일련의 문제를 원점에서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우리에게 영웅은 없다.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메달과 상관없이 즐거움의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즐거워할 수도 없다. 메달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저변확대이기 때문이다. 생활체육의 기반 없는 비인기 종목의 올림픽 메달은 허상이다. 단 ‘17일만’의 짧은 관심이 아니라 꾸준하고 지속 가능한 관심이 있을 때 새로운 영웅들이 만들어지고 보호된다. 과연 금메달의 가치는 어떻게 계산돼야 맞는 걸까. 단순히 귀금속 값으로 환산하거나 판매되는 가격 또는 포상금이 메달의 가치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한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하기까지의 선수 개인과 사회, 국가의 유무형적 투자는 물론 그로 인한 국민들의 감동과 사회·경제적인 긍정적 효과 역시 모두 포함돼야 한다. 금메달 하나를 딴다는 것은 감히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 몇몇 선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스포츠 행정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확대되기 전에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소수만의 이익을 위해 영웅들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는 상황’은 용납될 수 없다. 우리도 운동선수가 직업이 아닌, 다양한 직업을 가진 운동선수 육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4년 뒤 LA 올림픽에서는 감동과 희망만이 남길 간절히 소망한다. 오늘날 우리가 파리에서 보고싶어 하는 에펠탑 역시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1889년 만국박람회 출입구에 세워진 조형물이었다. 건립 당시 소설가 모파상은 이 에펠탑을 몹시 싫어했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지만, 오늘날 이 에펠탑은 해마다 8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며 프랑스 GDP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616조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영국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파리를 둘러싼 과거 역사에서 보듯 도시는 결국 사람이 사는 공간인 동시에 새로운 감각으로 변화시켜나감으로써 문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 발자크는 이러한 파리를 ‘수심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대양’ 이라고 표현했다. 필자는 이 같은 파리올림픽 소식을 접하면서 한국인이 가고 싶어하는 유럽 도시 중 늘상 1위를 차지하는 파리의 문화적 측면을 되짚어보게 된다. 우리에게 오늘날 문화의 도시, 유행의 첨단을 걷는 도시로 각인된 파리는 불과 1세기 전인 19세기 내내 혁명의 화염이 그치지 않는 ‘피의 도시’였다. 프랑스 4대혁명이 80년 동안 가열차게 일어나 파리는 유럽에서는 위험한 도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랬던 파리가 1880년부터 1914년 사이 문화예술가와 과학기술자들의 동상을 대거 건립하면서 거리와 광장에서 마주하는 동상을 통해 문화예술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심기에 이른다. 아울러 파리에서는 1855년에 첫 만국박람회를 개최한 이후 5차에 걸친 만국박람회를 개최해 새롭게 변해가는 근대적 모습의 파리를 보여주게 된다. 정부 수립기, 한국 전쟁기 등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 한국의 형상은 무엇이든 보기가 좋다. 부유하고 자유로우며 또 공정하고 바른 세계 수준의 국가가 되었다고 내세우는 이도 많다. 자랑거리라곤 없던, 그래 올림픽 등 국제경기에 전 국민이 함께 마음을 바치고 위로받던 그 시절이 지금 하나도 그리울 건 없다. 다만 여야 정당의 졸렬한 다툼을 너무 자주 접해선가. 올림픽을 통해서라도 위로받았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jhchoi@jeonm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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