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차례 홍역을 치르듯 이런저런 모임의 연말 행사를 하게 된다.망년회 하면 한자 ‘잊을 망’(忘)을 사용하는 것으로, 일본인들이 쓰는 말인데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로 건너와 어느 순간에 마치 우리 고유의 풍습인 양 자리 잡은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1400여 년 전부터 ‘망년(忘年)’ 또는 ‘연망(年忘)’이라고 해서 섣달그믐께 친지들과 어울려 술과 춤으로 흥청대는 풍속이 있었는데 그러한 그들의 ‘망년지교(忘年之交)’라는 풍속에서 글자를 빌려 망년회가 됐다는 것이다. 또 KBS 아나운서 회에서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알려주는 코너가 있는데 망년회는 일본어의 잔재이니 ‘송년회’로 써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송년(送年)은 묵은 한 해를 보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를 제외한 매년 12월에는 친구나 지인, 회사, 각종 모임 등에서 한 해를 되돌아보며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아쉬웠던 한 해를 보내면서 또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한 해를 기대와 설렘으로 준비하는 송년 모임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망년회를 송년회로 바꾸어 부른다 해도 연말모임을 너무 의례적이고 서두른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뭘 그리 빨리 올해를 보내버리자고 송년회를 서둘러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희망찬 새해, 대망의 한 해가 밝았다’며 호들갑을 떨며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또 빨리 보내기 위해 안달하는 게 아닌가. 망년회니 송년회니 하기 전에 그럼 우리 조상들은 한 해를 어떤 식으로 보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조상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누군가에게 빌린 돈이 있다면 깨끗이 갚는 등 금전적 채무 관계는 물론 한 해를 보내며 다른 사람에게 혹시 폐를 끼치거나 은혜를 입었다면 그러한 마음의 빚까지도 모두 개운하게 청산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섣달그믐날이면 수세(守歲)라고 해서 방을 비롯해 마루, 부엌, 외양간, 마구간은 물론 측간까지 곳곳에 불을 밝히고 액운을 막고 집안이 두루두루 잘 되기를 빌기 위해 조왕신(부뚜막신)의 하강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는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전통의 풍속은 한 해를 보내며 떠들썩하게 웃고 즐기고 춤추며 모든 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한 해 동안의 자신의 부족했던 부분이나 과오를 들춰내 반성하고 깨끗이 정리한 뒤 새로운 한 해를 맞기 위한 성스러운 자기성찰의 시간을 보내려는 성격이 짙었던 것 같다.
이제 망년 모임이건 송년 모임이건 별로 남지도 않았지만 이제부터라도 또 한해가 무탈하게 지나갔음을 감사하고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과 차라리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반성을 담아 조용히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러나 비상계엄의 불똥이 경제 전반으로 튀고 있는 것이다. 경제·외교 부처 수장은 이례적으로 한자리에서 외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간담회에서 “모든 역량을 결집해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외국인 여행객들의 한국 방문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의 모국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12·3 비상계엄’은 선포 155분 만에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돼 파국을 막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계엄 청구서’가 골목상권은 물론 산업현장 곳곳으로 날아들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들은 대목인 연말에. 우원식 국회의장은 최근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후 “취소했던 송년회를 재개하시길 당부드린다”며 “자영업, 소상공인 골목 경제가 너무 어렵다”고 호소했다. 국민들 입장에선 누가 여당이고 누가 야당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성향이 진보인지 중도보수 성향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벚꽃대선이냐, 장미대선이냐, 단풍대선이냐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하루빨리 정국이 안정되고 경제가 안정돼 떠났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오고 그 온기가 골목골목으로 다시 퍼지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취소됐던 송년모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돼 소상송인과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전국매일신문] 최재혁 지방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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